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하고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한다. “어느 학교를 나와야 할까요?”, “석사가 좋을까요, 박사가 좋을까요?”, “영어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연봉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등등.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질문 속에서도, 정작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는 빠져 있다. 바로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과 미국 취업 시장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한국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채제도에 가까운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한다. 다시 말해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먼저 뽑고, 입사 후 일정한 교육 과정을 거쳐 실무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신입사원 교육도 체계적이고 기간도 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스페셜리스트(전문가)보다는 제너럴리스트(잠재력 있는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의 채용 방식은 다르다. 수많은 미국 시민권자들이 있는데도 굳이 외국인을 채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 기업이 외국인을 뽑을 때 기대하는 것은 똑똑하지만 이제 막 배워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특정 분야에서 바로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다. 만약 채용 후에 장기간 교육을 해야 한다면, 굳이 영어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외국인을 뽑을 이유가 없다. 결국 미국 회사는 입사 전부터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 즉 바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을 원한다.
전문가라고 하면 흔히 실력이나 경험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산업공학 분야의 전문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전공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전공명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세부 분야에 집중했는가,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가, 어떤 주제로 논문을 썼는가이다. 따라서 “어떤 학과를 가면 미국에서 취업이 잘 되나요?”라는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같은 학과라도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떤 역량을 키웠으며, 어떤 세부 기술에 집중했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야만 봐도, 데이터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머신러닝 엔지니어, 딥러닝 엔지니어는 모두 다르다. 심지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내에서도 금융 데이터, 이미지 처리, 자연어 처리 등 각기 다른 세부 분야가 존재한다. 이공계인의 커리어는 결국 내가 어떤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을 것인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성이 너무 넓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력이 되어버리고, 너무 좁으면 시장 기회가 줄어든다. 결국 균형 있고 실질적인 세부 분야 선택이 중요하다.
전공과 세부 분야는 연봉과 취업 가능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처럼 입사 후 연공서열에 따라 연봉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라, 미국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의해 연봉이 결정된다. 사람이 부족한 분야에서는 연봉이 치솟고, 반대로 인력이 많은 영역에서는 연봉이 낮아진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가에 따라 취업의 난이도와 보상 수준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세부 분야가 유망한지는 한 사람이 다 정리하기 어렵고, 나 역시 모든 분야를 알지는 못한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을 통해 묻는 것이다. 학회나 연구모임, 또는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어떤 분야가 활발한지, 채용이 많은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현실적인 정보는 인터넷 검색이나 책을 찾아보는 것 보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서 묻는 방식으로 얻는 게 가장 빠르다.
물론 연봉이 높다고 해서,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그 분야를 덜컥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 분야의 일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며, 꾸준히 공부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적성과 시장 수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기회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미국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어느 대학에 가야 할까요?”, “학벌이 어느 정도면 가능할까요?”가 아니다. “이 분야를 하고 싶은데, 미국 취업시장에서 이 분야의 수요는 어떤가요?” 이 질문이 먼저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영어도 학벌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