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저가던 권위와 자라던 나

by 공책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 들어오는 교과 선생님 중에 한 젊은 선생님이 있었다. 초임이었는지, 약간의 경력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은 선함과 사명감이 가득한 분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제를 하지 않고, 수업 중에도 장난과 잡담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보통 다른 수업에서는 조용히 있는 편이었는데, 그 수업 시간에는 나조차 놀았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교실은 그야말로 소란의 연속이었다.


결국 어느 날, 선생님은 결심한 듯 회초리를 들고 들어오셨다. 나도 그날 몇 대를 맞았다. 교실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다음 시간 아이들은 금세 다시 빈틈을 찾아 장난을 쳤다.


그러나 그날 이후 선생님은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으셨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안 하던 짓 하려니까… 팔이 아프네.”


만약 영화나 감동적인 책 속 장면이라면, 우리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의 태도도, 교실의 분위기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면은, 매가 이미 교사들에게조차 어색해졌지만 다른 방법은 아직 비어 있던 그 과도기의 교실을 상징하는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체벌은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는 점점 체벌을 내려놓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학교의 권위 역시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과도기의 시기였다.


그만큼 교사들의 태도도 제각각이었다. 스스로 회초리를 내려놓은 이도 있었고, 망설이다가 간헐적으로 체벌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드물게는 여전히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학생들의 경험은 어떤 학교에 다녔는지,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당시 교사들의 장악력 또한 각자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다. 어떤 교사는 체벌은 물론 큰소리조차 내지 않고도 수업을 잘 이끌었지만, 어떤 교사는 매를 들고도 교실을 통제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나의 학창 시절은 곧 한국 학교의 권위가 무너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시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학교와 교사의 권위는 막강했다.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께 선물을 가져가 드리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들도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체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맞는 아이들도, 때리는 교사들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나 역시 교사에게 철저히 순종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습은 달라졌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우리 학교의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다 선생님께 들킨 적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만화책을 보던 중이었을 것이다. 책은 선생님께 빼앗겼고, 내 기억으로는 그 자리에서 찢기거나 버려졌던 것 같기도 하다. 만일 1학년 때였다면, 그 아이가 만화책을 빼앗긴 것으로 끝났을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6학년 때의 학교 분위기는 달랐다. 수업이 끝난 뒤 그 아이는 집에 가는 길에 씩씩거리며 “책을 빼앗은 선생님을 교육청에 신고할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6년 사이에 교사의 권위는 과거의 절대 권위에서 교육청이나 언론 등을 통해 견제받는 권력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고 이미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스승의 날 선물은 아예 사라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은혜의 증표와 같이 여겨졌던 선물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불법적 뇌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동시에 체벌도 줄어들었다. 정말 인품이 좋았던 과학 선생님이 “예전엔 나도 체벌을 했다”라고 털어놓으셨는데, 그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는 단 한대도 매를 맞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결국 내 학창 시절은 한국 학교 권위가 사라져 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기록한 한 세대의 증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때는 거의 매를 맞지 않고 고등학교 때는 아예 맞지 않았던 내가 비교적 매를 많이 맞은 때는 중학생 때였다. 많은 교사들이 회초리를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던 그 시기에 말이다. 손바닥이 부은 날도, 엉덩이에 멍이 든 날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렇다. 초등학교 때는 당시 교사의 권위에 눌려 무작정 순종했다. 고등학교 때는 직접 매를 맞지는 않았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이 곧 평가로 이어지는 것 같아 다른 방식의 부담이 있었다.


반대로 내가 경험한 중학교 선생님들은 묘한 의미에서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매는 여전히 있었지만, 이미 의미가 달라져 있었다. 매가 더 이상 아이들을 굴복시키는 절대적 힘은 아니었고, 오히려 서로의 긴장을 유지하는 상징처럼 기능했다. 교사들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았고, 가끔 매를 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마음을 깊이 상하게 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기류가 흘렀다. 아이들은 억울하게 혼나게 되면 교사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숙제를 안 해가서 호되게 맞은 날도 있었지만, 다음날 숙제를 해 가면 선생님은 다시 웃으며 친근하게 대해주곤 하셨다.


그들은 완전한 권위자도 아니었지만, 완전한 친구도 아니었다. 권위와 배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던, 그 과도기의 교사상 자체였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편이었다(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이것은 개인의 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가 나에게 준 특별한 행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단순히 교육의 과도기를 목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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