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다 합쳐 80개

by 옥흐

어제까지 쏟아붓던 여름비는 오늘 새벽 뚝 그쳤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리무진은 어느새 영락공원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꽃으로 가득했다. 우린 배웅할 수 있는 곳까지 같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를 저만치에 두고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다. 화장처리가 끝나고 분골기에 들어간 아버지가 뽀얀 가루로 변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주 만에 이런 큰일을 겪게 될지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머무를 곳은 푸르름이 가득했다. 봄이면 아카시아향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근처 냇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어 보였다. 아버지는 높다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 차창 가득 햇빛도 쏟아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밝고 환한 빛 말이다.


햇볕 잘 드는 거실 한쪽에 신문지를 넓게 펼쳤다. 반드시 아침이어야 하고 맑은 날이면 더 좋다. 마치 의식을 치르는 아버지는 돋보기를 끼고 바닥에 앉았다. 낡고 해진 검은색 파우치를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꺼냈다. 파우치 안의 온갖 손톱정리도구들이 신문지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작은 손톱깎이, 큰 손톱깎이, 손톱 줄, 미용가위, 귀이개, 족집게가 툭툭 떨어졌다. 제일 좋아하는 도구는 손톱 줄이다. 보통은 손톱깎이로 길이를 맞추고 살짝 정리를 하지만 아버지는 까다롭다. 손톱 끝부분만 살짝 깎고 나머지는 그것으로 기장을 한참 맞추고 또 맞췄다. 왼쪽 손가락, 오른쪽 손가락을 위로 번쩍 펼쳐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그 단정함은 과거로 거슬러간다. 추운 겨울 아랫목에 옹기종기 삼 남매가 앉았다. 1주일에 한번씩 동생과 나의 손톱정리를 해주는 시간. 세 명의 손을 펴면 도합 30개, 발까지 내밀면 30개의 발톱이 나온다. 그러고 아버지 손톱, 발톱을 다 합치게 되면 80개의 일거리가 펼쳐진다. 먼저 정리하기 전 손발이 깨끗이 씻어졌는지 확인한다. 더럽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우리들 목에 세수타월로 턱받이를 만들고는 밖으로 나가 따뜻한 물에 얼굴을 꼭 씻겨준다. “코는 휑하고 풀어야지, 옳지”


첫째라 항상 먼저 정리를 끝냈다. 동생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손톱깎이의 손잡이를 눌렀다. 그러면 나의 작은 반달들은 신문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상관없었다. 신문지 안에만 있으면 솔솔 한 곳으로 모아 신문지를 접어 버리면 되니까. 언제인가 손톱 밑의 살갗이 살짝 베인 적이 있었다. 얼른 빨간약을 들고 와서 발랐다. 그러고 나서 손톱 깎는 것이 약간 무서워졌다. 아버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내 손가락을 더 꽉 잡았다.


손톱깎이는 아버지 손에 가면 손톱정리 역할 이외에도 또 다른 일을 했다. 학교 복도마루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가시가 발바닥에 박혔다. 아버지는 손톱깎이를 소독약으로 깨끗이 한 다음 콧김으로 다시 소독했다. 이렇게 하면 아프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자 이제 뺀다. 움직이지 마.” 하고는 발을 꽉 잡았다. 너무 세게 잡는 바람에 가시 박힌 부위가 아픈 건지 잡힌 부위가 아픈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바닥을 바닥에 꼭꼭 디뎌 보았다. 정말 가시가 빠졌다. 어린 내 눈에는 마술사 같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사방탁자 서랍 안에는 아직 닳고 해진 검은색 파우치가 들어있다. 햇볕이 걸려있는 거실에 나가본다. 널따랗게 신문지를 펴서 내용물을 쏟는다. 손때 묻은 아버지, 동생 그리고 나의 80개 추억이 있는 손톱깎이를 만지작거려 본다. 아버지가 나를 만지던 방식으로 이제 내가 이 기억들을 돌본다. 오늘따라 햇볕에 앉아있던 아버지의 등이 무척 그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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