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당신의 질서가 내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수국이 피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셨죠? 이번 봄에는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제법 꽃놀이를 다녔습니다. 마산에 이른 매화꽃도 보고 웅동수원지에 있는 오랜만에 개방한 벚꽃도 보았습니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어서인지 개화가 덜 되어 많이 아쉬워했죠.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와 엄마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예쁜 미소가 담긴 사진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아쉬운 꽃놀이도 있었지만 정말 흐드러지게 핀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 꽃도 보았죠? 첫 번째 방문 때는 덜 피어서 점심만 잔뜩 먹고 왔었죠?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가서 성공했어요.
“쌀 튀밥 같다.”
“아니다. 팝콘 같다.”
“아니야. 쑥 넣고 찐 쑥 털털이 같다.”
“우린 왜 먹는 얘기만 해?”
위양지 숲에 까르르까르르 소리만 들렸습니다.
아버지
그곳은 어떤가요? 지내 실만 하신가요? 이곳은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짧은 가을도 보내고 이제 겨울에 들어섰습니다. 어젠 장롱에서 두꺼운 이불도 꺼냈습니다. 엄마는 내복도 입으셨어요. 아버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자주 입으시던 카키색 파카를 챙겼습니다. 따뜻하게 잘 입고 있습니다. 집엔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가 없는 이곳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잘 있고 무너질 것 같았던 우리들의 세상도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며칠 전 10km 마라톤에 참가해서 무사히 완주도 했어요. 생각하고 마음먹고 실천하면 반드시 이루셨던 아버지를 닮아가나 봐요. 풀코스에 비하면 짧은 거리지만 처음 출전하는 10km는 저에게 쉬운 거리는 아니었답니다. 처음 신나게 달리던 내리막길이 돌아오는 길에선 오르막으로 변해 있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버텼어요. 우리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처음엔 좋았던 것들이 결국 나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싫어서 밀어 놓았던 것들, 힘들어했던 일이 나중에는 복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는 그런 일말이에요.
중간중간에 응원해 주시던 분들도 만났어요. 특히 마을회관에서 나오신 할머니 부대들 정말 대단했어요. 빈 페트병을 들고 두드리시면서 힘내라고 말씀하시던데 엄청 도움이 되었어요. 이렇게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죠. 도움을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저도 선한 영향력을 주기도 하고 용기 있게 받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색소폰을 연주하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하고 돋보기를 콧등에 얹고 얼굴이 빨개 지도록 불던 그 모습요. 복지관이나 교회,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공연을 즐겨하셨죠? 그래서 가을부터 엄마랑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어요. 이제 레슨시간이 다가와요. 어서 가봐야겠어요.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실 거라 믿어요.
또 좋은 소식 전할게요.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딸 경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