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바로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야만 해외 취업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공계 석·박사라면,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이공계 석·박사에게 필요한 영어 실력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의 기술, 연구, 경험을 영어로 설명하고,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발음할 필요도, 영어로 농담을 구사할 필요도 없다. 영문학 작품을 읽거나 문학적 표현을 익히는 능력 역시 필요하지 않다. 업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공식적인 대화를 원활히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일할 수 있는 영어’다.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영어가 얼마나,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를 정확히 인식한 뒤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수준의 영어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발음이 조금만 부정확해도 상대가 이해를 못 하고, 단어를 잘못 쓰면 맥락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수능 영어 듣기처럼 또박또박한 표준 발음이 아니라, 문장을 다 끝내지 않거나 빠른 속도로 말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정도의 회화 능력을 갖추는 건 짧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문학작품을 분석하거나 문법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아니라, 시간을 들이고 꾸준히 말하고 듣는 훈련을 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의 영어다. 물론 그 시간을 확보하는 건 각자의 노력과 환경에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사실 영어 학습에 대해 조언할 자격이 없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지낸 경험이 있어 이미 영어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한 상태로 본격적인 유학을 시작했고, 부모님의 열정적인 뒷받침 덕분에 영어 교육에 꽤 투자를 받은 편이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쓰지 않고 싶었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영어가 는다”고 쉽게 말할 입장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해외 취업 이야기를 하며 언어를 빼놓을 수는 없기에, 내가 옆에서 본 경험을 토대로 한 가지 관찰은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영어를 빨리 익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용기와 꾸준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어를 빨리 배우는 사람은 틀려도 과감하게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듣기·말하기는 물론 읽기·쓰기 실력까지 자연스럽게 오른다. 반면, 매번 단어와 문법을 완벽히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 공부하는 사람은 영어를 배운다는 그 자체로는 훌륭한 공부일지 모르겠으나 일하는 영어를 배우기에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 취업을 준비한다면 ‘원어민처럼 말하겠다’는 부담은 내려놓기를 권하고 싶다.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편한 마음으로 영어를 늘리면 그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미 이공계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그 과정에서 공부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글로벌 인재다. 전 세계는 STEM 인재 부족을 겪고 있고, 좋은 논문을 내는 연구자라면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영어는 그 전문성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언어라는 도구’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전문 분야를 설명하고 타인과 토론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다. 그 정도면 영어는 커리어의 벽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는 다리가 된다. 이는 해외 취업뿐 아니라 한국 국내에 계속 살더라도 마찬가지다. 해외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를 영어로 자신 있게 설명하고, 타인의 연구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회의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공계라면 누구나 공학용 계산기를 다뤄봤을 것이고, 컴퓨터 전공이 아니더라도 컴퓨터 언어 하나쯤은 필요에 의해 익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계산기가 궁금해서, 혹은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를 탐구하고 싶어서 그것들을 배운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익혔다. 영어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이공계 전문성을 세상에 알리고 공유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자. 그 시각이 바뀌는 순간, 영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커리어를 넓히는 기술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