존재를 기록한다는 일의 의미

질문하는 하루 시즌0 : 14편

by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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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한 존재를 어떻게 부르는가, 그 방식이 곧 그 사회의 윤리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부터 ‘동성 커플’을 배우자나 동거인으로 등록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국가의 통계 속에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랑하지만 제도 속에서 배제된 관계, 함께 살아도 한 줄로 기록되지 못했던 이름들.

이번 결정은 법의 변화가 아니라, 인식의 시작이다.

국가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첫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사회의 감수성이 이동하는 사건이다.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무엇을 ‘인정하는가’의 언어다.

우리는 존재를 기록할 때 비로소 그것이 ‘사회적 실재’가 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문제를 법의 바깥, 혹은 사적 영역으로만 밀어두었다.

그러나 존재를 외면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을 가두게 된다.

존재의 불인정은 자유의 불가능으로 이어지고,

자유의 결핍은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을 협소하게 만든다.

누군가를 제도 밖에 세워둔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간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다.

한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인간을 견딜 수 있는 폭을 넓히는 일이다.


사랑은 법의 보호를 받기 전에, 먼저 언어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존재는 쉽게 지워지고,

기록되지 않는 관계는 쉽게 잊힌다.

이번 변화는 단지 행정상 한 칸의 추가가 아니라,

그동안 비어 있던 자리의 회복이다.

그 자리에 이름이 적히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통계의 그림자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존재의 인정은 권리 이전의 존엄이며,

인간이 사회와 맺는 첫 번째 대화다.

우리가 타인을 기록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지문의 질문 : 우리는 언제부터 존재를 ‘인정’이 아니라 ‘허락’의 문제로 착각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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