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종대왕 x 10 = 심사임당 x 2

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1장: 승차

by 류해인

#문지성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문지성은 어느 시장 어귀로 들어선다.


뒤이어 시장 한복판에 있는 자그만 트럭을 발견한다.


트럭 옆면 자그만 현수막에 ‘칼갈이’라고 대문짝만한 글씨로 적혀있다.


문지성은 칼이나 도끼와 같은 날붙이를 좋아한다.


특히 정성껏 날을 갈아 번쩍번쩍 빛나는 것들을 보면 그야말로 사족을 못 쓴다.


트럭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칼 갈아. 가위 갈아. 다 갈아. 갈아갈아.” 하는 신나는 가락이 나오고 있다.


그때, 문지성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케이-바 미군 제식 나이프.


요철날로 된 고정식 칼이고, 핸들과 칼날부분까지 전부 검정색으로 칠해진 모델이다.


“아저씨, 이거 파는 거예요?” 장난감에 매료된 어린아이처럼 문지성이 묻는다.


“젊은 사람이 물건 보는 눈이 좋구만! 이게 실제 미군들이 사용하는 거야.” 손님의 관심에 덩달아 들뜬 칼 장수는 물건을 집어 선뜻 문지성에게 건네준다. “자, 한번 만져봐.”


칼을 받아든 문지성은 연약한 갓난아기를 끌어안듯이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살핀다.


보면 볼수록 그의 눈이 빛난다.


특히 검게 빛나는 칼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얼마예요?”


본디 차분히 오랜 고민을 이끌어 갈만큼의 지능과 참을성이 부족하거니와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눈앞에 둔 문지성이 망설일 이유는 없다.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얼굴로 칼 장수는 고민을 시작한다.


가격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판매용으로 가져온 물건이지만, 실제로 산다고 나선 손님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작년에는 그대로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3명은 족히 됐다.


칼 장수는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다 결론을 내린다.


그는 말 대신 조용히 양손을 들어올린다.


열손가락을 쫙 편다.


물론 손가락 하나당 만 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의미한다.


“네!? 십 만원이요? ……그러니까 세종대왕님을 열 분이나 모셔와야지만 살 수 있다고요?”


가격을 본 문지성이 화들짝 놀라며 정녕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사실, 실제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라기보다 습관적으로 터져 나온 반응이다.


칼 장수가 다섯 손가락만 펼쳐들었어도 문지성이 소스라치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본인이 취급하는 물건에 대한 확신이 없던 칼 장수는 가격 측정에 다소간 과장이 있었는지 자문하고는 소심하게 반항한다.


“세종대왕이 부담스러우면 신사임당도 괜찮아……. 물론, 두 명.”


“흐음……. 십만 원이라…….”


과장되게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문지성은 고민하는 척한다.


전부 형님들에게 배운 것이다.


특히 큰형님은 물건을 제값주고 사는 놈은 등신이나 다름없다고 버릇처럼 말해주었다.


바보는 될지언정 차마 등신은 될 수 없었던 문지성은 열심히 큰형님의 가르침대로 구매결정을 유보한다.


손님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칼 장수는 초조해진다.


이미 선포한 가격이니 맘대로 조정하기에는 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아침부터 찾아온 첫 손님을 내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칼을 갈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구매하려는 손님 아닌가.


하는 수없이 칼 장수는 손님에게 강수를 띄운다.


덥석 물지 않고 그냥 갔다가는 깊은 후회로 밤에 숙면도 취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자! 그럼!”


칼 장수는 펼쳐든 열 개의 손가락에 문지성의 시선을 잡아둔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접는다.


또 하나 접는다.


그리고는 모든 장사꾼들이 으레 하는 말버릇처럼 그 문장을 덧붙인다.


“진짜 이렇게 팔면 내가 손해야. 특별히 손님한테만 이 가격에 줄게.”


“팔만 원?”


문지성에게 십만 원과 팔만 원 모두 크나큰 돈이었지만, 어찌됐든 모셔 와야 하는 위인의 숫자가 적어진 것에 기쁜 건 사실이다.


“으음, 좋아요.”


‘좋았어!’


손님의 대답에 칼 장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방금 전 본인이 직접 말한 것처럼 그 가격에 팔면 실제로 본인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중가격보다 약 삼십 퍼센트 가량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 없는 칼 장수가 트럭 짐칸 깊숙한 곳에서 칼집을 꺼낸다.


문지성은 지갑에서 세종대왕님 여덟 분을 꺼낸다.


“여기요! 팔만 원!”


“예, 고마워요.”


판매한 물건을 얼마에 들여왔던 간에 수중에 들어온 현금에 마냥 기쁜 칼 장수는 활짝 웃으며 문지성을 배웅한다.


간만에 진득하게 앉아 막걸리로 원 없이 목을 적실 수 있겠다고 중얼거린다.


칼 장수의 배웅을 받으며 문지성은 새롭게 장만한 아주 멋진 칼과 함께 시장을 빠져나간다.





#사마천파

조직의 막내가 때 아닌 연장 쇼핑에 눈이 두 바퀴 반 정도 돌아가 있을 무렵, 서울 모 공원에 검정색 고급 세단이 들어선다.


막내를 제외한 조직 구성원과 사장까지 총동원―3명―하여 접선장소에 도착한 사마천파는 어기적어기적 공원 한가운데로 향한다.


유사업종에 종사중인 기업에서 인수합병 제의가 올 정도로 전도유망한 폭력조직의 구성원이 4명이라는 건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듯, 사마천파 역시 만성적인 인력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조직이 지금과 같은 꼬라지가 된 몇몇 원인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조직의 인사 총책임자 겸 대표인 조광필의 까다로운 인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재관에 충족하는 입사지원자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조광필은 돌연 새로운 지원 자격 요건까지 들이밀었는데 그건 바로 자기소개서였다.


자기소개서 항목은 세 가지였다.

다음과 같다.


1. 고등학생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서술하시오. (200자 이상 작성요망)


2. 본인은 부모님에게 어떤 자식이었는지 서술하시오. (100자 이상 작성요망)


3. 만약 본인에게 주어진 날이 오직 사흘뿐이라면? 일차별로 상세히 서술할 것. (ex. 1일차: 하고자 하는 일, 2일차: … / 200자 이상 400자 이내 작성요망)


과반수이상의 지원자가 1번 항목에서 탈락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지원자 대부분이 고등학교 중퇴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들의 평균 고등학교 출석일수는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들의 졸업식 참석률은 백 퍼센트라는 것이었다.


2번도 그리 평가에 적절한 항목은 아니었다.


1번 항목을 무사히 넘긴 지원자 중 절반은 자의든 타의든 부모님과 연을 끊은 상태였고, 소식도 알지 못했다.


결국, 무사히 3번 항목 평가대상에 오른 지원자는 전체지원자 중 오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변별력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한 효과를 발휘한 평가항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3번 항목이 가관이었다.


명확한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만큼 평가에 난항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던 조광필은 남아있는 지원자들의 상식 수준에 치를 떨었다.


사흘을 4일로 알고 답변을 작성한 지원자가 남은 열일곱 중 열둘이나 되었다.


3일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4일을 살고자하는 욕심 많은 열두 명의 지원자는 당연히 탈락 처리되었다.


그렇게 3번 항목까지 그저 한국말 문장의 형태로 된 답변을 작성한 사람 모두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새로운 영입 방식을 도입한 덕분에 자연스레 입사자들의 지적수준이 현격히 올라갔다.


그 영향으로 조직원들의 범법 성질을 띠고 있는 헛짓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유치장에서 밤을 보내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건 사실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퇴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주된 퇴사 사유는 ‘조직의 정체성이 의심된다’ 와 ‘예상 업무와 실제 업무와의 괴리’였다. 쉽게 말해, 내가 들어온 조직이 뭐하는 곳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내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더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지금처럼 소수정예 체제가 된 것이다.


그들 눈앞에는 세월의 흔적이 돋보이는 바둑판이 놓여있다.


그들의 앞날을 예고하듯 하늘이 뿌옇지만, 저조한 날씨 컨디션이 조광필의 흥분까지 가라앉히진 못한다.


식구나 다름없는 직원들을 내버려둔 채 혼자만 의자에 편히 앉아있는 것이 민망했던 조광필이 변명하듯 입을 연다.


“……왜 이 공원에는 벤치가 안 보이냐.”


큰형님의 너그러운 아량을 단박에 눈치 챈 행동대장 한재천은 그의 앞머리처럼 빽빽하게 문장을 가득 채워 말한다.


“형님,저희는괜찮습니다.신경쓰지마십시오.서있는게건강에도좋다고하지않습니까?”


그리고는 왼편에 서있는 조직 내 서열 3위인 정성도를 힐끗 보며 덧붙인다.


“성도너도괜찮지?”


“…….”


정성도는 말없이 저 멀리 반대편 공원입구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귀엔 직장동료의 말이 아닌 잔잔한 재즈곡이 흘러들어온다.


한재천은 기다리던 긍정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머쓱해하는 큰형님의 얼굴을 일별하고 정성도의 팔을 툭툭 건드린다.


그제야 정성도의 시선이 그에게 닿고 샛노란 젠하이저 헤드폰이 귀에서 떨어진다.


“무슨, 말, 했어?”


띄어쓰기라는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학업을 마친 한재천과 달리 정성도는 쉼표를 남발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한재천은 정성도가 줄곧 착용하고 있는 저 노란색 KF94 마스크에 쉼표를 붙이는 기능이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


“아니다.아니야.됐다.됐어.음악이나계속들어.”


정성도는 그렇게 한다.


다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그는 누구의 말이든 군말 없이 듣는 편이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대로 수행하는 로봇이나 다름없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 그래야 조직이 잘 돌아가는 거야.”


조광필은 본인을 제외하고 3명으로 구성된 조직을 이끄는 수장답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예,명심하겠습니다형님!”


“…….”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는 정성도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한재천은 어쩌다 이 놈 같은 답답이가 서열 3위가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저 헤드폰에 탑재되어있다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인류가 개발한 기술을 통틀어서 폭탄 다음으로 불화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정성도가 행동대장 한재천과는 달리 아무런 장애물 없는 멀끔한 두 눈으로 공원의 반대편 출입구를 바라본다.


“저기, 오네요. 형제, 캐피탈, 맞아요?”


정성도처럼 앞머리를 짧게 쳐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조광필은 두 눈을 찡그리며 초점을 조절한다.


“……응, 맞네. 저기 하얀 셔츠에 코트입고 검정구두 신은 뚱뚱한 사람이 도상길 사장이야. 대머리인 사람.”

“둘다뚱뚱한데요?”


한재천이 앞머리를 거두고 본인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다음 말한다.


“둘, 다, 셔츠, 코트, 구두, 대머리.”


정성도가 의견을 보충한다.


“아아, 더 뚱뚱한 사람. 저기, 저, 있잖아. 유독 뒤뚱거리면서 걷고 있는 사람.”


조광필은 시력이 안 좋은 눈을 탓하기라도 하듯 멋쩍게 두 눈을 비빈다.


“두명밖에안왔네요?”


어떤 상황에서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상대측의 전력을 먼저 파악하는 행동대장다운 면모를 보인 한재천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정성도도 나름의 추측을 내놓는다.


“에이스만, 왔네.”





#문도현

태평경찰서 강력계 전 에이스 문도현 경사는 한 달 전부터 파출소에서 근무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에 앉아있다.


강력계에서 근무할 당시 사수였던 고종한 경위에게 전화가 온 건 오늘 오전 1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문도현 경사가 늦은 새벽까지 파출소 근무를 마치고 졸도하듯 잠든 지 막 세 시간이 넘어가던 때였다.


온몸에 들러붙은 피로에 휴대폰 진동을 못 느낄 법도 하지만, 오랜 형사생활로 쓸데없이 잠귀가 밝은 탓에 습관적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촉촉함이라고는 없는 목소리로 문도현 경사가 신원을 요구했다.


“……누구세요.”


―어! 도현아!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자마자 문도현 경사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다.


“……왜, 나 야간이었어.”


―그러냐? 미안! 미안!


운전 중인지 시끄러운 자동차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한 건 아니고! 우리가 지금 급하게 현장가고 있는데, 사무실 좀 봐주라!


“……그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아, 그러네. 야, 암튼! 부탁 좀 하자!


“……형, 나 이제 막 잠들었다고.”


―알지, 알아! 근데 사람이 없어서 그래!


“사람이 왜 없어.”


문도현 경사는 힘겹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사지원팀이나, ……그 뭐야, 상황실에 부탁해. 그리고 사무실에 잠깐 비어있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잘 알지! 근데 서장이 직접 지시했는데 어쩌겠냐. 사무실에 항상 상주 인원 배치하래.


고종한 경위는 문도현 경사와 통화하면서도 옆에 앉아있는 동료와 분주하게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하,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사무실을 싹 비웠어.”


문도현 경사는 터지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 신고 들어오고 정신없이 바로 뛰쳐나왔는데. 야, 도현아 아무튼 부탁 좀 하자. 진짜 사람이 없어서 그래. 다음에 내가 술 살게.


“형이 사주는 술 먹으면 금방 뒤질 거 같아서 싫어. 진짜 술만 사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안주도 사줘야지.”

―오케이! 이번에는 고기도 같이 사줄게! 시장 쪽에 도래창, 알지? 너 그거 좋아하잖아.


“……아, 진짜. 피곤해 죽겠는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도현 경사는 방 불을 켰다.


“그냥 사무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지? 민원인 오면 나중에 다시 방문하라고 한다?”


―어어어, 맘대로 해.


“……형 노트북 비밀번호 뭐야. 나 프리셀이나 하게.”


―와이프 생일!


“뭐? 내가 그걸 어떻게……”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그렇게 문도현 경사는 투덜대며 다시 출근했다.





#형제캐피탈

도상길 사장은 동생이자 회사 내 유일한 전무, 도상준 전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접선장소에 도착한다.


상대측 기업은 이미 자리해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형.” 동생이 속삭이며 말을 걸어온다. “저기 조광필 사장 뒤에 서있는 두 명이 사마천파 에이스들인가? 생각보다 왜소한데? 진짜 한 주먹 하는 사람들 맞아?”


“그런가봐. ……야, 근데 일할 때는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도상길 사장은 동생에게 주의를 준 뒤, 약 10미터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살핀다.


사마천파의 보스로 보이는 조광필 사장이 의자에 앉아있고 그 뒤로 두 명의 남자가 뒷짐을 지고 서있다.


그런데 심심하고 지루한 세상살이에 쏠쏠한 자극을 원했는지 외견이 퍽 인상적이다.


도상길 사장이 동생의 말에 뒤늦게 대답한다.


“음……, 진짜 그렇긴 하네, 그래도 뭐, 한눈에 봐도 위험해보이잖아. 안 그래? 저 놈들이랑은 뭐 하나 잘못 엮이는 순간 끝장날 거 같은데?”


“진짜……. 어떤 관계로도 엮이고 싶지 않은데요?”


도상준 전무가 순순히 시인한다.

형이랑 했던 약속대로 존댓말을 고수한다.


“저기 앞머리로 눈 가린 놈 보세요. 눈 두 개가 전부 눈썹 아래에 붙어있다는 걸 모르고 있나 봐요. 머리카락으로 저렇게 커튼을 쳐놨네. 저 놈이 운전하는 차는 절대 안 타야겠다.”


“쓸데없이 밝기만 한 요즘 세상을 싫어하는 거 아닐까?”


기인을 보는 심정으로 관찰중인 도상길 사장이 티 나지 않는 고갯짓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저 놈은 그래도 조금 평범하네.”


“헤드폰?”


“응. 마스크에 헤드폰 낀 멀대.”


“저렇게 샛노란 마스크랑 헤드폰은 또 처음보네…….”





#강승호, 강재훈

강재훈이 아들을 향해 말한다.


“지하철 타면 연락해.”


“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한다.


얼굴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무척 걱정하고 있다.


“병원 도착하면 연락하고.”


소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음 말도 미리 한다.


“선생님 말씀 녹음도 잊지 않고 할게요.”


“그래. 선생님한테 꼭 녹음한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소년은 챙겨온 가방을 끌어안고 차에서 내린다.


그리곤 아버지를 보며 살짝,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미소를, 그러나 단 한사람만은 능히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흘려보낸다.


“아버지도 도착하면 연락해요.”


물론 아버지는 소년의 그것을 알아본다.


그래서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강재훈이 다시 자동차를 출발시킨다.


소년은 아버지의 차를 몇 초간 물끄러미 보고는 뒤돌아 걷는다.


그러자 다시 긴장감이 엄습한다.


처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사마천파, 형제캐피탈

조광필이 마주보고 앉은 남자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아주 의미 있는 M&A가 될 겁니다.”


의자에 막 앉은 도상길 사장이 날씨 얘기도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법이 어디 있냐고, 그건 상도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따지려다 참는다.


대신 질문한다.


“……엠-엔-에이? ……그게 뭔데요? 우린 지금 인수합병 얘기하러 온 거 아닙니까?”


방금 상대방의 입에서 생뚱맞은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게 시간을 버는 일이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신 형제캐피탈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도준걸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저기, 사장님? 엠 엔 에이가 인수합병입니다. 같은 말이에요. 갈릭브레드가 마늘빵인 것처럼.”


반면 같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놀랄 만큼 상식이 부족한 형의 무지에 탄식을 금치 못한 동생 도상준 전무가 황급히 수습한다.


“……아.”


기초적인 상식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퍽 민망하다.


도상길 사장은 마늘빵이 유명한 빵집 몇 군데를 떠올린다.


이어 고작 몇 번의 헛기침으로 무마하려한다.


아버지는 모르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나 도상길 사장의 무지가 사뿐히 도를 넘기 때문이다.


‘아,인수합병이엠엔에이였구나’


한재천이 내심 놀라며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다.


시야 확보보다 앞머리를 고정시키는데 중점을 둔 남다른 위치선정 덕에 미팅에 참여한 누구도 그가 무심결에 만들어낸 깨달음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다.


눈앞에 모인 사람들이 어느덧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정성도는 헤드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해체한다.


예의상 볼륨도 세 단계 낮춘다.


그러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내용이 살포시 귓구멍을 타고 들어온다.


방금 전 도상길 사장의 발언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형제캐피탈의 위상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도상준 전무는 반전을 꾀한다.


그 명목으로 예정되어 있는 인수합병의 상호이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저, 조광필 사장님? 저는 전무로 있는 도상준이라고 합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뒤에 계신 두 분이 사마천파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분이라고 봐도 될까요?”


조광필 사장은 두 팔을 벌려 자랑하듯 듬직한 2명의 부하들을 치켜세운다.


“아이, 그럼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워낙에 까탈스러워서 아무나 들이지 않아요. 그렇게 선별된 조직원 중 에이스들입니다. 저라면 이 친구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반면, 친구로 둘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할 거예요.”


그렇게 들인 조직원이 총 3명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사나이는 말을 아끼는 법이다.


한재천이 더욱 믿음직스러운 사람처럼 비춰지기 위해 가슴을 한껏 펼치고 턱을 당긴다.


그러자 아주 미미하지만 조금은 더 듬직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성장속도가 남다른 초등학생이 서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정성도는 여전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최소 음량이긴 하지만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엇박자로 리듬을 탄다.


“사장님 눈이 암만 까다롭다고 해도 싸움은 아무래도 그, 체급이 중요하다보니…….”


도상준 전무는 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뒷말을 일부러 삼킨다.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니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의미가 담긴 눈초리로 공격을 마친다.


“하하……. 그렇죠? 싸움에서 체격, 중요하죠. 암요, 그렇고말고요. 저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소리 내어 웃는 조광필 사장의 눈에는 자신감이 번뜩인다.


그야말로 충분한 근거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재천은 화가 난다.


물론, 175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에 깡마른 체형이 통상적인 조직폭력배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싸움이 몸에서 시작하고 몸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당장 뛰쳐나가 솜씨를 보여주고 싶지만 참는다. 어디까지나 큰형님의 명령 없이 나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만히 있던 도상길 사장은 동생이 모든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조금 샘난다.


그래서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든다.


“저희가 비슷한 업종 사람들을 여럿 만나봐서 좀 아는데요. 각자 나름의 싸움 방식? 같은 게 있더라고요? 저분들도 그런 게 있을까요? 주특기 같은 거.”


“당연히 보여드려야죠! 이제 한 식구 될 분들한테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옳다구나, 그 말만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조광필 사장이 즉각 반응한다.


“형님,제가먼저하겠습니다.”


한재천이 호기롭게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는 좌중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처럼 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칼을잘씁니다.제가주로사용하는칼은이렇게생긴……”


허리춤으로 향한 한재천의 오른손이 방황한다.


목적지를 잘못 선정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에 당황한다.


있어야할 물건이 있어야할 곳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을법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도 앞머리에 가려진 두 눈 덕분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공이 드러나진 않는다.


“어?이게왜없지?”


믿음직스러운 부하가 선보이는 화려한 손놀림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걸로는 모자라 존경의 눈빛을 한 도 씨 형제의 얼굴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조광필 사장이 깜짝 놀라 묻는다.


“없다니? ……연장을 두고 왔다고?”


“저어,예,형님.사무실에두고온거같습니다.”


면목이 없는 한재천은 죄송스런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자 수북한 앞머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얼굴 전체가 어둠에 휩싸인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모두 형님들의 칭찬에 목마른 막내 문지성의 짓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다.


한재천의 연장은 지금 사무실 근처 칼갈이 손에 맡겨져 때 빼고 광을 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조광필 사장은 아직 본인에게는 한재천 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으로 모자라, 190센티미터라는 압도적인 신장을 가진 충직한 부하가 남아있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성도야, 네가 재천이 대신해서 보여줘라.”


“네.”


정성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다.


그의 압도적인 신장에 도 씨 형제가 긴장한다.


“이 친구는 특이하게 가위를 무기로 씁니다. 그리고 또, 키는 크지만 아주 날렵합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찰나여서 어쩔 수 없이 대화 소리에 귀를 내어주던 정성도가 느릿하지만 철저히 훈련된 움직임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다.


그 뒤에 이어지는 행동은 조금 전 한재천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직접 고른 색도의 노란색 페인트로 정성껏 칠한 재단가위는 온데간데없다.


“…….”


사마천파 조광필 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본인 역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집을 나설 때 연장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말을 잃는다.





#문도현

피곤한 몸으로 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문도현 경사가 익숙하게 TV를 켠다.


고종한 경위 말대로 사무실은 텅 비어있다.


채널을 돌려 UFC 중계방송을 시청한다.


두 선수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기회를 살핀다. 쩍쩍 갈라진 근육들이 꿈틀댄다.


펀치와 킥을 적절히 배합해 상대방을 견제하고 그라운드 기술을 걸어 상대방의 경기 포기 선언을 받아낸다.

“쯧쯧쯧. 무슨 격투기 경기가 저래.”


문도현 경사가 혀를 찬다.





#사마천파, 형제캐피탈

“무슨 조직폭력배가 저 모양이에요?”


도상준 전무가 도상길 사장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형제캐피탈 도상길 사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간단하게 요기나 하려고 방문한 식당이 알고 보니 비싼 술을 필수로 주문해야하는 곳임을 뒤늦게 알아챈 사람 같다.


사전조사가 미흡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망을 넘어 짜증이 치민다.


적당한 수준의 폭력 조직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 확장을 꾀하려했건만 완전 초짜들이다.


“뭐,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드릴까요?”


이 회담의 주도권은 이미 형제캐피탈이 차지했다는 듯 도상준 전무가 거들먹거리는 어투로 말한다.


서류가방에서 손도끼를 꺼낸다. 이선진 대리에게 받아온 것이다.


대충 사마천파 물건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챙겨왔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전무님 겁니까?”


조광필 사장이 묻는다.


사마천파에서 지능 순으로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평소의 조광필 사장이었다면 당연히 문지성이 수족처럼 부리던 연장이라는 걸 알아챘겠지만, 아침부터 이어져온 강도 높은 긴장감과 방금 전 겪은 터무니없는 치욕의 여파로 인해 두뇌 회전 속도가 평소의 반도 못 미친다.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물건이 본인 물건이냐는 조광필 사장의 질문에 도상준 전무는 자기는 어디까지나 뛰어난 지적능력만을 활용하여 업무에 임하는 사람인지라 평소 이런 흉측한 물건을 휴대하고 다니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피력하려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입 밖을 나오지 못한다.


대신 제3자의 외침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회담을 방해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친절하게도 본인 소개를 먼저 한다.


“경찰이다! 두 손 머리 위로 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