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력은 미국에서 통할까?

by 공책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서의 직장 경력이 미국 취업이나 석, 박사 과정 진학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조금 길게 설명해 보려 한다.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은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를 정리한 개인적인 관점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모든 직업에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일정한 이미지, 즉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예를 들어 교수라고 하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변호사라고 하면 말을 잘하고 토론을 잘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래서 진로를 선택할 때도 공부를 즐기는 사람은 교수를 지망하고,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은 변호사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취업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흔히 영어에 능통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외 취업을 하려면 우선 영어를 매우 잘해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실제로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 취업의 핵심 요건을 한마디로 꼽자면, 영어 능력이나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전문성과 자발성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이렇다. 두 학생이 모두 반도체 관련 학과에 다닌다고 가정해 보자. 이 학과에서는 디지털 설계, 아날로그 설계, 반도체 물성,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울 것이다.


첫 번째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받지만, 특정 분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두 번째 학생은 전체 성적은 들쭉날쭉하지만, 아날로그 회로와 전자회로에 깊은 관심이 있다. 수업 내용에 그치지 않고 해외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찾아 듣고, 최신 논문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한다.


이 둘 중 누가 미국 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


물론 첫 번째 학생도 매우 우수하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두 번째 학생을 고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 취업에서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학생이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출 가능성이 훨씬 높다.


엔지니어의 역할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같은 반도체 설계 분야 안에서도 디지털 설계와 아날로그 설계가 나뉘고, 프로그래밍을 주로 하는 사람과 실험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도 구분된다. 다시 말해,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모든 분야를 두루 잘 아는 사람보다 더 선호될 가능성이 높다. 아날로그 설계 전문가에게 갑자기 디지털 설계를 맡기거나 전혀 다른 업무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폭넓지만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특정 분야에 깊이를 가진 사람을 더 원한다.


“융합이 중요한 시대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융합 역시 하나의 전문 분야다. 예를 들어 메카트로닉스는 기계공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을 융합하는 학문이다. 이는 세 분야를 단순히 조금씩 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전문적으로 통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즉, 융합 또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


다시 전문성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전문성을 쌓기 위해서는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자발성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단순히 학교나 학원 수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반도체 아날로그 설계 10년 차 수준의 전문성”을 한 번에 가르쳐주는 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명확히 범위를 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필요한 내용을 찾고, 어디까지 알아야 할지 고민하며,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전문성은 결국 자발적인 탐구와 축적의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취업하고 싶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역량을 전문성과 자발성이라고 정의한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에서의 직장 경력이 미국 취업이나 석·박사 과정 진학에 도움이 될까?


이 역시 전문성과 자발성이라는 두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의 직장 경력이 자신이 향후 진출하고자 하는 전문 분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역량을 키워왔다면 이는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설계를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관련 분야로 취업하고자 한다면, 직장에서 아날로그 설계를 담당하며 단순히 주어진 일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 개선하며 적극적으로 일했다면 그 경력은 매우 가치 있다. 이는 많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분명 차별화 요소가 된다.


반면,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와 무관한 업무를 했거나, 관련 업무를 하더라도 단순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면 그 경력은 기대만큼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거나 계획 중이라면,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하기를 권하고 싶다.


첫째, 자신이 앞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전문 분야와 연결된 일을 할 것.

둘째, 그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키울 것.


결국 경력의 가치는 ‘몇 년을 일했는가’, ‘어느 회사를 다녔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얼마나 깊이 있게 쌓았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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