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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Dec 17. 2021

짐승처럼 말하지 말고 영어로 말해!

우간다의 인도인들

2013년 캄팔라의 어느 날

 우간다인들이 인도인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봉사활동 때 만난 이메(Imetres)와 시자(Caesar)는 인도인들이 우간다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마사카(Masaka)는 무슬림들이 많아 인도인들의 진출이 어려운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여행을 하며 우간다 여러 지역을 방문해보니 인도인 장사꾼이 없는 동네는 드물었다. ‘저기서 돈 벌어서 항공권, 비자 비용 충당이 가능한가’ 생각이 드는 외딴 지역의 상점에도 인도인들이 있었다.


인도인들이 우간다인 직원들을 관리하는 모습은 현대판 마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어서 그들의 상하 수직적인 인적관리가 카스트(Caste)의 산물인가 싶기도 했다. 인도인의 사업체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의 사업체에서도 인도인은 우간다인을 관리하는 위치에서 일하는데, 인도인의 컴퓨터 사용 능력이나 문서 작성 능력, 관리 능력 등이 우간다인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항공권/비자/숙소는 물론 우간다인들보다 높은 급여를 주고라도 데려오는 것이었다. 인도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신상 파악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경쟁이 치열한 본국으로 돌아가기 꺼려하는 심리로 인해 비자 문제만 잘 처리해주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한마디로 사장이 여권을 쥐고 있으면 꼼짝 못하는 처지였다.


어느 날 어느 거래처의 우간다인 직원이 찾아와서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얼른 처리해달라고 하길래 거절했더니, 사색이 된 얼굴로 “They are Indians”라며 빨리 처리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대체 인도인한테 어떻게 시달리길래 저러나 싶어 인도인 보스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인들이 우간다인들을 하대하고 차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인도인들만큼 우간다인들과 잘 어울리고 결혼도 많이 하는 외국인들도 없었다.


비자를 손쉽게 얻고자 우간다인과의 결혼을 선택하는 인도인들도 많긴 했지만, 실제로 우간다인과 인도인 사이의 혼혈 2,3세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초타라 Chotara”로 불리는 혼혈인들은 부모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양국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우간다 드라마를 보면 어김없이 인도인이 등장했는데, 대부분 성욕에 눈이 먼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던 기억이 난다. "힌두"라는 포용적 교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인도인들은 현지어도 빨리 배우는 등 우간다에 쉽게 녹아들고 스며드는 것처럼 보였고, 몇몇 인도인 사업가 중에는 우간다의 빈민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많이 한 사람도 있어서 우간다인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겉으로는 인도인들이 우간다인들을 부리는 것처럼 보여도 우간다인들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게, 신참내기 인도인 직원이 실수라도 하면 “No eyes?”라며 은근히 깔보기도 했다. 내가 봐도 말이 너무 많았던 한 인도인 직원은 시끄럽다는 이유로 우간다인 직원에게 뺨을 맞은 일도 있었다. 같은 포지션이라도 인도인이 우간다인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항상 긴장감 같은 게 흘렀다. 인도인 직원과 우간다인 직원이 언성을 높이다 결국 다투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흥분하여 현지어로 말하는 우간다인 직원에게 인도인 직원이 “짐승처럼 말하지 말고 영어로 말해!”라며 소리 치던 모습은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간다인이 고객으로서 인도인을 만나면 작은 실수에도 “Stupid Indian”이라 조롱하고는 자리를 떴다. 비슷한 외모를 가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사람들 또한 인도인의 범주에 묶여 함께 욕을 먹곤 했다. 우간다의 현대사는 영국 식민지 시대 철도 건설을 위해 유입됐다가 정착한 인도계 이민자들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데, 과거 이디 아민(Idi Amin) 시절 아시아인(주로 인도인)들을 추방 시킨 사건이 있을 정도로 인도인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인도인들 또한 빈곤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려 재산을 빼앗고 추방 시킬 폭군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일설에는 당시 이디 아민이 좋아하던 인도인 여자가 인도로 도망가 버리자 화가 나서 인도인들을 다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우간다인들이 인도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시내에서 금목걸이를 한 인도인을 우간다인 청년 몇몇이 둘러싸더니 목걸이를 채어 달아났는데, 주변의 우간다인들은 도둑들을 제지하는 대신 “잘한다!”며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인도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길에 서 있고 사람들은 통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어 대는 모습을 보니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타인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분노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우간다가 위험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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