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별 후에 알게 되는 것들

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by 류해인

1장. 승차




#강승호

소년의 이름은 강승호.

올해로 열일곱이 되었다.


소년이 사는 곳은 경기도 외곽의 조용한 동네다. 아주 작다.


동네주민을 모두 모아도 제대로 된 축구경기 한판 할 수 없을 만큼 작다.


한 팀으로는 제대로 된 축구경기를 할 수 없는 법이다.


교체선수 없이 열한 명의 선수를 구성하고 심판 한 명, 관람객 다섯 명을 동원하고 나면 마을이 텅 빈다.


마을에 있는 집은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단층 주택이다. 하나같이 낡았다.


마을 내 유일한 2층집에 거주하는 강승호라는 소년이 눈을 뜬다.


사실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2층 주택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옥탑방이다.


오전 4시에 기상하는 사람답게 조금은 힘겨운 티를 낼 법도 하지만, 어림도 없다.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를 빠져나온다.


그 모습이 꼭 잠에 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누운 채로 알람시계가 4시를 가리키는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 같다.


헝클어진 이불을 바로 하고 책상 위에 있는 컵에 담긴 미지근한 물을 벌컥 마신다.


소년은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소년의 하루가 시작된다.


잠에서 깬 강승호라는 이름의 소년은 곧바로 방바닥에 요가매트를 펼친다. 그리곤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뻗어 미처 깨어나지 못한 근육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깨운다.


탄탄하면서 유연한 근육들이 소년의 자세에 맞춰 몸을 늘리고 줄인다.


소년은 기분 좋은 통증을, 근육의 기상을 느낀다. 무릎과 발목을 특히 신경 써서 풀어주고 스트레칭을 마친다.


요가매트를 돌돌 말아 제자리에 두고 컵에 든 나머지 물을 마신다.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잠옷을 벗는다.


기능성 운동복을 입는다. 새벽의 찬 공기를 막아주는 겉옷도 잊지 않고 걸친다.


지퍼를 턱 밑까지 끌어올리고 현관을 나선다.


새벽이 소년을 반긴다.





#이한성

어느 조용하고 작은 동네의 유일한 2층집―옥탑방―에 사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하루를 일찍 여는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한성.

올해로 서른이다.


사실 이한성이 오전 4시가 막 넘은 시간에 눈을 뜬 건 달리 할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습관이 불러온 기상이다.


그는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 수산시장으로 향하곤 했다.


오늘은 어떤 해산물이 신선한지 확인하고 주변 상인들과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나눠마셨다.


전문 요리학교가 아닌 곳에서 피어나는 기술은 어떤지 살피고, 취할 것이 있으면 거듭 관찰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자판기 커피 값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다.


그러나 단 한 순간에 그것들이 사라져버렸다.


눈을 뜬 이한성은 습관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


그럼 그렇지.

잠이 곱게 치장을 하고 올 리가 없다.


그새 어디로 갔는지 얄미워 죽겠다.





#강승호

소년이 달린다. 새벽을 걷어낸다.





#홍지선

경기 외곽의 한적한 동네에 사는 한 소년이 옥탑방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왔을 때, 서울의 어느 낡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홍지선이 눈을 뜬다.


홍지선은 안방에 내걸린 시계를 본다. 오전 4시 30분.


오늘도 역시 이 시간이다.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건만 홍지선은 굳이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텅 빈 베개를 본다.


이내 눈물을 쏟는다.


오늘도 눈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 유쾌한 시작은 아니다.





#이한성

오전 5시.

침대에 누워있어도 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잠과의 미팅은 포기하고 이한성이 결국 몸을 일으킨다.


분명 적정시간 숙면을 취했지만 개운한 느낌은 전혀 없다.


머릿속에 새까맣게 들어찬 생각이 범인이다.


배신당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이 남자를 보면 된다.


이한성은 배신당했다. 누군가 그를 배신했다. 그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자기는 배신당했다고.


인생을 조금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인간은 누구나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족부터 친구, 연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크고 작은 배신을 일삼는 존재다.


하지만 이한성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정말 가차 없이 버려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사견이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래야하는데?”


이별을 고하는 여자친구에게 이한성은 그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이별을 원하는 상대에게 이별을 원치 않는 사람이 꺼낼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고작 그 이유를 묻는 게 전부다.


아무런 전조 없이 이별을 고하는 사람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을 풍기며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사람이 첫째.


너무 당당하고 당연한 나머지, 이별선고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죽을죄라도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둘째.


이한성의 연인은 후자였다.


그런 사람들은 이별의 이유를 묻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게 궁금해? 왜?”


이유를 묻는 상대방에게 그 이유를 묻는 이유로 반문한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말을 뱉는다.


이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연인이 뱉는 마지막 문장은 문신과 같아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흔적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살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딱히 이유는 없어. 그냥, 이제는 같이 있어도 즐겁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이한성은 여자친구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최소한 맹목적으로 본인의 신세를 탓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이별의 이유에 다툼이나 가치관끼리의 충돌과 같은 특정사건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개입되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해진다.


이한성은 돌연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함께 있는 게 즐겁지 않은 연인이라니.

비참하다.





#강승호

소년이 반환점에 도착한다.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인다. 무릎과 발목, 허리의 상태를 살피고 열이 식지 않도록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여준다.


“…….”


세차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침잠한다.

신선한 새벽공기를 흠뻑 들이마신 폐도 더 이상 헐떡대지 않는다.


소년이 다시 달린다.


바람이 소년의 등으로 다가가 기분 좋게 밀어준다.


소년은 바람을 등에 업고 힘차게 발을 구른다.





#홍지선

안방을 나온 홍지선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부엌이다.


전기포트에 물을 따라 끓이는 것으로 그녀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홍지선은 부엌과 인접해있는 작은 방을 쳐다본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다.


작년 여름부터 그랬으니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 방은 먼지와 쾌쾌한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탁―! 하고 전기포트 불이 꺼진다.


찬장에서 아끼던 잔을 꺼내 녹차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따른다.


잔을 부엌식탁에 올려놓은 홍지선은 의자에 털썩 앉는다.


멍한 눈으로 방문을 본다.


홍지선과 방문 사이의 거리가 2미터도 채 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틈에는 몇 세대는 거쳐야 건너갈 수 있을 듯한 우주가 있다.


그보다 더 아득하게 느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방문을 도저히 열 수 없다.


홍지선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쏟기에는 다소 생뚱맞은 순간인 듯 보이지만 갱년기를 겪고 있는 55세 중년여성이라면 그럴 수 있다.


조절되지 않는 호르몬 잘못이다. 그럴 수 있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이제 흐느낌으로 바뀐다.


“……여보.”


남편과 사별한 여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강승호

오전 5시 10분.

러닝을 마친 소년이 귀가한다.


집 외벽을 따라 나있는 철제계단을 올라 옥탑방으로 들어간다.


목을 살짝 축일 수 있을 정도로만 물을 홀짝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신발을 신는다.


한결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복싱화가 소년의 발을 감싼다.


옥탑방이 있는 옥상 구석에는 샌드백이 덩그러니 내걸려있다.


본래 검은색이었지만 헤진 곳을 그때그때 새로운 가죽으로 덧대어서 이곳저곳 색깔이 다르다.


소년은 수차례 손목과 어깨를 돌리고 8온스 벨크로 권투글러브를 낀다.


툭― 툭―


반가운 친구의 어깨를 애정을 담아 건드리는 것처럼 소년은 샌드백에게 인사를 건넨다.


퍽―! 퍽―!


인사가 점점 거칠어진다.


마을 주민들은 소년이 성장하는 소리를, 어엿한 복서가 되는 소리를 빠짐없이 들으며 생활해왔다.


틱― 틱― 소년의 연약하고 요령 없는 주먹과 단단한 샌드백이 만나는 미약한 소리가 퍽! 하고 점점 둔탁한 음으로 바뀌더니 서서히 펑! 펑! 폭발음으로 바뀌어갔다.


소년의 주먹은 뼈와 살이 아닌 화약과 불꽃으로 이뤄진 것 같았다.


팡! 팡!


소년의 주먹에서 불꽃이 터진다.





#강재훈

옥상에서 들려오는 폭발소리에 강재훈이 눈을 뜬다.


펑! 펑!


끼익―


팡! 팡!


아들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몸을 휘청거리는 샌드백에서는 금속이 울음을 뱉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샌드백이 고정되어 있는 금속걸쇠가 맞물리며 나는 소리다.


그 소리를 배경음 삼아 강재훈은 이불을 정리하고 부엌으로가 물을 한가득 따라 마신다. 그리고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작한다.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전날 미리 사놓은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고 따뜻한 국을 끓인다.


육류와 채소, 탄수화물이 적절히 배합된 반찬과 여러 가지 잡곡으로 안친 밥을 뒤적인다.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리고 차례차례 반찬을 옮긴다.


남편이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강재훈은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일 것이다.


아내와 사별한지 10년이 넘어가는 남자라면 이제 그만 무덤덤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강승호

소년은 주먹을 뻗는다.


―펑! ―펑!


폭발음이 적막한 금요일 새벽의 고요함을 덮는다.


열일곱 소년이 이토록 비인간적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건 바로 그의 스승이자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비범하게 살아야 한다.”


소년에게 평범한 선수가 될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 세계에서 평범한 선수란 그저 그런 선수와 같은 말이다.


압도적이고 감히 넘볼 수 없는 선수만이 의미가 있다.


흔히들 일류라 부르는 선수는 꽤 많다.

하지만, 정점은 오직 한 명이다.


정점이 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어디에서든 1등이 되면 된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전국에서, 세계에서 누구보다 잘하면 된다.


그러한 단순함이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명쾌하게 다가왔다.


1등이 되는 방법은 더더욱 단순하다.


1등이 되도록 하는 훈련을 매일 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1등이 된다.


강승호라는 소년은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소년은 무던하고 성실했다.


무던함과 성실함은 분야를 따질 것 없이 막강한 가치를 발하는 자질이다. 그 분야가 특히 스포츠라면 더욱이 그렇다.


스포츠는 배신을 모른다.


이쪽 세계에서만큼은 배신이 통하지 않는다. 무던함과 성실함. 그건 무기가 된다.


무엇이든 꿰뚫어버릴 수 있는 창인 동시에 극도의 불안과 무력감, 막연한 의심을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년은 아직 정점이 되지 못했다.


1등이긴 하지만, 그건 그저 소년의 아버지가 그동안 봐왔던 선수들을 줄 세워 만든 비공식 기록일 뿐이다.


소년의 훈련이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소년에겐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철저히 타의에 의해, 어른들의 비공식적인 사정에 의해 기회가 소년을 피해갔다.


물론, 이것도 나름 배신이라면 배신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면, 스포츠 세계는 언제나 자기를 향해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동안 흘러간 모든 기회 중 어떤 것을 붙잡았어도 소년은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같은 자성을 지니기라도 한 듯 번번이 소년을 피해가는 기회에 상심할 때마다 그의 아버지, 강재훈은 말했다.


“기회는 너무 일찍 주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늦게 주어지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아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을 항상 <아들>이라고 불렀다. 승호야, 하며 조금 더 다정하게 부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들에게 전해준 모든 말들은 강재훈의 몇 안 되는 경험에서 비롯된 진리였다.


그는 너무 일찍 찾아온 기회에 속절없이 무너진 선수들을 여럿 보았다. 그렇게 무너진 선수들은 대부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설사 다시 일어서더라도 전혀 다른 수준의 선수가 되기 일쑤였다. 그동안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있었다.


이 세상에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준비다.


나머지 하나는 사랑이다.


그 둘은 아무리 넘치게 하려해도 넘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 놓고 원 없이 해도 된다.


강재훈이 아들의 경기를 직접 관람한 횟수를 두 손과 발을 이용해 세려면 마을사람 중 적어도 절반은 동원해야 할 것이다.


비공식경기까지 합치면 옆 마을사람들도 불러와야 한다.


그는 소년이 링에 오른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코치로, 때로는 아버지로.


“아들, 아침 먹어라.”


부엌에 난 작은 창문에 대고 강재훈이 외친다.


강재훈의 묵직한 목소리가 옥탑방에까지 전해진다.


잠시 후, 모든 새벽운동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소년이 1층 현관문을 통해 들어와서는 바로 식탁의자에 앉는다.


“머리 먼저 말리고. 감기 걸릴라.”


“네.”


소년은 군말 없이 화장실로 가서 헤어드라이기로 머리카락에 남아있는 물기를 제거한다.


부엌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던 강재훈은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바싹 마른 머리를 하고 돌아온 소년이 다시 의자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먹자.”


부자의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


“…….”


긴 침묵 끝에 강재훈이 입을 연다.


“반찬 새로 했는데.”


“네, 알아요.”


소년은 젓가락으로 새로운 반찬들을 하나하나 가리킨다. 그러면 강재훈은 가만히 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를 이어간다.


두 부자가 나누는 모든 대화는 얼핏 보면 감정이 거세된 채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두 남자를 전혀 모를 때나 함직한 소리다.


강재훈이라는 남자는 그의 아버지에게 입이 아닌 눈과 가슴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소년 또한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라는 남자는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치는 재주 따윈 없던 터라 그저 어릴 적 그가 배운 것 그대로 아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두 남자의 대화법이 탄생했다.


식사를 마치고 물을 마시던 강재훈이 다시 입을 연다.


“밤부터 비가 쏟아진다고 하던데, 바람도 많이 불고.”


“조심해야겠네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이 답한다.


소년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옥탑방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뒷마당에 널어놓았던 세탁물을 걷는다.


그리곤 잊지 않고 창고에서 장우산을 꺼내 현관 신발장에 세워둔다.


운동복과 여분의 옷가지가 들어있는 본인 가방에도 잊지 않고 조그만 우산을 챙겨 넣는다.


그것이 두 부자의 대화방식이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두 부자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랑한다.”, “사랑해요.” 뿐이지만, 그 간단한 문장의 의미를 대신 전하려면 꽤 많은 문장과 몸짓이 필요하다.


어쩐지 조금은 미련해보이지만, 그만큼 값지게 보인다.





#홍지선

이른 아침부터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홍지선은 기운이 없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오늘 아침식사도 생략이다.


지난 8개월 동안 이어져온 일상이다.


딱 한 번, 지난 달 말쯤에 밥다운 밥을 차려 시도해봤지만 허사였다.


혼자 식사하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그녀는 이제야 깨닫는다.


오전 8시 30분.


사회에 발을 들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이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분주한 아파트 속 홍지선의 집은 여전히 침묵에 휩싸여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부엌식탁 의자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낸다.


혼자 남은 집안 곳곳에 묵직한 고요가 부유한다.


분명 그녀에게는 빨래나 청소, 설거지처럼 부지런히 손과 발을 놀려 해치워야하는 몇몇 물리적인 작업이 있지만 뒤로 미룬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 여태 한 거라고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울음을 내보낸 일뿐이다.


남편을 잃은 홍지선은 조용해졌다.


온 집안을 메우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사라졌다.


알고 보니 그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태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살았다.


평소 홍지선 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아랫집 사는 노부부마저도 홍지선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홍지선은 남편과 한 공간에 있을 때, 그녀의 눈에 남편이 들어차있는 순간에만 말이 많아지는 여자였다.


마치 남편이 홍지선의 말들을 갖고 가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홍지선이 한사코 거절하는 남편의 손에 쥐어주고 돌려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날 출근길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병을 건네듯 돌아가는 길 적적하지 않게.


홍지선이 어김없이 눈물을 쏟는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연쇄가 눈물의 주된 원인이다.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남편의 이름, 잠버릇, 식습관, 마지막으로 미소까지 떠올릴 때면, 저절로 눈물이 쏟아진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지내던 공간에서 그 사람만을 덜어내고 잊은 채 살아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이한성

이한성은 지금 삼십분 째 냉장고 앞에 서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5분이 지나자 냉장고가 문을 닫으라고 요란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1분 간격으로 경고음을 뱉어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이별한 뒤로는 줄곧 이 상태다.

요리를 할 수 없다.


이별과 요리가 연인 관계도 아닌데 둘 사이가 껄끄러울 것이 뭐가 있느냐고 의문일지 모르지만, 연인과 함께 요리를 해온 사람이 이별을 겪은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해온 사람이라면 그런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요리가 싫어졌다.


“…….”


말이 유독 줄어든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실없는 혼잣말도 어느 샌가 들려오지 않는다.


“…….”


이한성이 침묵을 이어간다.


마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기라도 하듯이.


―쿵.


이한성이 드디어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동안 관리가 소홀했는지 스멀스멀 냉장고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올라온다.


냉장고 구석구석에 묵은 식재료가 그득할 테지만 정리는 다음으로 미룬다.


오늘은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


냉장고를 지나쳐 그대로 부엌으로 간다.


찬장을 연 이한성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낸다. 무게가 상당하다.


그가 요리할 때 사용하던 칼들이 꽂혀있는 칼 보관가방이다.


고급가죽으로 만들어진 명품이다. 두루마리를 풀 듯 줄을 풀어 펼쳐놓는다.


단날ㆍ양날부터 관서형ㆍ관동형과 같은 일본 특정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칼들이 말끔히 정리되어있다.


요리할 때 모든 칼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답게 이한성은 평소 칼에 관심이 많았다.


새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번쩍대는 칼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거기에 그의 모든 열정이,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미련과 후회가 있다.

상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