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이선진
눈을 뜬 이선진 대리가 서둘러 출근을 준비한다.
부서 특성상 출근시간이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오늘은 아주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의문점이 하나 있다.
미팅 장소와 시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문지성
터덜터덜 11층 높이의 계단을 하나 남겨둔 문지성이 주소를 떠올린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다.
“11층, 왼쪽.”
분명 그 앞에 다른 주소―이를테면 아파트 이름 같은 것이―가 더 있었던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태성아파트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왔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 거라고 문지성이 중얼거린다.
그런데 돌연, 형이 떠오른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형이 생각난다. 이건 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리고는 덩달아 1주일 전에 있었던 일도 특별 행사상품처럼 딸려온다.
문지성에게는 피를 나눈 형이 있었다.
그와는 달리 매우 똑똑한 형이었다.
그런 형이 유일하게 저지른 멍청한 짓거리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지능이 좋지 않은 동생을 일찌감치 병원―꾸준한 병원 진료와 기초 학습 능력 강화 훈련을 병행했으면 정상 수준의 지능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에 데려가지 않은 것.
둘째는 똥구멍이 찢어져라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서글픈 기억을 극복하기 위해 똥구멍이 찢어지게 궂은일만 한 것.
마지막 셋째로는 찢어진 똥구멍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부업자를 찾아가 급히 똥구멍 치료를 받은 것이다.
형이 과로로 사망하고 동생인 문지성이 했던 첫 번째 똑똑한 행동은 다름 아닌 형의 빚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결>이란, 변제를 뜻하진 않는다.
“문지성 씨 맞죠?”
형의 장례가 끝나자, 그의 집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누구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름을 불린 당사자라면 누구라도 보일법한 반응을 보였건만, 상대방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다시 물었다.
“본인이 문지성 씨가 맞는지 물어봤는데요.”
존대만 하면 예의를 차렸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저는 누구시냐고 물었고요. 누구세요?” 문지성이 반문한다.
“하…….”
우람한 체형의 키 큰 남자가 반쯤 날아간 오른쪽 눈썹을 긁적였다.
남자는 “형제캐피탈에서 나왔습니다.” 하고 말하더니 본인이 이만큼 양보해줬으니 이제 보다 수월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끌어 가보자는 의중을 내보이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요?”
쉽지 않은 남자, 쉽사리 틈을 내주지 않는 남자 문지성은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서운한 지능을 가진 사람답게 상대방의 의중 따위 개의치 않았다.
“……문지성 씨 맞으시죠? 지금 세 번째 묻는 겁니다.”
“네 번 물어볼 때 대답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쓸데없이 해맑은 톤으로 묻는 문지성의 얼굴은 과연 쓸데없이 해맑아보였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겁니다.”
남자는 정말이지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 하는 사람다운 얼굴을 지었다.
영업용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앙다문 입술이 대신했다.
“그쪽이 조금만 더 깐족대면 무척이나 화가 날 거 같거든요.”
“그쪽이 아니고, 문지성이에요. 사람을 이쪽저쪽그쪽이라고 부르는 건 실례죠.” 문지성이 나무랐다. “……근데 그쪽은 이름이 뭐에요?”
멍청한 대화 상대의 지적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하건만, 곧 이름을 밝힐 남자는 다시 직업 정신이 투철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밝혔다.
“……아, 예, 제 이름은 이선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문지성 씨, 드디어 대화다운 대화를 했네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요.”
“이선진이요? 꼭 여자 이름 같네요?” 문지성이 여전히 해맑게 물었다.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생각을 좀 더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전 이름 듣자마자 바로 생각했는데.”
문지성은 그렇게 생각한 본인 스스로가 기특하다는 듯 굴었다.
이선진 대리는 실시간으로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네.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죠. 이-선-진. ……예, 뭐, 지금 생각해보니까 조금은 여성스러운 이름 같기도 하네요.”
“거봐요! 조금만 더 열심히 생각해보면 되잖아요. 다 할 수 있는데! 꼭 해보지도 않고 포기부터 하는 사람이 있던데. 여기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불과 몇 초 전에 본인 이름을 여자 이름 같다고 난생처음 생각해본 남자 이선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때려죽이면 징역을 살게 될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잘만하면 벌금형에 그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과연 힘 조절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저기요? 사람 앞에 세워두고 무슨 생각하세요?”
대화 상대에게 눈을 떼는 법이 없는 문지성이 질문했다.
혼자만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입 밖에 내는 건 지성인이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한 이선진은 문지성의 말에 습관적으로 사과했다.
“아아, 미안합니다.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네요.”
“다음부터는 주의해주세요.” 선심 쓰듯 문지성이 말했다.
“……예, 그러죠. 저, 그나저나 저희가 어디까지 했죠?”
“저희가 뭘 했는데요?”
“……아닙니다.”
이선진은 환장하겠다는 심정을 감추기 위해 등 뒤로 숨긴 큼직한 주먹을 으스러져라 꽉 쥐었다.
문지성은 그답지 않은 집중력을 보이며 다시 지적했다.
“제발 대화에 집중해주세요. 자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지성씨, ……저는 저희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물었던 겁니다.”
“언제요?”
“아닙니다. ……이 얘기는 그만 하죠.”
이선진은 혹여 또 다시 헛소리를 해댈까 두려워 얼른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문지성 씨, 문지훈 씨 동생 되시죠?”
“저희 형 친구 분이세요?”
문지성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안 그래도 밝은 표정이었으니 국가위기수준으로 치달았다.
“아, 어쩐지 나이가 딱 형이랑 비슷해보였어요!”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 힘든 상대방의 표정이 밝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님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이선진 대리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뇨아뇨, 아닙니다. 친구 아니에요. 자, 문지성 씨 제가 묻는 말……”
“직장동료신가?” 말을 잘라먹는 게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인 문지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아까 무슨 캐피탈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형이 그런 어려운 회사에 다녔을 리가 없는데. 저희 형은 저보다 훨씬 단순한 사람이었거든요.”
동생을 위해 죽어라 일하는 것.
문지성의 형, 문지훈이 살면서 했던 모든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선진 대리는 당신보다 단순한 인간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통감하며 그런 비극은 또 없을 거라는 뜻을 숨긴 채 말했다.
“네, 그러니까요. 문지훈 씨랑 저는 직장동료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저는 형제캐피탈에서 나온 이선진 대리입니다. 문지성 씨의 형님, 그러니까 문지훈 씨는 저희 회사 고객님이었어요.”
이제야 방문이유를 밝힐 수 있게 된 이선진 대리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형제, 캐피탈? ……거기가 뭐하는 회산데요? ……회사는 맞아요?”
갑작스레 튀어나온 외계어에 문지성이 경계한다.
이선진 대리의 목소리가 급변했다. 신규 고객을 유치할 때나 쓰일법한 어투였다.
“아! 간단히 말하면, 저희 형제캐피탈은 고객님들에게 금융지원 서비스를 제공해드립니다. 언제든지 성함과 연락처, 주소처럼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해주시면 빠르게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흐음, 복잡하게 말하면 많이 복잡할까요?”
문지성이 물었다.
대답여하에 따라 그쪽 대답도 한번 들어두면 나쁠 건 없다는 어투였다.
“네? ……어,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선진이 우물대자 문지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연락처나 주소를 모르는 사람은 어쩌죠?”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든 귀하가 제공한다는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잠재 고객처럼 문지성은 열성적인 태도로 물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죠? 연락처랑 주소를 모르다뇨? 왜요?”
“왜라뇨? 모르는 걸 그냥 모른다고 한 건데요!”
문지성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래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모르는 것에 되레 ‘왜요?’ 라는 질문을 받아본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셨구나! 그러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새로운 주소에 익숙해지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죠. 입에 잘 안 붙어요. 그럼요. 그렇죠.”
이선진 대리가 본인이 생각한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저랑 형은 이 동네에서 평생 살았어요!”
어림없는 소리.
“근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어투로 이선진이 다시 물었다.
“그야 저도 모르죠!”
문지성은 대화상대의 무지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자책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보기 드물고 탁월한 자기객관화를 통해 본인의 지적능력을 언급했다.
“제 머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해요!”
대화를 시작하고 처음 듣는 상대방의 진심어린 발언에 감명 받은 이선진 대리는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이어갔다.
“아아, 그럴 수 있죠! 저도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주소가 어지간히 길어야죠. 그쵸? 우리나라 주소는 너무 길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문지성은 긍정과 만족의 의미를 담아 끄덕였다.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건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그러니까요! 가끔은 즐겨보던 드라마가 몇 번에서 하는지도 까먹잖아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어요.”
거기까지 말한 문지성은 전날 밤 몇 번 채널에서 드라마를 봤는지 어렵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곤 본인은 누구와는 달리 대화 중에 다른 생각을 품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가 어디까지 했죠?”
“…….”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형제캐피탈 이선진 대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문지성 씨의 형, 문지훈 씨가 저희 서비스를 이용하신 적이 있어요. 동생 분은 알고 계셨을까요?”
“아, 제가 요새 치루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어요. 알고 계셨을까요?”
“……그걸 제가 알아야하나요?” 이선진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제 말이요!”
“아, 네……. 모르고 계셨군요. 지금이라도 아셨으면 됐죠.”
번번이 끊기는 대화에 이선진 대리는 지쳐갔다.
“네, 이제 막 알았네요. 제 형이 그, 뭐지, ……무슨 캐피탈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거요.”
회사 이름을 바꾸자고 사장님께 건의해야하나 이선진 대리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이건 어디까지나 문지성의 멍청한 지능 때문일 거라고 결론짓고 다음 말을 꺼냈다.
“예예, 문지훈 씨께서 3개월 전인 1월 13일에 저희 서비스를 통해 이백만 원을 이용하셨어요.”
“어! 1월 13일!” 문지성이 날짜를 듣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특별한 날이었나요?”
“네! 제가 그때 출소했어요! 부득이한 사정으로 감옥에 있었거든요.”
#이선진
같은 시각, 출근 준비를 마친 이선진 대리는 불현듯이 떠오르는 기억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문득 배가 아파 당면한 문제만 급히 해결하고 출근해야겠다고 다짐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는다.
#문지성, 이선진
“……감옥이요?”
이선진 대리는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눈앞의 멍청한 남자가 위험한 과거까지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다.
“네! 감옥이요!”
문지성의 아쉬운 기억력으로 똑똑히 기억해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1년 6개월 동안 거기서 지냈어요.”
“네……. 고생, 고생하셨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몹시 당황한 이선진 대리는 말까지 더듬었다.
상대방의 평범한 인상과 체구에 그런 잔인한 면모가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다운 얼굴을 한 채로.
반면, 왠지 모르게 겁에 질린 듯 움츠러든 대화상대의 변화에 의아해하던 문지성은 본인의 수감생활을 떠올려봤다.
1월 13일에 출소한 남자의 사고과정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지만 문지성은 기억하지 못했다.
길고긴 죄명은 고사하고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 복역했던 감옥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까먹고 만 것이다.
남들 못지않은 지능을 소유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는 문지성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다.
“고생은 무슨! 잘 기억도 안 나요!”
문지성이 사실을 고했다.
복역 같은 건 으레 있는 일인 양 기억에 작은 공간조차 할애하지 않는 이 호방하고 위험한 남자를 어찌 상대해야할지 이선진 대리는 고민에 빠졌다.
깡마른 저 팔다리에 얻어맞아 생을 마감했거나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일 정도로 고통 받았을 피해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차마 그동안 밀린 이자와 원금을 갚으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는 잠시간 궁리한 끝에 적당한 화젯거리를 생각해냈다.
“아아, 제가 경우가 없었네요. 형님 소식은 들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인간된 도리도 지키고 위험한 남자와 거리도 둘 겸 이선진 대리는 한 발짝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푹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대화상대를 보며 문지성도 덩달아 꾸벅 인사했다.
형의 장례식에서 익히 해왔던 터라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
“네네, 감사합니다. 형 만나게 되면, 그때는 직접 인사해주세요.”
“…….”
이선진 대리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하늘나라로 간 형을 만나거든 그때 다시 인사하라는 말이 꼭 예고살인을 앞둔 살인마의 대사처럼 느껴져서이기도 하지만, 이선진 대리의 시선이 현관 옆 전신거울에 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거울 속에는 도끼가 있었다.
머리 부분만 족히 15센티미터는 될법한 흉측한 모양새의 손도끼가 문지성의 허리춤에 내걸려있었다.
“…….”
업계에서는 꽤나 주름잡던 대부업체 추심직원을 태연자약한 얼굴로 겁먹게 만든 문지성은 여전히 해맑게 물었다.
“근데요, 형 장례식 때 오셨나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문지성이 처음 본 누군가를 기억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물어봤다.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으니까.
이선진 대리는 움찔했다.
원래 성격 같았으면 그래서 이렇게 뒤늦게나마 인사를 하는 거 아니겠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겠지만, 남은 여생동안 편안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추심 업무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그는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예, 그때 제가 원체 외근에 시달리고 있을 때라서……. 저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정말 안타까운 사람은 이선진 대리였다.
그는 형제캐피탈 추심부서에서도 에이스로 통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두터운 목과 어깨는 고객들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는데 최적의 요소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을 보고 알바 같은 걸 해볼 생각 없냐는 업자들의 말에 혹해 잠시 발을 담게 되었다.
이선진은 그저 세 걸음 정도 뒤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것으로 할 일은 끝이었다. 어떤 고객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옷차림과 어투에서 풍기는 날티와 거친 욕설 섞인 재촉에도 겁먹지 않던 장기연체 고객들도 이선진의 웅장한 자태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곤 했다.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이선진은 그동안 하던 다른 아르바이트를 완전히 때려치우고 풀타임 추심원이 되었다.
그렇게 사장의 애정을 독차지하며 전속 추심원으로서 화려한 이력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고객의 친족이라며 등장한 위험한 바보 때문에 업무수행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
타고난 체격을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더욱이 거대하게 만들었을 뿐, 이선진 대리는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위험해 보이다 못해 지능까지 위험수준에 도달한 사람, 손도끼까지 숨기고 있는 바보에게 승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저 바보의 허리춤에 달린 무식한 손도끼가 다정한 손길로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는 순간, 이선진 대리의 탄탄한 몸도 두부마냥 속살을 드러낼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하셨죠? 형이 1월 13일에 서비스를 이용했다고요?”
“아, 네! 맞아요. 이백만 원……. 그리고 이자 백만 원…….”
이선진 대리는 빌려준 돈을 받으러 온 사람치고는 아주 소극적인 태도로 중얼거렸다.
“형이 그 돈을 어디에 썼을까요? ……음, 어쨌든, 그 돈을 제가 대신 갚아야한다는 말씀인 거죠?”
“네! 네! 바로 그 말입니다!”
이선진 대리는 갑자기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문지성의 머리에 응원을 보냈다.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느라 고생한 동생을 위한 겨울옷과 따뜻한 음식, 연체된 난방비와 온수 사용요금을 해결하기 위한 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리 없는 문지성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또 열심히 궁리했다.
너무 열심히 궁리한 나머지 문지성의 대뇌는 다소 생뚱맞고 섬뜩한 결론을 도출하고 말았다.
“그 문제는 당사자인 저희 형이랑 직접 상의하시는 게 낫겠네요!”
그 말과 동시에 문지성은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툭 튀어나와있는 부분에 걸렸는지 조금 전부터 허리가 배겨왔다.
다른 형님들처럼 능숙하게 허리춤에 숨기지 못하는 것이 문지성은 매번 아쉬웠다.
연장은 항시 몸에 붙여놓으라는 형님들의 조언을 그는 복음처럼 받들고 있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도끼머리와 손잡이 부분의 균형을 잘 맞춰 다시 고정시킨 문지성은 어느새 파리해진 이선진 대리를 봤다.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예, 저, 다른 고객님 약속이 갑자기 생각나서, 다음에,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형제캐피탈 추심부서 에이스 이선진 대리는 처음으로 업무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지성은 다소 과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옛 기억―1주일 전―을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