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양보

by 공책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댁은 명절이면 항상 북적이는 집 중에 하나였다. 모든 가까운 친척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물론 먼 친척들도 많이 인사를 하러 와서 그야말로 바글바글했다. 때때로 그 시끌벅적한 공간에 이웃집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하곤 하셨다. 그러면 우리 가족은 식사를 차려드리고, 인사를 드리곤 했다.


사실 명절은 나에게 꽤나 기다려지는 날이었는데, 친척들에게 선물이며 용돈이며 잔뜩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척이 혹시나 내가 잠들어 있는 깊은 밤이나 혹은 새벽이 되어서 도착하면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인사를 드렸는데, 이유는 혹시 나에게 줄 선물이 있는데 내가 잠에 빠져 미처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을 까봐 그랬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명절이 있다. 그 명절에 받은 선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손난로였다.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이었는데, 버튼을 '똑딱' 누르면 순식간에 따뜻해지고, 다시 뜨거운 물에 담가두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처음 그 버튼을 눌렀을 때의 짜릿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로 그 손난로는 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마냥 신기하고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이걸 학교에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은 이미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중, 설날의 집은 평소처럼 손님들로 붐볐고, 그날도 이웃 할머니가 오셨다. 그분은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이셨는데, 아버지는 그분 옆에 앉아 “많이 아프시죠?” 하시며 정성스럽게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계셨다. 나는 그 옆에서 들뜬 마음으로 새로 받은 손난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평소 내가 받는 선물에는 별 관심이 없던 아빠의 눈이 내 손에 있던 손난로를 향했다.


“잠깐 줘봐.”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난로를 가져가셨다. 그리고는 이웃 할머니의 아픈 다리에 그것을 조심스레 얹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찜질하시면 조금 괜찮으실 거예요.”


나는 놀라 말없이 바라봤다. 선물을 뺏긴 것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채.. ‘잠깐 빌리는 거겠지’ 생각했던 그때, 아빠는 내게 말을 건네셨다.


“XX야, 이거 우리 할머니 드리자. 다리가 많이 아프신데, 이거하고 계시면 좀 나아지실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사실 그 손난로를 너무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아빠는 그대로 손난로를 이웃 할머니께 드렸다. 다시 사준다는 약속도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시는 듯 보였고, 아빠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그 순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첫 양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를 다시 생각할 때마다 괜히 뿌듯했다.


나는 그날, 잠깐의 욕심을 내려놓고 내 삶에서 오래도록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을 해 본 것이었다.


가끔은 그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 욕심이 커져 버렸다고 느껴질 때쯤. 그러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잠시 욕심을 내려놓고 평생 내 마음속에 남을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살면서 내 욕심을 버리고 마음에 남을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되짚어 보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그렇게 살지 못했다. 이제까지 살아온 내 모습에 대해서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 다짐한다. 앞으로는 어린 시절 그렇게 내가 간절히 원했던 손난로를 내어줬던 그때처럼 나의 욕심을 미루고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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