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는 보호가 될 수 있는가?

질문하는하루 시즌0 : 30편

by 지문
청소년sns.png

유럽 일부 국가에서 청소년의 SNS 사용 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논의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중독, 비교, 불안, 우울.

기술이 성장시킨 플랫폼이 아이들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사회는 뒤늦게 묻기 시작했다.

이것을 방치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SNS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관계가 전시되고, 감정이 평가되며, 숫자가 자존감을 대신하는 구조다.

성인은 그 구조를 ‘활용’한다고 말하지만,

청소년에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 않고,

시간은 저항 없이 흡수된다.

자율이라는 말은, 준비되지 않은 존재에게 가장 가혹한 요구가 된다.


그래서 국가는 개입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은 바뀐다.

이것은 보호인가, 통제인가.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자유를 지키겠다는 논리는 언제나 위험하다.

통제는 쉽게 확장되고,

한번 허용된 규제는 되돌리기 어렵다.

기술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온 사회가,

이제 와서 국가의 힘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우리는 기술을 너무 늦게 질문했다.

그 결과, 질문은 극단으로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전부를 막거나.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우리는 어떤 어른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가.

통제의 손쉬움이,

사유의 노력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문의 질문 : 보호를 이유로 한 통제는, 언제 자유를 배신하게 되는가?


작가의 이전글원화 약세는 누구의 일상을 흔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