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황 운

모르는 골목길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해가 저켠에서 지려할 땐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법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어딘지도 모르는 집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푸르게 지는 해를 보게 되면 가슴이 쿡쿡 아픈 법이라고. 제법 괜찮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궁핍하고도 분주히 살아가는 나도 지는 노을이 부대낀 어느 날 바닷가 산책로에서 이 말을 떠올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보금자리는 그간 어디에서 누구를 반겼나. 분분히 펼쳐진 나의 흔적들로 하여금 대강 짚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허나 그곳들이 필히 나를 반기게 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만든 공간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보금자리라고 겨우 몇 가닥 집어낸 장소들도 결코 내게 솔직한, 아니 사실 나의 집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최근 나를 자꾸만 조여 오는 게 다시 힘들어진 이유다. 커감에, 으레 멈춰감에, 자꾸만 비루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은 스스로를 퇴로 한 쫄병으로 여겨지게 한다. 애초에 업적도 없었던 것이다.

묻고자 하는 바는, 안식처란, 보금자리란, 다시 말해 해가 질 때 생각나는 그 장소란,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이미 당연히 하나씩은 갖고 있는 그런 단순한 공간이란 말인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대들의 안식처는 모두 가짜였으며 그것은 단순히 지친 육신 따위를 받쳐줄 침대라는 사물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이 있는 집, 혹은 나의 방, 그 공간 속 한 칸 남짓 대자로 널브러진 침대. 그것이 어찌 철학을 아는 인간의 안식처가 된다는 말인가.

내가 느낀 바로는 진정 평안은 마음이 자유로울 때 온다는 것이다. 현재 나는 어디에서도 나의 안식처를 찾을 수 없으며 이곳에서 떠난다고 하여도 이미 국한된 것만 같은 이 기분을 다시 느끼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까, 나도 그때가 그립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단순히 외로움이라는 악을 넘어 이곳까지 생각이 닿을 줄은 정말이지 나도 몰랐고 이만큼 괴롭게 됐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다.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강아지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여자를 만난다. 그런데도, 나는 이만큼 괴롭게 됐다. 죄수를 반성시키는 것은 꽉 막힌 철창과 매서운 감시가 아니라 끝없이 주어진 고뇌의 시간이 아닐까. 반성하는 사형수는 사형을 원한다. 나도 수면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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