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 중 한 분과 정말 우연히 연락이 닿은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당시에도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어떤 부모는 아이를 그 선생님 반에 넣어달라고 학교에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나도 그 선생님한테 배운 영어 문법을 미국에 사는 지금도 잘 써먹고 있다.
하지만 막상 연락할 기회가 생기니, 반가움과 함께 망설임이 찾아왔다. 나는 학생 시절, 솔직히 말 잘 듣는 편은 아니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규칙이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지만 모든 걸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 아이였기에, 담임 말씀도 곧잘 흘려듣곤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에 가져가야 하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사지도 가져가지도 않은 적이 있다. 그 책을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그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일이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되면서 내 나름의 저항(?)도 시작을 한 것이다. 그 당시 학교에 다니기 싫었던 마음이 표현된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책을 가져오지 않아 몇 번이나 지적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또 책을 가져가지 않았다. 아무리 혼나도, 책을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다른 선생님이었으면, 포기하고 넘어갈 법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직접 내 책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내 고집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내 행동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벌은 ‘앞으로 잘못하지 않겠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적는 것이었다. 반성문을 쓰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지각하지 않겠습니다” 같은 문장을 종이에 가득 채울 때까지 글을 써야 하는 벌이었다.
솔직히 말해, 중학교 시절 나를 유일하게 긴장하게 만든 선생님은 담임이었다. 다른 교사들은 내 고집을 눈감아주거나, 잠깐 화를 내고 지나갔다. 매 맞고 혼나는 것쯤이야 그때만 넘기면 끝나는 일이라고 여긴 나름 깡다구 있는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끈질기게 지적하고, 그래도 안 되면 부모님께까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담임 말을 늘 잘 들은 건 또 아니지만.
혹시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따뜻한 기억들도 있다. 아마 스승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반에 케이크가 하나 있었고,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 주위를 북적이던 가운데 나는 케이크에 큰 관심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줬다. 수학여행이었던가 소풍이었던가 아무튼 학교 밖에서는 의외로 나에게 몇 번이나 친절하게 뭘 물어보신 적도 있었다. 그때는 선생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약간은 헷갈렸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순간들보다 내가 말을 안 들은 기억이 훨씬 더 많았기에 다시 그 선생님과 연락할 기회가 있었을 때 사실 하고 싶었지만, 정말 연락을 해도 될지 그냥 모른 척해야 할지 망설였다. 차마 전화는 못하고 고민 끝에 카톡을 보냈었다.
그런데 의외로, 선생님은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하셨다. 내 이름과 학교 이름도 말했지만, 전혀 기억을 못 해 되려 미안해하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안도했다.
이것으로 확실해진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는 것. 왜냐면 미워하는 사람을 잊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건 농담이고, 사실 담임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담임 선생님을 힘들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나를 기억하신다면 사과부터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마도 ‘사춘기 아이들이 다 그렇지’ 하고 그냥 흘려보내주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그 시절의 나를 잊었듯,
나도 기억보다는 망각으로, 상처보다는 무심함으로 오늘을 살아가려 한다.
내가 미숙하던 시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잊히는 행운을 여러 차례 누렸고,
지금도 부족한 나는,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잊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대할 때, 그렇게 대하고 싶다.
기억보다는 망각으로, 상처보다는 무심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