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루에 다섯 끼를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by 류해인

#문지성

금요일 오전 7시 30분.


잠에서 깬 문지성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다름 아닌 손도끼가 잘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안경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 안경부터 코에 얹고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뭉툭한 날과 녹슨 도끼머리는 필요이상으로 사용감이 물씬 풍긴다.


가격한 상대에게 물리적 타격뿐 아니라 세균을 통한 화학공격도 가능할 것 같다.


때로는 자상보다 무서운 것이 세균 감염일 수 있는 법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문지성은 여느 때처럼 망설임 없이 벌떡 일어난다.


침대 매트리스 속 용수철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탄력적인 움직임이다.


바닥에 놓인 2리터짜리 페트병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갈증이 일어서라기보다는 기계적인 습관에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이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다.


그는 저녁을 짜게 먹는 편이다.


문지성은 페트병을 내려놓고 그 옆에 있는 손도끼를 집어 든다.


4.5킬로그램. 묵직한 금속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엇이든 뭉개버릴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역시나 매일 아침 수행하는 행동답게 그는 기계적으로 도끼를 허리 뒤편으로 가져간다.


“앗, 차가워.”


맨살에 닿는 서늘한 금속의 감촉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멍한 기운이 싹 가신다.


그 덕에 잠을 잘 때 항상 알몸으로 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연의 상태로 있어야만 숙면을 취할 수 있어 건강에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문지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히 여기는 가치가 바로 건강이다.


문지성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던 청바지를 잽싸게 입는다.


손도끼를 허리춤에 건다.


“…….”


도끼를 다시 뺀다. 바지를 벗는다.


팬티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꽤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기억해낸다.


다시 팬티를 입는다. 팬티는 깨끗하게 세탁된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그중 생식기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조광필

전무후무한 폭력조직 사마천파(派)의 보스 조광필이 번뜩 눈을 뜬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다니.


역시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덮쳐오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평소 좀처럼 긴장하는 일이 없던 그로서는 사뭇 심각해진다.


이번 미팅으로 조직의 앞날이 바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이정도로 긴장했는데 놈들은 오죽할까. 너무 긴장해서 바지에 지리는 거 아니야?”


조광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둘러 출근할 채비를 한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부하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해괴망측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한다.





#문지성

항시 속이 든든한 사람이 큰일도 할 수 있는 법.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먹고 출근을 마친 문지성은 사무실 청소를 시작한다.


창문을 활짝 열어 밤새 묵은 공기를 빼내고 해롭기는 매한가지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의 공기를 들여온다.


“역시, 미세먼지는 미세해서 안 보여.”


문지성은 텁텁한 공기 질감에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창문을 빈틈없이 닫는다.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킨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실내공기를 정화시키겠다는 친절한 음성이 들린다.


문지성이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사무실 청소를 마친 그는 소파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앉는다. 바로 앞에는 무릎높이의 탁자가 있다.


그 위에 덩그러니 있는 큼직하고 날카로운 재단가위와 길쭉한 사시미 칼을 발견한다.





#정성도, 한재천

정성도와 한재천은 직장동료다.

돈를 아끼기 위해 동거 중이다.


뭐니 뭐니 해도 서울하면 집값이라고 할 수 있다.

해도 해도 너무 비싸다.


두 남자의 성격은 절대 잘 맞는다고 할 수 없지만, 실보다 득을 먼저 고려한 결과 선택한 결정이다.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다보니 근무 환경이나 출퇴근시간도 같다.


덕분에 서로의 존재가 거슬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둘은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다.


서로를 이해하기란 둘 중 누가 더 잘생겼는지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비교군의 수준이 터무니없이 비슷할 때는 당연하고, 양쪽 다 수준미달일 경우에도 제대로 된 비교가 힘들어진다.


둘의 경우 철저히 후자다.


한재천이 좁은 방에서 눈을 뜬다.

눈앞이 컴컴하다.


본인의 미래를 엿본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예지 능력 같은 것이 없다.


“…….”


그는 그대로 누워 호흡을 가지런히 한다. 온몸에 힘을 뺀다.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 만큼 금방 해결될 것이다.


몇 번의 심호흡과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무사히 위기를 극복한 한재천은 스르르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이 어둡다.


이마를 타고 내려와 있는 무거운 앞머리를 위로 쓸어 넘겨 시야를 확보한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거실로 나가자마자 정성도와 대면한다.


정성도 역시 방금 잠에서 깬 듯하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재천은 곧장 눈을 찡그린다.


“야,정성도,우리약속했잖아.”


뻣뻣한 자세로 멀뚱히 방문 앞에 서있던 정성도는 대수롭지 않게 한재천을 보며 묻는다.


“뭘?”


한재천은 보기 흉할 정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정성도의 가랑이부근을 가리킨다.


“아침에일어나면바로나오지말고추스르고나오라고.”


“아, 맞다, 미안.”


정성도는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사뭇 당당한 몸짓이다.


그가 말을 붙인다.


“너무, 커서, 놀랐지? 미안, 넌, 이렇게, 큰 거, 처음, 보잖아.”


이내 정성도가 씨익 웃는다.


일상을 다리와 다리 사이에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지내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종류의 은근한 웃음이다.


물론, 그의 웃음은 한재천의 눈에 비치지 않는다.


정성도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노란색 마스크를 벗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소리야미친놈아.지금내거는무릎까지닿아있어.내가워낙에수납을잘해서티가안나는거야.”


한재천이 발끈한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말이 더욱 빨라진다. 랩과 흡사한 속도다.


“걸을 때, 불편, 하겠다.”


정성도가 남다른 고충을 전부 공감한다는 듯 말한다.


“생각보다지낼만해.”


“오늘은, 오른쪽? 왼쪽? 어느 쪽, 무릎에, 있어?”


오늘은 오른쪽이라고 한재천은 대답한다.


그리고는 너무나 듬직하고 건강한 생식기와 같이 생활하는 탓에 평소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을 이어간다.


이를테면, 속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에는 어김없이 수납할 방향을 정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한다.


매번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란다.


결정이라는 건 알게 모르게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자기는 그걸 아주 잘 아는지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요새는 그쪽으로 골머리를 앓는 통에 자주 깜박깜박 한단다.


신나게 말을 이어가던 한재천은 어느덧 정성도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머무르고 있음을 느낀다.

본인의 자부심이 수납되어있는 성스러운 부위.


그는 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출근준비를 위해 세안을 시작한다.

머리를 감고 볼일을 본다.

팬티를 추켜올린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법도 없이 팬티에 이어 바지까지 손쉽게 착용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가운데다.





#문지성

문지성은 사무실에 구비된 티백 차를 마시며 가장 가깝게 지내는 상사들의 대화를 곱씹는다.


어젯밤 퇴근 직전에 들었던 대화여서 어렵지 않게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다행히 왜곡 없이 내용을 떠올린 문지성은 책상 위에 있던 재단가위와 사시미 칼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날갈이를 전문으로 하는 업자가 일찍 출근한다는 사실도 덤으로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정성도, 한재천

문지성과 친하게 지내는 두 상사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말끔한 사무실과 비교적 쾌적한 공기에 만족한 두 상사는 각자 자리로 가 컴퓨터 전원을 켠다.


한 명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워서 말하는 법을 모르고, 다른 한 명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붙여서 말하면 세상이 망하는 줄 알고 있다.


띄어쓰기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조광필

오전 8시 30분.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사무실로 들어선 사마천파 보스 조광필이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얘들아! 좋은 아침!”


부하직원들은 때 아닌 사장의 이른 출근에 내심 당황하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조광필은 사무실을 감돌고 있는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감지한다.


본인이 일찍 출근한 탓일 거라는 생각까지는 유추하지 못하고 그저 진지하다.


부하들 역시 오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날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상사가 느끼는 긴장어린 순간에 협응하는 부하직원들.


“으음, 좋아. 좋아.”


조광필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된 인간을 가려내어 곁에 두는 그 힘을, 다시금 체감한다.


그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를 본거지로 둔 폭력조직 보스의 품격을 보여주는 지시를 내린다.


“우리 다 같이 커피 한잔 할까?”


“좋습니다!”


문지성이 큰소리로 대답한다.


그런 막내직원을 보며 조광필은 흐뭇해한다.


이것이 그가 이끌고 있는 조직이 일류가 되지 못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폭력조직을 이끌기에는 조광필이라는 인간의 타고난 심성이 다소 연약하고 천진한 감이 있고, 그저 보통의 사람들처럼 범법행위를 가능한 멀리하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내면에 감춰진 폭력적인 성향이나 잔혹성이 과하다.


조광필이 남들처럼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평범한 사람들과 업무회의를 나누고 취미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삶을 추구했어도 꽤나 잘 해냈을 것이다.


다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며 냉혈한이지만,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남자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상사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광필은 그러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인생은 범법과 불법이 판치는 세계였고, 따끔한 일갈이 아닌 폭력으로 부하직원들을 꾸짖는 세상이었다.


“저……, 큰형님?”


조직의 막내가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한다.


“커피가 다 떨어졌는데요?”


“아, 그래? 그럼 녹차로 하지.”


이보다 더 상쾌한 아침이 어디 있으랴.


조광필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는다.





#강재훈

“복싱이 하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강재훈은 아들의 입에서 나온 문장 중 ‘하고 싶다’라는 단어에 사로잡혔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허락해줄 것을 부탁조로 말했지만, 그건 통보나 다름없는 말이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허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아들의 말을 듣고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첫째는 기특함이었다.


인간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은 욕망이 충만하다는 뜻이었고, 욕망이 충만한 사람의 인생은 훨씬 풍성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었다.


직접 선택한 길에서 예상한 것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때 아이가 겪게 될 상실감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그의 품을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수반하는 두려움이었다.


평생 아이를 품은 채로 살 수는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 아이가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밤이 되면 멀쩡하게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아려오는데, 영영 품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


그런 강재훈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아이가 자신의 품을 떠나는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복싱을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직접 복싱을 가르치면 아주 간단히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명제가 참으로 판명될 필요가 있다.


복싱을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양질의 가르침을 줄 수 있을 만큼 복싱에 대해, 하다못해 기본적인 운동 상식에 밝아야 한다.


그리고 강재훈은 누구보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복싱선수를 가르치는데 전(前) 복싱선수만큼 제격인 사람은 없다. 이로써 그의 고민이 하나 해결되었다.


복싱선수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성과를 보이라는 법은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둔 부모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상황은 다름 아닌 의심이다. 아이의 재능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재능이 있기는 한 걸까?’


‘그저 그런 재능뿐이어서 그저 그런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에 그치진 않을까?’


이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아이의 재능이 실제로 부족한 경우이다.


이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어떤 것에 호감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업의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 사이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아이가 겪게 되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다.


두 번째로는 아이의 빛나는 재능을 부모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부모는 대개 평범하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한 가정을 이룬다. 아이를 낳는다. 그렇게 평범한 부모가 된다.


하지만 평범한 부모 사이에서 꼭 평범한 아이가 태어나는 법은 없다.


특별한 아이가 태어난다.


두 손 가득 재능이라는 축복을 움켜쥔 채 태어난다.


특별한 아이를 둔 평범한 부모는 특별한 재능이 발화하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재능은, 진짜 재능은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강림하는 천사가 아니다.

재능은 피어난다. 꽃처럼 피어난다.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수분, 넉넉한 햇빛과 바람이 있을 때야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그리고 시간.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차분히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진한 향기를 머금고 피어나는 것이 재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부모는 그 과정을 깨닫지 못한다.


수백 번 듣고 언론에서 보도하는 몇몇 사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가슴속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접 꽃을 피워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촉한다. 의심하고 확인하려든다.


똑바로 하고 있는지, 열심히 하고 있는지, 간섭하고 부담을 준다.


우리는 너 하나만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의 시간과 돈과 여력을, 나아가 인생 전부를 쏟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성장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 봉오리는 결국 꽃이 되지 못한 채 주위의 입김만으로 시들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강재훈은 그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피해가는 아주 적합한 부모였다.


그는 누구보다 재능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재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식으로 장난치는지, 어떤 모습으로 유혹하는지, 어떤 말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새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재훈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하나뿐인 아들에게, 다름 아닌 복싱을 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딱 한마디 말을 꺼냈다.


“그래.”


그날 오후, 아빠이자 코치, 전 복싱선수 강재훈의 훈련이 시작됐다.





#문도현

금요일 오전 6시 30분, 서울 모 병원 응급실.


평일 오전 응급실은 비교적 한산하다.

위급한 환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유일한 환자를 손수 순찰차에 태워 데려온 문도현 경사는 실시간으로 두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원인이 눈앞에서 연신 입을 쫑알쫑알 벌리고 있다.


“저 사람 싸움 잘-해-요. 진짜라니까요? 헬스도 오래 했어요!”


여자가 말한다. 부당한 수사에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듯 몇몇 단어를 강조한다.


문도현 경사는 여자 옆에서 통증에 끙끙 앓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본다.


여자의 말대로 침대에 널브러진 남자는 꽤 오랜 기간 몸을 단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봤자 러닝머신이나 사이클로 하는 유산소운동에 덤벨과 바벨로 깨작대는 게 전부겠지만.


빵빵한 근육이 저렇게 볼품없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말씀하신대로 만약 남자친구가 싸움을 잘했으면, 지금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문도현 경사는 조금 신경질적인 어투로 답한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밤새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마냥 친절하게 민원인을 상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남녀 커플이 술집에서 술을 마셨단다.


손님 중 한 남자가 시비―철저히 이쪽 주장이다―를 걸어왔단다.


명색에 여자친구가 앞에 있는데 얌전히 자리에 앉아 대화로 상황을 모면하기에는 면이 서지 않았던 남자친구가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헬스장에서 보내는 사람에게 무서울 건 근손실 말고 없단다.


그래도 지성인답게 그만하라고 마지막 경고를 했단다.


그러자 상대측에서도 벌떡 일어나 그만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하며 대뜸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단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몸을 잔뜩 부풀려서는 후회하게 해줄 거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보인 위용에도 상대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었단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단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 문도현 경사는 질릴 대로 질리고 만다.


“……싸움을 잘하긴 하는데, 은-근-히 잘해요. 아니다, 은근히 보다는 의외로? ……꽤? 어쨌든, 상대가 안 좋았어요! 스포츠 경기에서도 흔히들 쓰는 말 아닌가요? 열심히 싸웠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까 그 남자 뒤가 구리다니까요? 분명 뭔가 있어요! 조사 한번 해보세요!”


여자가 당당하게 뒷조사를 요구한다.


“아, 네…….”


왜 지금 상황에 이런 말을 들어야하는지 문도현 경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몸 좋은 남자친구가 키도 작고 훨씬 호리호리한 남자에게 인심 좋게 잔뜩 얻어맞아 응급실 침대에 벌러덩 누워있는 게 너무나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여 변명하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경찰관님, 지금 제 말 안 믿는 거죠?”


“그런 건 아닌데…….”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한 문도현 경사는 정정한다.


“……네, 사실 맞아요. 전혀 안 믿기네요. 저 얼굴 좀 보세요. 어젯밤에 라면을 다섯 개는 끓여먹고 잔 얼굴이잖아요. 얼굴이 터질 거 같아요.”


실제로도 입술 부위가 모조리 터져 한동안은 물을 제외한 어떤 액체도 닿으면 안 된다는 담당의사의 진단은 굳이 전하지 않는다.


둘이 뽀뽀라도 하다가 침이 닿아서 치료기간이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아까웠어요.”


“뭐가 아까워요?”


“거의 근접했는데, 아쉽네요. 술집가기 전에 라면 세 개 먹었대요. 두 개는 끓여서, 하나는 부셔서 과자로.”


“…….”


맥없이 시간만 잡아먹는 대화에 문도현 경사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파출소장에게 보고전화를 하러 간 후배 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별 수 없이 문도현 경사가 묻는다.


“남자친구 분 직업이 헬스트레이너라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무슨 라면을 먹어요?”


“치팅 데이 모르세요? 대회 준비 앞두고 마음껏 먹는 날이래요. 그렇게 기분 좋은 날 이 꼴을 당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요. 어떻게, 상상이 되세요?”


“아……, 네에. 아무튼 남자친구한테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호전적인 성격도 좀 고치셔야 할 거 같아요. 그쪽 생각만큼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닌 거 같네요.”


더 이상 말 많은 민원인을 상대하기에는 여력이 바닥난 문도현 경사는 자리를 뜨려고 한다.


“네, 그렇게 전해할게요. 근데요, 경찰관님, 제 남자친구 진짜 싸움 잘해요. 나중에 한번 싸워보세요. 깜짝 놀랄 걸요?”


“저랑요?”


문도현이 깜짝 놀란다.


“네! 싸워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은근히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체급 차이도 얼마 안 날 거 같은데.”


여자의 말에 문도현 경사는 살짝 약이 오른다.


큰 키에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있는 침대 속 남자와 배가 볼록한 본인을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사건은 조만간 서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그럼에도 문도현 경사는 맞받아치기보다 회피하는 쪽을 택한다.


경찰이라면 그래야한다.


출입문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약이 바짝 오른 여자가 경찰의 등에 대고 외친다.


“헬스장에 운동하러 오세요! 제 남자친구가 싸게 해줄 거예요. 언제까지 뱃살만 끌어안고 살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뒤돌아가던 문도현 경사가 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무례하시네요. 사람 겉모습으로 그렇게 판단하시면 안 되죠.”


“방금까지 저희가 나눈 대화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대화였나요? 몰랐어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지 여자는 비웃음까지 흘리며 비아냥댄다. 어쩌면 문도현 경사의 느긋한 사건 처리방식에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말 가려서 하세요.”


“가려서 할게요! 자, 이제 신경 끄시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햄버거 드시러 가는 길 아니었나요? 얼른 가셔야죠! 시간이 벌써…….”


여자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7시가 다 됐어요! 시장하지 않으세요? 하루에 다섯 끼 채우려면 부지런히 드셔야 되잖아요.”


“불쾌하네요……. 하루 세 끼 먹습니다.”


그때 응급실 출입구 쪽에서 후배 경찰이 달려온다.


“선배님, 소장님께 보고 마쳤습니다. 교대근무자한테 인계하고 퇴근하라고 하시네요.”


“그래? 가자 그럼. 여기도 일단은 마무리됐어.”


그렇게 말한 문도현 경사는 민원인을 무심한 눈으로 흘기고는 뒤돌아 응급실 출입구로 다시 걸어간다.


“아니, 대체 뭐가 마무리 됐는데요! 마무리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여자의 거슬리는 목소리에 다시 걸음을 멈춘 문도현 경사는 티 안 나게 한숨을 내쉬고 방긋이 웃는다.

철저히 계산적인 미소다.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가 여기서 나가야 상황이 마무리되죠. 저는 얼른 가서 햄버거 사먹어야 해서요. 그럼 수고하세요.”


후배 경찰은 문도현 경사가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본다.

부랴부랴 뒤따라 달려간다.


드디어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