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소리-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by 옥흐



노란색 연습장의 흐물흐물한 글씨. 삐뚤삐뚤하게 적힌 글자들은 칸을 넘치고 있다.

“사랑흔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면하지 않으며”


병원 큰 창으로 햇빛이 부서지듯 들어왔다. 철재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 햇빛이 걸쳐졌다.

“아버지! 이 자리 전망이 병동에서 제일 좋아.”

“그런가…”

“그렇지. 차가 시원하게 빠지는 도로가 보이고 일단 높잖아.”

고가도로에 출근차가 가득했다. 차가 움직이다 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원한지 2주하고도 오 일째 되는 날이었다.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다.’라는 희망은 저 멀리 도망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만 있을 수 없었다. 평소 쓰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노란색 공책과 볼펜을 준비했다. 아버지의 성격이 거침없이 나타나던 각지고 반듯반듯하던 글자들은 이제 힘없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무슨 글자를 쓰는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아버지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평소 외우고 있던 말들을 쭉 써내려갔다.

“아버지 오늘 컨디션 좋으네. 하고 싶은 말도 해볼까요? 내친김에 우리 녹음기도 한번 켜 봐요.”


아버지도 이제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아는 지 거절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인생이 그렇다. 태어나면 가는 거.”

“아버지! 인생이 어떤데?”

“내가 사랑을 배워본 적이 없다. 사랑한다고 따시게 말해 본적이 없다. 우리 시대 남자들은 아침이면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왔지. 그저 책보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처럼 출퇴근하고 돈만 벌어다 주면 될 줄 알았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쉬운 것도 많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버지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행간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듯했다.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영상처럼 지나가기도 했을 것이고 좋았던 일, 기뻤던 일, 힘들었던 일, 아쉬웠던 일들이 짧은 시간동안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아버지의 침대 옆에 서있던 나, 엄마와 동생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는 끝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어 버렸다. 아버지의 눈가에는 아쉬움으로 그렁그렁했다.

아버지의 그 모습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버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이미 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그러니 아버지. 아쉬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아요. 우리의 사랑은 계속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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