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자랐던 나

by 공책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솔직히 다른 반이 부러웠다. 이유는 수학 선생님 때문이었다. 다른 반 수학 선생님이 수업을 훨씬 잘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체도형 단원에서는 축구공의 모양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다는데, 그걸 들은 친구가 나에게 직접 설명해 준 적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 선생님이 우리 수학 선생님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2학년이 되었고, 내가 그렇게 바라던 그 선생님이 우리 반 수학 선생님으로 오셨다. 그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3학년 모두 우리 반 수학선생님이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선생님은 나에게 참 잘해주셨다.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나는 평소 수학 시험을 보면 다 풀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서 여유롭게 검산까지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난히 수학 시험이 어려웠다. 시간이 넉넉했던 나조차 시험 시간을 꽉 채워 문제를 간신히 풀었다.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불만 섞인 눈빛을 보냈다. “시험이 너무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그때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90점 넘긴 애도 있어.” 그 애는 바로 나였다. 순간 기분이 좋았지만, 주위 친구들의 시선이 조금 따가운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나는 그 시절 숙제를 거의 집에서 하지 않았다. 꼭 아침에 학교 와서, 그것도 수업 직전에 다급하게 했다. 3교시에 숙제 검사가 있으면, 아침 1교시가 시작되기 전부터 숙제를 시작했다. 집에서 하는 건 귀찮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나름대로 스릴을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하다 보니 숙제가 누락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한 번은 수학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맞고 나서도 이내 까먹는 스타일이었다. 반성이나 상처보다는, 그냥 5분 후면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던 아이였다.


그런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을 때, 선생님이 조용히 내 옆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숙제를 왜 안 해왔어?” 순간 뜨끔했다. 그 말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매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었지만, 선생님은 나를 때린 걸 마음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친구들 사이의 일로 걱정이 많을 때가 있었다. 나는 한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게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수학시간, 수업 중에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으셨다. “무슨 일 있어? 평소엔 밝은 표정인데 오늘은 다르네?” 순간 주위의 시선이 조금 쑥스러웠지만, 동시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은 나를 특별히 편애하셨다기보다는 특별히 염려해 주셨던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친구와 어울리길 어려워한다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실제로 몇 번은 나에게 다가오셔서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씀하기 시도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직장인이 되었다. 어느새 사교적인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낯선 자리에서도 어색함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동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행사 자리에서는 농담도 곁들이며 분위기를 즐긴다. 활달하게 주위 사람들 이름을 외우고 인사를 하고 다니다 보니 성격 참 좋아 보인다는 말까지 듣는다.


가끔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그리고 예전 수학 선생님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성장의 속도는 다 다른 것 같다. 누군가는 중학교 때 키가 크지만, 누군가는 고등학교에서, 또 누군가는 대학에 가서까지 키가 자란다. 마음의 성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또래보다 정서적으로 조금 느리게 성장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눈치를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이전 글들에서도 이야기했듯, 중학교 시절의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진짜로 몇 시간을 무단결석을 한다거나 가져가야 할 책을 일부러 계속 가져가지 않다가 결국 담임 선생님이 집에 전화까지 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일들은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는, 또래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조금은 느리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중학생 시절 수학 문제를 푸는 지적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자라났지만,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 규칙을 받아들이는 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성은 그보다 한 걸음 뒤처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차이가 나 자신에게도 혼란스럽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척 괴로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처로 남을 수도 있었던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너무 크게 겪지 않도록 배려를 받으며 큰 것 같다.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늦었던 발달을 안전하게 따라잡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때때로 그 수학 선생님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말하고 싶다.


“선생님, 저 이제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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