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내가 자주 읽던 과학 전집이 있다. 그 책이 우리 집에 있었던 건지, 아니면 친한 친구 집에 있어서 자주 빌려 본 건지조차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다.
책의 제목도 떠오르지 않지만, 여러 권이 시리즈로 엮여 있었고, 일상 속에서 과학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평범한 일들 속에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시절 그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여러 번 본 이야기를 또 읽고, 다시 읽곤 했다.
아마 전자레인지의 원리를 처음 배운 것도 그 책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도 워낙 많은 과학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책은 어린 내가 읽기에도 부담 없을 만큼 친절하게 쓰인 책이었고, 심심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순서 없이, 관심이 가는 대로, 마치 자유롭게 탐험하듯 그 책들을 읽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권유대로 장래희망을 판검사나 의사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왜 과학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과학책을 너무 많이 읽은 끝에 엔지니어가 된 것일지도, 혹은 반대로, 원래 엔지니어가 될 운명이었던 내가 자연스레 과학책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책은 유난히 끝까지 읽기 어려웠다. 당시 유행하던 소설책을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도 몰입해 읽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앞선 내용을 기억하며 따라가는 일이 버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뒤 맥락을 기억하거나 심리나 분위기 같은 것을 이해하는 것 또래보다 버거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과학책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과학책은 순서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주제부터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 과학책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느 날, 엄마에게 과학 잡지를 사달라고 졸랐던 적이 있다. 평소에는 책을 잘 사주시던 엄마가 그때만은 사주지 않으셨다. 이유는 이건 너무 딱딱한 책이라 내가 읽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딱히 반박도 못하고 넘겼지만, 그 일이 너무 아쉬웠다.
그때 갖지 못했던 잡지는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아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잡지를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느꼈을 기쁨이 궁금해서일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오래 기억하는 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으며 품었던 감정들이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도 중요한 건 성과보다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