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속에서 자란 세대

by 공책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그 시절 우리는 매일같이 구구단을 외우고, 받아쓰기 시험을 보며 학교를 다녔다. 받아쓰기 시험이 끝나면 짝과 시험지를 바꿔 채점을 했다. 그리고 많이 틀린 아이들은 손바닥을 맞았다.


내 짝은 무척 착했지만, 받아쓰기를 자주 틀렸고, 내가 채점한 그 아이의 시험지에는 늘 틀린 표시가 가득했다. 그 아이는 그때마다 손바닥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OO아, 이제 친구 거는 다 맞다고 매겨. 알겠지?”


나는 도무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틀린 건 틀렸다고 해야 하고, 우리 선생님도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되물었다.


“왜? 왜 그렇게 해야 해?”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 해.”


다행히 어떻게 채점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는 곧 사라졌다. 시험을 본 후 손바닥을 맞는 벌이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 학부모의 민원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이 일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정직하게 채점했어야 했을까? 다 맞다고 채점했어야 했을까?


그 질문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조금씩 정리되었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리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아무리 체벌이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그저 지시에 따라 정직하게 채점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쩌면 잘못된 시스템에 나도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엄마가 “다 맞다고 매겨”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잘못된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처음 가져본 것이다.


그 시절은 수평적 질서가 제도적으로는 자리 잡았지만,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위계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때였다.

학교선생님이 하는 말, 부모님이 하는 말, TV속에서 나오는 말이 서로 다 달랐다.

원래는 괜찮았던 관습 같은 일이 어느 순간부터 하면 안 되는 일로 변했다.

우리는 그 모순들 속에서 자라며

이른 나이부터 옳고 그름을 스스로 고민해야만 했던,

어쩌면 행운의 세대였는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22화나의 첫 번째 성공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