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성공 경험

by 공책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수학 학습지를 풀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다. 연필을 잡는 법도 모를 때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숫자를 배우기 전에 연필 잡는 법을 학습지 선생님께 배워야 했다. 언제 그만뒀는지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는 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아마 초등학교 6학년 즈음 그만둔 듯하다. 그러니까, 연필을 처음 잡던 시절부터 중학교 수학을 본격적으로 수학을 배우기까지 나는 꾸준히 수학 학습지를 했던 셈이다.


수학 학습지는 보통 일주일 치 분량의 문제지를 선생님이 주고 가면, 그걸 매일 나누어 풀고 다음 주에 다시 선생님이 오셔서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오랜 시간 동안 매일 정해진 분량을 성실히 푼 아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습지가 하기 싫을 때면 엄마에게 "나 오늘 하기 싫어" 라고 솔직하게 말하곤 했는데, 엄마는 의외로 쿨하게 “그래, 싫으면 오늘은 하지 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공부 문제에 있어서는 꽤 쿨한 편이었다(고등학교에 올라간 뒤로는 많이 달라지셨지만) .


물론 정말 하기 싫은 날도 많았고, 자주 미루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학습지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학습지 선생님들이 자주 칭찬을 해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 학습지를 하면서 여러 선생님을 만났는데, 대부분이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 학습지 회사에서 주최하는 경시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학교나 교육청이 주관하는 공식 대회는 아니었고, 학습지에서 자체적으로 여는 작은 행사에 가까웠을 것이다.


나는 경시 대회를 어떻게 준비하는 건지 몰라서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나갔다. 가서 주어진 문제를 내가 아는 대로 풀었다. 그런데 의외로 상을 받았다. 정확히 어떤 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많이 놀라셨던 게 기억난다. 어른들은 나를 한껏 칭찬해 주었고, 어린 나는 몹시 우쭐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수학을 잘하는 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에도 대회에 나갔지만, 그때는 상을 받았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상을 아예 못 받았거나, 받았어도 작은 상이었기에 기억에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대회에서의 수상은 진짜 실력이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결과였던 것 같다. 정말 실력이었다면 해마다 꾸준히 상을 타야 정상이다.


하지만 상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때 내가 스스로를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수학을 잘해”, “나는 수학을 잘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내 성장 과정에서 큰 갑옷처럼 나를 보호해 준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성장하면서 혼란과 방황을 겪게 마련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고집이 세고 떼를 많이 쓰는 아이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아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성격이 더 심해진 면이 있었다. 시키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기도 하고,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학을 잘한다는 자부심은 결국 나를 다시 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물어보면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서 괜히 뿌듯했다. 놀이에는 나를 전혀 끼워주지 않다가도 수학 문제를 풀다가 모르겠으면 나에게 슬쩍 다가와서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마치 “너 이건 모르지?”라는 태도로 나에게 어려운 수학 책이나 문제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그럼 당장은 이해를 못해도 한참을 생각하고 기어이 이해해서 그 친구에게 “나 알아” 라며 친구의 도전(?)을 물리치기도 했다.


다른 선생님들 말씀은 잘 듣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수학 선생님에게만큼은 그런 모습이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수학 선생님 말씀을 항상 잘 들었다고는 말하기에는 양심이 좀 찔리지만…)


만약 그 첫 경시대회가 내 수준보다 훨씬 어려워 좌절로 끝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의 성장 과정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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