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언어가 관계를 결정할 때

질문하는 하루 시즌0 : 15편

by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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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함께 걸으면 기회를 얻는다.”

그 말은 경제협력의 제안이자, 동시에 권력의 선언이었다.

국제사회에서 ‘함께’라는 말은 늘 조건이 따른다.

그 조건은 언제나 힘의 비율로 계산된다.

국가 간의 관계는 언뜻 대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해와 이익이 엮인 복잡한 줄다리기다.

“기회를 얻는다”는 말은 그만큼 누군가의 기준 속에서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는 여전히 힘의 언어로 설계되고, 약자는 여전히 강자의 문법 속에서 해석된다.


힘의 언어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것은 현실을 움직이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어가 관계의 유일한 문법이 될 때, 세상은 균형을 잃는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제는 협력의 장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질서를 규정하려 한다.

‘기회’라는 말은 겉으로는 포용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선택을 강요하는 힘이 숨어 있다.

누구와 걷느냐는 단순한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 위에 서서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다.

힘은 인간 사회의 본능이지만,

그 힘이 관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언어는 점점 협소해진다.


관계는 원래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다름을 관리하려 한다.

강대국의 언어는 언제나 부드럽게 포장된 명령이다.

기회와 이익이라는 단어는 관계를 설득하는 포장지지만,

그 안에는 지배와 통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

관계는 대화일 때 건강하지만,

협박이거나 설득이 되는 순간, 이미 균형을 잃는다.

국가 간의 관계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기회’를 핑계로 타인의 기준 속에서 걷는가.

힘의 논리를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이 옳은가보다 ‘어떻게 함께 설 것인가’를 묻는 감각이 필요하다.

진정한 관계는 기회를 얻는 일이 아니라,

존중을 나누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문의 질문 : 힘이 언어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말로 관계를 지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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