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을 해보거나 곁에서 도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경운기는 사람을 태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산물과 농기구를 싣고 다니기 위해 사용하는 차량이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지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에 가끔 가게되면 우리는 매일 아침 밭으로 나갔다. 어른들은 하루 종일 농사를 지었고, 아이들은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다 해가 질 무렵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땐 온 식구가 경운기를 나눠 타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상황이 달랐다. 경운기는 농작물과 농기계로 가득 차 있어서, 운전하는 할아버지와 꼭 필요한 한두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걸어야 했다. 실리지 못한 농작물은 지게로 메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길을 걷는 게 정말 싫었다. 어느 날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나도 경운기 태워줘.”
엄마 아빠는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경운기의 진짜 권력자는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는 따로 이야기 할 필요조차 없었다. 먼저 할아버지는 농작물과 농기계를 능숙하게 쌓아 올리셨다. 그 모습이 마치 테트리스를 하는 것처럼 신기해 보였다.
짐을 다 실을 무렵이면, 우리 차례였다. 아무 말 없이 다가온 할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차례로 번쩍 안아 든 다음, 짐칸 위에 마치 마지막 테트리스 조각처럼 끼워 넣듯 얹으셨다. 그러곤 다른 식구들이 말을 꺼낼 틈도 없이 곧장 경운기를 출발시키셨다.
지금 생각하면, 농작물과 농기계 사이에 앉아 경운기를 타는 건 꽤 위험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짐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다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땐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걷는 길 대신, 아주 특별한 자리가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다.
가족과 친척들 모두 두 다리로 걸어가는 그 길을 우리는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당당히 경운기 특별석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우리의 하차 방식도 남달랐다. 할아버지는 경운기 짐칸에 올라가 우리를 마치 짐을 내리듯 번쩍 들어 마당에 내려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기쁨에 들떠서, 뒤늦게 걸어올 가족들을 기다렸다. 괜히 약간 우쭐한 채로 말이다.
그런 일이 한번 뿐이었는지, 아니면 여러 번 경운기 특혜를 누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한 번 그렇게 경운기를 타고 내린 기억은 또렷하다.
그때 할아버지에게 안겨, 마치 짐처럼 내려오던 그 동작이 너무 익숙했다.
아마 그 전에도 여러 번 태워주셨던 게 아닐까. 지금은 추측만 할 뿐이다.
어디서나 특혜는 때로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경운기 권력자 할아버지가 내게 쥐여준 그 조용한 특혜는 우리 모두에게, 심지어 걸어가는 내내 징징거렸을 나를 달래야 했던 친척들에게도, 은근히 즐거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