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장 예민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학벌이다. 논쟁적인 주제가 될까 봐 꺼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학벌에 과도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실력만 있다면 기회는 온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학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냐’다.
물론 좋은 학교를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좋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도 없고, “반드시 좋은 학교에 유학을 가야 한다”라고 미리 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학벌 차별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거나, 사회적으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이라는 식의 주장이나 개혁 담론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지극히 실질적인 이야기다. 미국에서 이공계 엔지니어, 특히 석·박사로 취업을 하고자 할 때 학벌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취업 전반이나 미국의 모든 직군을 일반화하려는 글도 아니다. 이 브런치북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이공계 석·박사들의 미국 취업이라는 맥락 안에서의 이야기다.
먼저 미국 이공계 박사의 채용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거의 공통적으로 중요한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테크니컬 인터뷰다. 지원한 포지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공 지식,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이 면접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필수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학벌이 낮더라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면 학벌이 좋은 지원자를 제치고 합격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대로 아무리 명문대 출신이라도 이 면접에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만 준비하면 통과하는 수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눈앞에서 바로 코딩을 시키기도 하고, 전공 문제를 두고 깊이 있는 토론을 하기도 하며, 면접관들 앞에서 문제를 푸는 전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이 과정은 10분, 20분짜리 형식적인 면접이 아니다.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실력이 있든 없든 숨기고 넘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하나 자주 나오는 의문은 “그래도 학벌이 좋아야 면접 기회라도 얻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공계 석·박사 채용 시장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이 시장은 단순히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한 자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LLM을 전문으로 하는 머신러닝 엔지니어를 뽑는 포지션이 있다고 해보자. 컴퓨터 관련 학사 학위를 받고, 머신러닝 분야에서 석·박사를 했으며, 동시에 LLM에 대한 실질적인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거기에 더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나 영주권이 있고, 그 회사에 관심이 있으며, 회사가 채용하는 시점에 마침 구직 중일 확률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생각보다 매우 작아진다. 실제로 sns 등을 통해 미국에서 활동 중인 LLM 전문 박사 출신 머신러닝 엔지니어가 얼마나 되는지만 조금만 찾아봐도 이 시장의 특성이 보인다. 즉, 학벌이 어떻든 간에 좋은 연구 성과와 분명한 전문성이 있다면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벌에 너무 연연하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꼭 몇 위권 안의 대학만을 목표로 삼고, 그곳에 가지 못하면 아예 유학은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다. 혹은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지나치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경우도 많다.
사실 나 역시 과거에는 학벌에 연연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미국 취업 시장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깨닫게 된 점은 분명했다. 자신이 공부한 전공, 그리고 지원하는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충분하다면 배경 조건은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동시에 아무리 학벌이 좋아도 나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이 있으면 탈락한다. 취업 이후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링 분야는 실력과 전문성이 드러나는 속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빠르다.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학벌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실력으로 문을 열 수 있지만, 실력이 없다면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좋은 학교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갈 수 있다면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연연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학벌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미국 취업 시장을 아직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 그리고 앞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분명한 실력이 있다면 그 실력을 보여줄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