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이한성
오전 9시 30분.
냉장고에 있는 모든 재료를 손질한 이한성은 전화를 받는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형이다.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어, 형. 아침부터 무슨 일?”
“무슨 일이긴, 생각 좀 해봤어?”
“아……, 칼?”
요리를 그만둔다는 말을 듣자 이한성에게 사용하던 칼들을 자기한테 넘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이한성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목소리에서 망설임을 감지했는지 통화상대는 힘주어 말한다.
“한성아, 너 그거 미련이야. 그동안 네가 얼마나 요리에 진심이었는지 잘 아는데, 그럴수록 과감하게 놔줄 필요가 있어. ……너 마지막으로 칼 잡은 게 언제야?”
이한성은 고민한다.
사실 형이랑 통화하기 직전까지 칼질을 했다고 말할까 고민하다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본인이 한 건 다시 칼을 잡아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미련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작별인사였다는 사실을.
“……알았어. 형한테 넘길게. 어디서 만날까?”
통화를 마친 이한성은 사용한 칼을 깨끗이 씻고 물기를 닦아낸 다음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각종 채소들로 가득한 싱크대를 정리한다.
“…….”
한걸음 떨어져 말끔해진 부엌을 둘러본다. 상쾌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작별인사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준비를 마친 이한성이 그간 사용했던 모든 종류의 칼과 숫돌이 들어있는 가죽가방을 쇼핑백에 담아들고 집을 나선다.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파트 공동현관문이 열리자 뿌연 하늘이 펼쳐진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그는 병역의 의무를 앞둔 사람처럼 씁쓸하고 공허한 시선을 내던지며 억지로 걸음을 옮긴다.
이한성은 여자친구와 함께 초밥을 전문으로 하는 일식당을 운영했다.
지인들은 당시 스물다섯이었던 이한성에게 너무 섣부른 결정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제아무리 가족이라도 동업은 힘들다고 하는 마당에 연인과의 동업은 그야말로 최악이란다.
하지만, 2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함께한 여자친구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동반자였다.
식당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작은 규모의 식당이었지만, 쉼 없이 손님들이 오갔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되면 날마다 가게 밖으로 줄이 이어졌다.
돈이 모였다.
이한성과 여자친구. 단둘이 운영했기에 세금과 가게 월세, 재료값을 제외하고 나면 이렇다 할 지출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점차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고 있다는 생각에 이한성은 집 월세도 아낄 겸 여자친구에게 동거를 제안했다.
잠만 자고 나오는 원룸에 다달이 월세를 지불하고 있다는 게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 월세를 벌기 위해 팔아야 할 초밥 세트가 절로 떠올랐다.
“방 빼면 월세 보증금도 꽤 되니까, 가게 근처에 쓰리룸 정도는 전세로 구할 수 있을 거야.”
이른 아침 식당의 좁은 부엌에 나란히 서서 재료를 준비하던 이한성이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가 사용하는 사시미 칼에는 멋들어진 이탤릭체로 ‘LEE’ 라는 글자가 각인되어있었다.
“……응? 같이 살자고?” 여자친구는 칼질을 멈추고 남자친구를 쳐다봤다.
“그……렇지?”
말을 잘못 꺼낸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의 반응이라 이한성은 조금 당황했다.
사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긍정의 대답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대답보다 환한 웃음을 먼저 내보일 줄 알았다.
여자친구는 한참을 우물대다 말했다.
“지금 그거, 혹시 ……프러포즈?”
프러포즈를 입에 담는 사람치고는 다소 메마른 목소리라고 이한성은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어떤 고민도 거치지 않고 맥없이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무슨 결혼이야. 말도 안 돼. 우리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데, 무슨 고생을 하려고.”
“열여덟도 아니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고생은 지금도 하고 있잖아.”
이한성의 섣부른 대답에 여자친구는 조금 어이없다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한성은 어쩌면 방금 자기가 실언을 뱉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자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결혼……, 하고 싶어?”
“…….”
“응? 결혼, 하고 싶었어?”
이한성이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친구는 갑작스레 찾아온 부끄러움에 속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글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솔직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에게 긍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먼저 선뜻 나서서 긍정의 의미를 내보이기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지는 것 같고,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
애석하게도 모든 엇갈림은 그 시점에 시작된다.
이한성의 여자친구는 그렇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을 하고는 질문으로 응수했다.
“……너는? 결혼 생각 있어?”
분명 그런 질문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염두하고 있었지만 이한성은 막상 그 질문이 귀를 통해 들어오자 움찔했다.
덩달아 그는 스물여덟이 아니라 열여덟 살 고등학생의 입에 나올법한 전혀 성숙하지 못한 어투와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너도 안 해본 생각을 내가 해봤겠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지. 인생 뭐 특별할 거 있냐. 결혼, 그거 뭐 대수라고. 안 그래?”
여자친구는 “……응. 그렇긴 하지.” 하며 ‘안 그래?’ 하고 묻는 사람에게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을 했다.
사실 그녀는 다른 말이 듣고 싶었다.
그저 하루하루 조금은 시시하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같이 지내면 조금이나마 나을 거라고.
특별할 거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특별해질 거라고.
함께 하면 그런 순간순간이 불현듯이 찾아올 거라고.
그러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결혼 한번 해보자고.
진심이 담긴 말을 원했다.
백 퍼센트 확신에서 오는 당당한 말이 아니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더 진심으로 보여 그녀는 더욱 행복해했을 것이다.
결국 이한성이 넌지시 꺼낸 동거는 없던 일이 되었다.
서로의 어긋난 마음만을 확인한 채 대화는 끝이 났다.
연인끼리 오가는 대화에서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는 순간이 빈번히 발생하곤 하는데, 그런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보다 안정적인 관계로 발전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진심을 확인하고 함께하는 미래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한성의 경우, 둘 사이의 균열만 확인하고 말았다.
자연히 봉합되기에는 꽤 커다란 균열이었다.
“하하하…….”
머쓱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그날 부엌에서는 어떤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결혼이 대화주제로 올라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균열의 조짐을 확인한 그들은 그렇게 말을 잃었다.
#홍지선
집을 나선 홍지선은 근래 들어 가장 기분이 좋아 보인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절로 힘이 빠질 법도 한데 그녀의 발걸음은 사뭇 가볍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홍지선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
가까운 미래를 자기 손으로 선택해 그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확실성이, 인생에서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마땅함이 지난 몇 달간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우울한 감정을 얼마간 씻어낸 듯하다.
급기야 그녀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처럼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향유할 기세다.
아파트 화단의 이름 모를 꽃들을 보며, 유유자적 그녀 앞을 지나치는 길고양이를 보며,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며 그녀는 스스로가 정한 어딘가로 향한다.
만면에 미소가 넘실거린다. 기대감에 가득 부푼 얼굴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늘만 살기로 결정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해탈의 웃음이, 그토록 사랑해마지않던 사람과의 재회를 앞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리움의 웃음이 걸려있다.
사전에 공지할 내용이 있다면, 그건 바로 홍지선의 오늘이 지금 당장 마무리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녀에겐 할 일이 하나 남아있다. 그것 또한 그녀가 세운 계획 중 하나다.
그 일만 마치면 그녀는 비로소 그리움에 사무치던 상대를 만나러 갈 것이다.
하지만, 홍지선의 계획은 절반만 성공한다.
그녀는 알지 못한다.
방금 전, 온 하늘에 신의 비웃음이 너울댔다는 사실을.
위대한 과업이랍시고 무언가를 계획한 한 인간의 치기 어린 행동에 너털웃음을 지었다는 사실을.
시도 때도 없이 [계획]이라는 이름표를 내걸은 채 모래성을 쌓는 인간이라는 족속들의 부지런함에 연신 무상함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어쩌면 그녀의 오늘은 무사히 지나 내일로 이름표를 바꿔들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남편이 아주 가볍고 조그맣게 변해 작은 원통 모양의 함에 들어있다.
“……우리 남편, 잘 있었어?”
홍지선이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제도, 그제도 건넸던 인사지만, 그녀는 또 인사한다.
남편과 하는 인사가 지겨울 리 없다.
“아직까지는 꽤 춥지? 4월도 벌써 절반이나 지났는데…….”
1년 내내 상온을 유지하고 있는 곳에 잠들어있는 탓에 남편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가 이곳에 자리 잡는 동안 벌써 세 개의 계절이 지났고, 이제 네 번째 계절 한가운데 있다.
홍지선이 서둘러 남편 곁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계절과 관련되어 있다.
외로이 여름과 가을, 겨울, 이제 봄을 보내고 있지만, 남편이 떠난 여름이 다시 찾아오는 것만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서히 더워질 테고 지옥과도 같은 8월이 순식간에 찾아올 것이다.
“…….”
인사를 마친 홍지선이 금세 조용해진다.
평소라면 오늘 예정된 일과에 대해 신나게 읊을 차례다.
집안을 청소하고 산책을 하고 집안 가구를 재배치하는 등, 특별한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주부의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사진 속 남편은 방긋이 웃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어주곤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홍지선도 조용하다.
거짓으로 꾸며낸 일과를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결혼생활 내내 그래왔던 것처럼 남편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차마 그럴 수 없다.
대신 남편에게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는 새로 사귀었는지, 혹시 그 친구가 여자는 아닌지.
만약 다른 여자와 하는 불장난이 재미가 쏠쏠하다면 조속히 정리하는 게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 번 죽어봤으니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지 않느냐고 장난스런 농담을 건넨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입술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홍지선이 남편을 쓰다듬는다.
차갑게 식은 남편의 몸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입을 맞춘다.
서늘하게 식은 그의 몸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원통하기 그지없다.
그 앞에 있는 여러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모든 사진 속 남편 옆자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쁘다. 그렇게 살아온 자신이 자랑스럽다.
남편의 멋진 얼굴에서 빛이 춤춘다.
그가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녀는 저절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러다 홍지선은 계속되는 칭찬에 남편이 너무 으스대지 않도록 억지로나마 아쉬운 점을 떠올려본다.
지난 결혼생활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제때 화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의 수려한 외모 탓이었다.
남편이 지닌 여러 가지 특징 중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분노를 유발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잘생긴 외모였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다소 격앙된 의견 충돌 중에도 남편의 얼굴만 보면 차마 진심을 다해 열을 낼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그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잡히지 않는 순간에는 불현듯 열불이 났다.
내 기필코 오늘 밤 집에 들어가서는 전날 배출하지 못한 여분의 분노를 모조리 해소시키고 마리라, 다짐하곤 했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결심하고 분노에 차서 벌컥 현관문을 열어본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남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불타오르던 감정은 이내 차갑게 식어버렸다. 대신 다른 곳에 열이 피어올랐다.
심장이 뛰고 두 볼이 벌겋게 익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잘생긴 남편과 함께 산다는 건 가슴 한구석에 소화기를 품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