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솔직한 자서전
기억에 남는 구절
1. 50페이지. 나는 견학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음 누장을 작문에 포함시켰다. "공작은 자신만큼 아름다운 새는 없다는 것을 과시하듯 날개를 펼쳤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참으로 작위적이고 통속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선생님 혹은 누군가에게서 멋지다는 칭찬을 들었다. 이 문장 하나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나에게 맞지 않는 무언가를 꾸며낸 그 순간이 몹시 불쾌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는 이런 식의 억지로 지어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2. 페이지 133-134. 그는 "축하해. 그런데 수학과에서는 무엇을 위해 진학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아, 알겠다. 교수가 되려는 거야. 그렇지?"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그를 축하하고 같이 합격한 다른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뭐? 교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멍청하기는!" 하고 생각했다. 나는 순전히 지적 호기심을 위해서 수학을 택했으며, 수학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3. 254페이지. "그리고 곧 쉬운 경우에 대한 증명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후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하여 다른 주제로 눈을 돌렸다. 2년 뒤의 어느 날 아침에, 나는 오후에 가르칠 대학원 과목을 위해서 노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완성 상태로 있던 해당 문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고, 별다른 이유 없이 왠지 그날 연구를 시작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공학자로서 이공계의 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학자들 중에 가장 교류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꼽는다면 나는 늘 수학자를 택한다. 수학에서는 변명도, 대단한 규모의 장비도, 누군가의 백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두뇌와 논리의 경쟁. 답은 풀었느냐 못 풀었느냐. 논리적으로 맞느냐 안 맞느냐로만 결정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수학자인 것 같다.
시무라 고로의 자서전은 자신의 탄생 배경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어떻게 문제를 푸는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아주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데 가령 어떤 선생님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와 같은 어린 시절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돈을 벌기 위해 도쿄대학 재직 중에 입시 강사로 일했다거나 혹은 대학졸업 시에 다른 사람의 과제를 대신해 준 이야기와 같은 남들은 드러내기 꺼릴 듯한 자신의 일화들 또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는 아주 정직하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생을 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수학자로 성공할 수 있었고, 이렇게 솔직한 자서전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제 33년의 인생을 산 나는 이런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쓸 수 없을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나는 살면서 나의 기준이 아니라 남의 기준으로 많이 살았다. 그래서 자서전의 많은 부분이 남들이 하니까 좋아 보였으니까 선택했다는 말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이제껏 살면서 그리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배우고 일하지 않았다. 급한 숙제 하듯 많은 것을 해치웠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 했는지,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렇게 자세히 서술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나는 아직 초년차 엔지니어이고 앞으로 일할 날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욕심을 내보자면 나는 내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40년은 더 일해보고 싶다. 미국에는 70살이 넘어서 일하는 엔지니어도 있으니 자기 관리만 잘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먼 훗날 나도 나의 엔지니어 커리어 40년을 정리해서 솔직한 자서전을 쓰고 싶다.
책의 제목은 "어느 한 엔지니어의 삶". 벌써 가슴이 뛴다. 나의 인생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내어 보일 수 있는 삶.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은 삶.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누가 그 책을 읽어줄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내 삶의 가치는 나 스스로가 판단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