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계단으로 가려면 계단으로 가야 한다

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by 류해인

#홍지선

화장실 거울 앞에 선 홍지선은 눈치를 살피듯 본인 얼굴을 흘겨본다.


비탄에 잠긴 채 초라하고 꾀죄죄한 행색을 한 중년 여성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는 거울 속에 갇혀있다.


올해로 55세가 됐지만, 다 죽어가는 표정과 온몸으로 내뿜는 기운은 죽을 날을 목전에 둔 불치병 환자 같다.


처참한 몰골을 보니 또다시 눈물이 차오를 것 같다.


홍지선은 언젠가부터, 정확히는 남편을 잃은 뒤부터 자신감을 잃었다.


혼자 지내는 집에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가슴 펴고 다니는 법 없이 항상 구부정하고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무엇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남편을 뒤따라 가장 먼저 그녀 곁을 떠난 건 미소였다.


그와 반대로, 눈물과 절규는 지겹도록 들러붙었다.


간신히 눈물을 참아낸 홍지선이 세안을 시작한다.


세안을 마치고 기초화장품으로 피부를 정돈한다. 가볍게 화장도 해본다.


어디선가 ‘난 당신이 그런 식으로 가볍게 화장한 모습이 제일 예쁜 거 같아’ 하며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남편을 보러가야 한다.


오늘은 기필코 남편을 만나러 가겠다고 그녀는 새삼 다짐한다.


분명 남편은 여느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당신 왔어?’ 하며 반겨줄 게 틀림없다.





#강승호, 강재훈

“밥은? 점심은 어쩌려고?”


차에 탄지 20분 만에 강재훈이 입을 연다.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친절한 질문이자,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관심표현이다.


“근처 식당에서 사먹을게요. 아니면 편의점을 가던가.”


소년이 대답한다.


그러고는 다시 조수석 창문 너머로 시선을 둔다.


사실 소년은 지금 긴장한 상태다.


“꼭 녹음하고.”


소년의 아버지는 똑같은 내용으로 다섯 번째 당부한다.


“네.”


소년은 다섯 번째 대답을 한다.


강재훈이 운전하는 차는 서서히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에 올라선다.


긴장이 그 둘에게서 말을 앗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둘은 원래 말이 없다.





#이한성

이한성이 가방에서 사시미 칼을 하나 빼 든다.


그가 가장 아끼던 것이다.


날 길이만 330밀리미터로 사시미 칼 중에서 가장 길다.


각인부에 음각성형방식으로 <LEE> 가 각인되어있다. 그의 (전)여자친구가 선물한 칼이다.


처음 받아보는 값비싼 선물에 너무나 민망했던 나머지, 일식 칼에 안 어울리게 영어로 각인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투덜거렸었다.


일식요리를 배울 적에 습관을 잘못들인 이한성은 칼을 쥐는 방식이 다소 독특했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칼을 사용하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런 남자친구의 사소한 버릇까지 고려하여 손잡이부분과 중지걸이부분을 세심하게 조정하여 주문제작한 칼이었다.


칼을 쥔다.

언제 쥐어도 손에 딱 들어맞는다.


돌연 이한성이 나무도마를 놓고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이대로 보내는 건 칼에게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마땅한 재료가 없다.


하는 수없이 그는 냉장고 채소 칸에 널브러져있는 당근과 양파를 꺼내들고는 대충 물로 헹궈 도마 위에 늘어놓는다.


칼질을 시작한다.


일어로 ‘우스바’라고 하는 야채 절삭칼이 뻔히 있지만, 사시미 칼을 고집한다.


턱― 턱― 턱―


칼날과 나무도마가 만나는 경쾌한 소리가 좁은 부엌을 메운다.


그를 요리의 세계로 빠트렸던 그 음악소리가 오랜만에 들려온다.





#사마천파

오전 8시 50분, 사마천파 사무실은 갑작스런 위기에 단체로 패닉에 빠진다.


“아니, 어떻게 그걸 깜박할 수가 있지?”


보스 조광필은 혼잣말처럼 외쳤지만, 사실은 부하직원들의 부주의가 불러온 업무태만을 탓하는 발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가득 차오르던 자부심은 거품처럼 녹아 없어진다.


“……진짜? 이중에 아무도 전달한 사람이 없어?”


조광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묻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부하직원들 모두 무기력하고 방황하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분개에 가까운 한숨을 내쉰 조광필이 답답한 마음에 책상 서랍에서 꺼낸 담뱃갑을 만지작거린다. 가까스로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든다.


담배와 함께라면 어떤 짜증도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 부하직원 중 막내가 입을 연다.


“큰형님, 근데요. 지금 전달하면 안 되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11시에 시작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요. 그러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았잖아요. 십일 빼기 구는 이가 맞으니까요.”


막내의 말을 들은 조광필은 잠시 멍한 얼굴로 머릿속 계산기를 켰다.


11-9=2


정답.


몇 번의 검산을 거쳐 정답을 확인한 조광필은 이내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한다.


“……씨발. 뭐야? 막내야, 너 혹시 또라이야? 머리가 왜 이렇게 좋아?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리고는 돌연 막내 직원의 지능을 의심한 조광필은 방금 자기는 막내의 말에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흥분한다.


똑같은 2시간을 막내는 2시간’이나’ 남았다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명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단다.


조광필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 막내의 이런 긍정적인 면모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며 일갈한다.


처음 받아보는 칭찬에 수줍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막내의 모습에 조광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긁어주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큰형님의 따스하고 꼼꼼한 손길에 막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붉힌다.


칭찬은 누구에게 들어도 부끄러운 법인데, 특히 평소에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상대방의 입에서 들려온 것이라면 너무 황홀한 나머지 오줌을 지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평소 건강관리에 힘써온 막내의 괄약근과 전립선은 무척이나 튼튼했고, 사무실에서 용변을 지리는 사태는 발발하지 않는다.


조광필의 기분이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동안 한재천은 사무실 소파 옆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두 눈을 깜박인다.


살짝 숙인 고개와 사무실 바닥을 메운 촘촘한 타일을 보는 시선, 배꼽 아래로 공손하게 모은 두 손이 꼭 교감선생님께 혼나 잔뜩 겁먹은 어린 학생처럼 보인다.


한재천 옆에 나란히 서있는 정성도는 사무실 벽면에 내걸린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사훈(社訓)을 멍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그래도 눈치껏 머리에 쓰고 있던 노란색 헤드폰 볼륨은 1로 설정해둔 상태다. 그의 귀로 소곤대듯 음악이 흘러들러온다.


당연히 재즈다.


큰형님 조광필의 예상치 못한 칭찬에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 막내, 문지성이 호기롭게 외친다.


“내친김에 제가 지금 바로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마침 화장실에도 갈 겸 나가려고 했습니다. 옛날 조상님들은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한다죠?”


막내의 적극적인 업무 참여 자세에 조광필이 활짝 웃는다.


“이야, 좋아! 그래! 이번 일은 막내가 한번 해보자. 그냥 가서 이 쪽지만 전달하고 오면 돼. 간단해! 조상님들은 이런 일을 두고 식은 죽 먹기라고 했지, 아마?”


“오오! 식은 죽 먹기! 죽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잘 먹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예전에 형이 그랬거든요.”


조광필의 얼굴에 미소가 넘나드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한재천은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는 그야말로 조광필에게 맞아가며 일했다.


조광필의 말에 불평하거나 거역하는 자는 주로 뺨싸대기를 선물로 받았다.


오른손잡이였던 조광필의 선물공세는 언제나 진심이었던 나머지 오직 왼쪽 볼따구로만 수령이 가능하고, 너무나 감동적인 나머지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나면 받는 사람 눈에서 눈물이 아낌없이 흐르곤 했다.


가장 무서운 점은 조광필의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라서 받는 사람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시골 출신이었던 그는 매사 인심이 넘치는 편이었다.


한재천은 그동안 받은 조광필의 선물을 되새기며 본인의 실수에 통감한다.


지난해부터 기르기 시작한 앞머리 손질에 열중한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소홀히 하고 만 것이다.


한재천은 오늘 퇴근하고 나면 당장 앞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마천파 행동대장으로서의 위엄이 곤두박질치는 일은 2주에 한 번이면 족하다.


저번 주에만 벌써 2번 지적받았다.


초심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기왕 되찾는 김에 어제 세탁소에 맡겨놨던 신발도 잊지 않고 되찾아야겠다고 중얼거린다.





#형제캐피탈

마찬가지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사무실을 둔 (주)형제캐피탈 임원진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금일 중으로 아주 중요한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상대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금일’이라는 단어를 ‘금요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근데 오늘이 바로 그 금요일이다.


지금의 경우, 착각이 아니라 망각을 한 것 같다.


형제캐피탈 도상길 사장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친동생, 도상준 전무에게 말한다.

“야, 상준아. 너도 연락 받은 거 없다고 했지?”


“응.”


도상준 전무는 김이 폴폴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잘도 처먹는다.


“이따가 이 대리 출근하면 물어보자고. ……그나저나, 사무실에 먹을 거 없나? 배고픈데.”


“냉장고 위에 컵라면 있을 걸?”


도상길 사장이 무신경하게 대답한다.


“오, 좋아.”


형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도상준 전무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탕비실로 향한다.


“형도 줘?”


“물 끓인 김에 같이 먹자. 커피포트가……, 여기 있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도상길 사장은 그렇게 답한다.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52분.


그렇게 두 형제는 오늘의 두 번째 식사를 감행한다.





#사마천파

“지성아,잘다녀와라.주소기억하지?”


한재천이 큰소리로 외친다.


“아뇨?”


문지성은 세상에 그런 질문을 하는 파렴치한은 살아생전 본 적이 없다는 얼굴로 답한다.


“태성, 아파트, 11층, 왼쪽.”


정성도가 대신 답을 준다.


그래도 영 불안했는지 한재천은 막내의 첫 공식 업무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보다 확실한 대답을 제시한다.


“1102호.”


“아……. 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형님들에게 인사를 마친 문지성이 사무실을 나선다.


길을 걷는 내내 계속 주소를 되뇐다.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실수를 줄이는데 <메모>라는 위대한 습관이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그는 연신 중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1102호라는 주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문지성은 숫자에 유독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자리가 넘어가는 수에 취약한 편이다.


문지성의 기억은 워낙에 공간이 협소한 탓에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들은 금세 휘발되고 만다.


그나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쪽지를 전달하는 아주 단순한 것이라는 점이 사마천파 임직원에게 매우 희망적인 요소로 작용될 예정이다.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부득이하게 협소한 기억공간을 소지한 채로 사회에 발을 들이민 문지성은 부지런히 양발을 놀린다.


건강한 그의 다리는 빠르게 거리를 줄여나간다.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태성아파트 11층 왼쪽.”





#형제캐피탈

“하나 더?”


형의 물음에 도상준 전무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탕비실로 간다.


이번에는 동선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냉장고 위에 남아있는 컵라면을 모조리 챙긴다.


그 사이 도상길 사장은 커피포트에 물을 새로 받아온다.


나이를 더 먹었음에도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부지런한 형을 보며 도상준이 씩 웃는다.


그러자 도상길도 웃는다.


두 형제는 평소 웃음이 많다.


비록 음식―풍족한 양―을 앞에 두고 있을 때만 짓는 웃음이긴 하지만 그들은 항상 음식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 점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문지성

형님들이 알려준 장소에 무사히 도착한 문지성은 아파트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난관에 봉착한다.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중지한 것이다.


공사 중이다.


문지성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아파트 1층 경비실 문을 두드린다.


“예, 무슨 일이세요?”


경비원이 밝은 목소리로 묻자,


“안녕하세요. 저는 문지성이라고 하는데요. 올해 스물아홉이 됐고요.”


문지성은 본인을 소개한다.


“……네? 네. 안녕하세요. 올해로 스물아홉이 된 문지성 씨.”


경비원은 자기도 소개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눈치다.


그러나 하지 않는다.


앞으로 기껏해야 삼십 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마주할 인간에게 이름에 나이까지 밝히는 건 필요이상으로 친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지성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거의 제 아버지뻘은 되는 거 같은데요.”


문지성이 헤헤헤, 하며 조금은 지능이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웃음을 짓는다.


“아, 네. ……근데 어떤 일이시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를 둔 경비원이 재차 묻는다.


문지성은 그제야 처리해야 할 업무를 떠올린다.


“제가 이 쪽지를 전달하려고 하는데요.”


경비원이 문지성 손에 들린 쪽지를 내려다본다. “네, 그런데요? ……아!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인생을 통틀어 사랑고백은커녕 감사인사가 담긴 쪽지 하나 받아본 적 없는 경비원은 괜스레 설레어하는 본인을 진정시킨다.


“아니요! 11층 왼쪽이요.”


문지성은 어딜 넘보느냐는 얼굴로 쪽지를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경비원은 서운한 기색 없이 철저히 사무적인 어조로 묻는다.


“……근데 왜 그 얘길 저한테 하시는 거죠?”


“엘리베이터 공사는 언제 끝나나요? 10분 내로 마무리되나요?”


문지성은 최대한 빨리 쪽지를 전해야 한다는 큰형님의 말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히 충격적이다.


“……10분이요? 아니요? 엘리베이터를 통째로 교체하는 거라 적어도 2주는 걸려요.”


“아하…….”


문지성은 잠시 머리를 굴린다.


잘 굴러가지 않지만 어찌됐든 삐그덕거리며 서서히 굴러간다.


큰형님이 말한 <최대한 빨리>는 얼마나 빠른 걸 말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런가요? 그럼 할 수 없네요.”


문지성은 삐걱대던 뇌를 멈추고 경비원에게 다시 인사한다.


“감사했습니다. 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가야겠어요. ……계단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되죠?”


“계단으로 가야죠.”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문지성이 힘찬 걸음으로 계단으로 향한다.


계단으로 가려면 계단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