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작은 비밀

by 공책

중학생 시절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겪은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괴롭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화가 나기보단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상을 받아 상장과 함께 문화상품권 몇 장을 선물로 받았다. 그 시절에 문화상품권은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굳이 엄마 아빠에게 허락받지 않아도 햄버거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상품권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가 받은 상품권을 달라고 했다.


나는 겁을 먹고는 무기력하게 손에 들고 있던 상품권을 건네줬다.


황당하게도 나는 이 상황에 억울함을 느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한테 들키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상을 탄 것을 숨길 수는 없을 텐데, 부모님께 상장을 보여드리며 상품을 뺏겼다는 것을 고백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남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런 일 없다고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단지 달라고 했고, 나는 그냥 준 것뿐이었다.


그 아이가 달라는 대로 그냥 주고 나니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문화상품권을 빼앗겼냐고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나는 한동안 머릿속이 멍해졌다. ‘뺏긴 건가… 그냥 준 건데? 그냥 달라고 해서….’


그 후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았다. 그 아이가 괴롭힌 아이가 나 말고도 더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 여러 명이 이미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 보고도 있었던 일을 적으라고 했다. 종이를 받아 든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떡하지? 정말 쓰고 싶지 않은데…’


‘이걸 쓰면 그 애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하지?’


‘그냥 아예 안 쓰면 안 될까?’


하지만 교실 문 앞 책상에 앉아 나를 지켜보는 선생님을 보니 ‘안 쓰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내가 어떻게 글을 적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없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조차 않았고,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이제는 그 아이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내 마음에 남은 상처가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아직도 억울했다면, 이름과 얼굴을 잊지 못했겠지… 내가 빼앗긴 걸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렸으니, 그 아이가 상품권을 빼앗아 간 것도 어린 마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 아이도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아직도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담임선생님은 내가 상품권을 빼앗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일은 교실 뒤에서 아주 은밀하게 일어났고,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담임 선생님은, 앞서 쓴 〈망각이라는 선물〉 속 그분이기도 하다. 이전 글을 쓸 때는 엄격한 선생님의 모습이 강하게 기억났는데, 이번 일을 떠올리니 선생님이 나에게 잘해 준 기억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돌봐주던 때 말이다.

물론 그때는 그 관심들이 귀찮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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