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성장의 신화

질문하는 하루 시즌0 : 18편

by 지문
아마존산.png

아마존이 다시 타고 있다.

위성 사진에는 붉게 번지는 불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공기는 회색 먼지로 덮였다.

Greenpeace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농업 확장이 산불을 가속화하고,

그 결과 도시 수준의 대기오염이 아마존 깊숙한 곳까지 퍼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콩과 목축, 그리고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개간이 ‘경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숲은 사라지고, 지구의 폐는 점점 숨이 막혀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성장’이라는 단어를 의심하지 않는다.


인류는 오랫동안 ‘더 많이’가 ‘더 좋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다.

성장은 진보의 증거이자, 문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성장은 이제 자신을 삼키기 시작했다.

숲을 태워 얻은 곡물은 잠시의 풍요를 주지만,

그 풍요는 결국 자신이 의지하던 생태를 파괴한다.

기후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재난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신화로 만든 성장의 그림자다.

우리는 늘 더 나은 미래를 말하지만,

그 미래를 위해 현재의 땅을 태우고 있다.

이제 ‘성장’이라는 단어는 희망이 아니라, 묵시록의 언어로 들린다.


숲은 단지 나무의 집합이 아니다.

숲은 호흡이며, 순환이며, 인간이 아직 배우지 못한 질서의 학교다.

불길 속에서도 나무는 소리 없이 쓰러지고,

그 자리에 인간의 문명이 들어선다.

그러나 문명은 언제나 숲의 시간보다 짧다.

숲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자라나지만,

인간은 숲이 사라지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

성장을 멈추는 용기, 그것이 지금 인류가 배워야 할 새로운 문명일지도 모른다.

숲이 불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성장은 우리를 살렸지만, 이제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지문의 질문 : 성장이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파괴의 이유가 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진보’를 정의해야 하는가?


작가의 이전글녹색은 언제부터 산업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