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이야기 테이프가 있었다.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동화를 읽어주는 카세트테이프는 우리가 잠들기 전 필수 아이템이었다. 엄마 아빠는 잠자기 전에 그 테이프를 틀어주곤 했고, 카세트에서는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다양한 동화들과 생생한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정말 많은 동화가 녹음되어 있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딱 한 가지다.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 다들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알게 된 이발사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다 결국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동화를 이야기 테이프로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무서웠다. 대나무숲에서 외치는 장면의 소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목소리가 너무 현실적이고 생생했다. 내 귀에는 그것이 마치 귀신이 어린이 동화 목소리로 변장한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날 밤, 엄마 아빠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내가 잠들기 전에 거실로 나가셨다. 그런데 나는 그 무서운 목소리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무서움에 떨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식탁에 앉아 있던 아빠에게 달려갔다. 겁에 질려 이야기 테이프가 너무 무섭다며 울자, 엄마는 조금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놀랍게도 아빠는 동화 이야기 테이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나에게 공감해 줬다.
그날 이후로 그 테이프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나의 눈물과 공포에 못 이겨, 결국 그 테이프는 우리 집에서 퇴출당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소심한 아이였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나 스스로를 대범하지 못하다고 자주 느낀다. 자라면서 조금 더 소심해진 부분도 있겠지만, 그때 그 동화 테이프를 무서워하며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건 그냥 타고난 기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뭐 그래도 뽀뽀뽀는 안 무서워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