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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an 11. 2024

나는 왜 책을 읽기 시작했나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수학, 과학, 공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썼고 그리고 쓰고 있다. 중학생 시절은 물리학에 빠져서 물리학 책만 들여다봤고, 고등학교는 수학, 과학 위주의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공대를 다녔고 그리고 대학을 마치자마자 미국의 공대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하자마자 미국 현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중고교, 대학시절을 모두 합쳐 나의 독서량은 제로에 가까웠다. 완전히 제로가 아니라 제로에 가까웠다고 쓰는 이유는 교양과목이나 기타 다른 과목에서 약간의 독서라도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꽤나 고집스럽고 내 생각대로 사는 나는 남들이 말하는 독서의 가치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책을 안 읽었을 뿐만 아니라 책 읽는 것을 기피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국의 한 시골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하는 도중, 하루종일 실험실에서 일하고 하루종일 영어로 소통하던 도중 나는 그냥 무엇인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냥 한글로 써진 아무 책이나 잡아서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이 무작정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교한 수식들과, 그에 알맞은 검증된 사실들의 나열인 공학 논문들을 주로 읽다가 대중서를 읽으니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내 경험을, 내 생각을 책의 주인공에 대입해보기도 하고 책을 쓴 작가에 대입해 보기도 하며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삶이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졸업은 언제 할지, 졸업 후에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내 친구들에 비해 나는 뒤처지는 것 아닐지. 이런 상념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나만의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노력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내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해도 그래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오늘 하루를 일기로 기록하는 것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위로를 책을 통해서 받았다.


그래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실험실에서 돌아와 혼자 빈방에 앉아서 읽었고, 여행을 하는 기차 안에서 읽었고,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읽었고, 흐르는 강물을 앞에 두고 산책을 하면서도 책을 읽었다. 그렇게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삶의 목표가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좋은 논문을, 더 좋은 연봉을 받는 것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삶을 살자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졸업 후 책과는 다시 한번 멀어졌다. 책을 읽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넘쳐났다. 일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도 재밌었고, 사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국의 놀이공원들도 재밌었고, 그 무엇보다 엔지니어로써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또다시 삶에 지쳐가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정말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는데 그것이 얼른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함에,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만 발전하는 나를 보면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목표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다시 한번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엔지니어도 책을 읽는다. 위로받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은 더 높은데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하나의 책을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서임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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