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빨강 보타이의 아버지

by 옥흐


나의 손에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공연한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있다. 주름 하나 없는 곱게 다린 흰색 와이셔츠에 남색 정장을 입은 아버지. 왼쪽 가슴에는 빨간색 행커치프를 멋스럽게 꼽고 목에는 빨간색 물방울무늬의 보타이를 맸다. 코끝에는 돋보기안경을 살짝 걸치고 뚫어져라 악보를 본다. 이마의 힘줄은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와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저쪽 방에서 색소폰 소리가 났다.

“아버지! 집안에서 연습하면 동네에서 민원 들어와요. 나가서 불어요.”

“그렇게나 시끄럽나? 안쪽 방에서 연주하면 안 되겠나?”

아버지를 향한 나의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바닥에 금빛 색소폰을 하나하나 풀고는 반짝반짝 힘을 다해 닦아냈다. 조립한 아버지의 보물을 다시 검은색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은퇴 후에 소일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색소폰 동아리에 한번 오라는 말을 들었다. 한 두 번 연주하는 것을 지켜본 이후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가시간 보내기도 좋고 조금 숙달이 되면 봉사활동도 가능하다는 말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색소폰 배우는 것을 반대했다. 다른 악기에 비해 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수고는 덜지만 얼굴에 힘줄이 튀어나오도록 있는 힘껏 불어야 소리가 나오는 악기라 안쓰러워 보였다. 더구나 악기의 무게가 엄청나서 체구가 아담한 아버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늦게 시작한 악기 공부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매일 매일 지하 연습실에 출퇴근을 했다. 악보 보는 법, 운지법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날마다 해내는 아버지를 누가 막겠는가? 이제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어메이징 그레이스’까지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점차 노인주간 보호 센터, 병원, 교회, 지하철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아버지는 모여든 관객들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병원에서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버지 일행들은 출동했다. 병원 로비에서 간이 특설 무대가 만들어졌고 40여석이 만들어졌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였다. 크라이막스 부분에서 음이탈이 나버렸다. 아버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뜻밖에도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오늘 곡 정말 멋졌어요.”

“또 와서 연주해 줄 수 있나요?”

“하루 종일 병원에서 우울했는데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아버지는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병원 로비에서 만난 환자들이 이런 말을 하면 더욱 신이 났다. 좀 전의 실수는 온데간데없었다.


나의 손에서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버지가 유난히 편안한 표정으로 색소폰을 불고 있다. 행커치프의 색깔만큼 열정적으로 불고 있다. 아버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에 특히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봉사에 즐거움을 느꼈던 마음 고운 사람이었다. 이 열정과 따뜻함이 고스란히 나의 삶속에 녹아들기를 조용히 말해본다. 나는 여전히 서툴러도 사람 앞에 서는 일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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