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나는 왜를 묻기 시작했다

by 공책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시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원이 그렇듯, 내가 다니던 학원도 수준별 반편성이라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더 잘하는 아이들이 더 좋은 강사에게, 더 밀도 있고 어려운 수업을 받는 구조였다. 잘하는 학생들이 더 잘해야 학원도 잘된다는 당연한 논리였고, 누구나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처음 나는 가장 상위 반이 아닌 반에 배정됐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다. 공부에 특별한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부한다고 짜증을 부리거나,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야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초등학생 시절엔 스스로 과학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놀이처럼 즐기곤 했다.


그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공부했고, 결국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갔다.


그 반의 수업은 훨씬 숨 막힐 정도로 빡빡했다. 선행 학습이 기본이었고, 진도는 늘 앞서갔다. 주마다 시험이 있었고, 숙제는 많고, 외워야 할 영어 단어도 끊임없이 주어졌다. 주말에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쉰다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쪼개 문제집을 풀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착실한 학생으로 자리 잡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믿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던, 어쩌면 조금은 순진했던 중학생이었다.


시키면 해야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믿었던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무난히 부응하는 아이로 성장해 갔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하고, 또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무심코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데. 어쩌면, 안 해도 아무 상관없는 거 아닐까?


그 순간, 내 안에서 처음으로 자율성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 평범한 오후를 기점으로, 시키는 대로만 따르던 나의 삶은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매일 주어졌던 학원 숙제나 시험 준비에 열을 덜 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부가 싫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학교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고, 공부 자체는 흥미로웠다. 다만, 그 방식 그대로 따르는 것이 왠지 나를 바보처럼 느끼게 했다.


“왜 꼭 이 방식이어야 하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그렇게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던 아이에서 점차 세상과 거리를 재려는 아이로 변해갔다.


이제는 단지 부모님이 원하고,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는 아이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어느 날 오후, 특별한 계기 없이 갑자기 찾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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