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하루 시즌0 : 17편
전남 여수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바다 위에 세워질 거대한 풍력 터빈은 탄소중립을 상징하는 기술의 표식처럼 보인다.
정부는 이 사업이 ‘미래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라 말하지만,
지역 어민과 환경단체는 “바다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녹색 기술이 또 다른 파괴의 이름이 된 아이러니.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환경을 지키는 언어가 아니라,
산업을 확장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탄소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언제부턴가 경쟁의 구호가 되었다.
각국은 앞다투어 녹색에 투자하고, 기업은 그 색을 브랜드로 삼는다.
녹색은 더 이상 자연의 상징이 아니라, 자본의 색이 되었다.
풍력과 태양광, 수소와 배터리 산업이 기후 위기 대응의 해답으로 포장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생이 만들어진다.
해상풍력은 탄소를 줄이지만, 동시에 해양 생태를 흔든다.
‘기후를 구하자’는 외침 뒤에는 늘 ‘누가 대가를 치를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지구를 위한 선택이 인간의 일부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될 때,
그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명분과 모순을 함께 만든다.
우리는 더 깨끗한 에너지를 꿈꾸지만,
그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자연을 소모한다.
풍력의 블레이드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태양광 패널은 폐기물로 남는다.
녹색의 기술이 회색의 폐기물을 낳는 현실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점점 역설이 되어간다.
지속가능성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지 않을 것인가’를 묻는 사회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속가능성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약속인가?
지문의 질문 : 녹색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또 다른 파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