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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타멀스 Feb 09. 2022

경천이 더러워진 이유

미국의 한 싱크탱크 <퓨 리서치 센터>에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What makes life meaningful?)’라는 주제로 연구한 결과를 지난해 11월 18일 발표한 적이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선진국 17개 국가 중 14개 국가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손꼽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는 가족은 세 번째이고 ‘건강’이 두 번째이며 첫 번째가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이다. 17개 국가 중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으로 ‘물질적 풍요’를 첫 번째로 선택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 자료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무엇보다도 앞세우는, 즉 재물을 밝히는 국민으로 비칠 수도 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이 좋은 뉴스는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분석 자료의 수치를 뒤섞거나 일부를 부각해 굳이 궁색한 설명을 하기도 하고, 어쩌다 ‘더러운’ 돈에 눈이 멀어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냐며 개탄한 사람도 있다. 실제로 나랏돈을 챙기고 교도소에 갇힌 대통령도 있지 않는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싶은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또한 돈을 ‘더럽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돈 때문에 사람이 더러워진 경우는 많다. 설 연휴 때 지인들과 경천 주변 산책로를 걸으면서 한 지인이 농담을 했다, “경천이 저렇게 더러워진 이유가 뭔지 아는가? 부정한 재물을 챙긴 사람들이 남몰래 물속에 들어가 더러운 양심을 세탁해서 그렇다네.” 경천은 ‘거울처럼 맑은 물’이 삼인대의 충절을 담고 흘러 내려와 순창읍내를 가로질러 섬진강으로 유입한다. 그런데 “대모암 앞에서 더러워지기 시작하더니 군청 앞을 지나면서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가 재밌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대모암과 군청에 재물과 관련한 양심불량자가 있다는 뼈 있는 말이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에서 순창군이 외부청렴도 최하위 평가를 받은 것도 그의 말을 뒷받침해준다. 순창군의 그러한 수치스러운 외부청렴도는 일부 공무원들의 개인적 일탈도 원인이겠지만, 예산집행과 관련한 의혹이 자꾸 터져 나와 투명하지 않는 경로를 통해 부정한 돈의 흐름이 있다고 주민들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혹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말 일부 특정인의 뱃속을 채워주는 예산집행이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가 부정한 뒷거래로 잇속을 챙겼다면, 경천에 들어가서 양심을 세탁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은 그 ‘더러운’ 돈을 토해내고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더러운’ 돈이 주민들에게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소중한 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 더럽다고 돈을 가진 사람까지 더러운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돈은 훈훈함과 감동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에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열린순창> ‘기자수첩’에서 조재웅 기자는 ‘워치독(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하고자 매주 로또를 구매한다’고 했다. <열린순창>의 재정이 곤궁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어 언론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까 봐 최소한의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다는 뜻일 거다. 그는 그저 ‘웃픈 생각’으로 로또를 산다지만 권력의 애완견이 되어 ‘기레기’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기에, 나는 그의 로또가 당첨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가 다행히 ‘로또라도 맞으면’ 군청에서 줄 듯 말 듯하는 쪼잔한 돈에 얽매이지 않고도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더러워진 경천 물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22년은 우리를 대신(대표)하여 땀을 흘려줄 여러 일꾼을 뽑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제 주머니에 나랏돈을 챙기는 사기꾼이 아니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발바닥에서 땀이 나도록 일하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 아울러 올해 순창군 예산 4700억 원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그들이 검은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감시견 또한 필요하다. 그렇게 되어 올여름부터는 경천 산책로에서 사기꾼들의 더러운 돈 냄새가 아니라 일꾼들의 진한 땀 냄새를 맡고 싶다.

                                                                                             <열린순창>신문 '수요논단'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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