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나요?

스스로 그려가는 나의 길

by maniiday

‘너는 너무 우유부단해’
고등학교 3학년, 진로상담 때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당시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여러 개의 방과 후 활동, 공기업 취업 준비, 부사관 준비, 출판사 취업 준비 등 하나의 목표가 아닌 여러 개의 목표를 설정해 막연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다양한 직업군을 한 번에 준비했던 이유는 저 직업들에 대한 열망도, 간절함도 아닌 순전히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타인을 위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의 울타리이자 유일한 애착 상대였던 어머니와 떨어지게 되었다. 유난히 내성적이고 울기도 잘 울었던 아이였기에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지자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 어머니와 떨어지고 나는 나를 지켜줄 곳을 찾아 헤맸지만 결론은 모두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나 외롭고 연약한 나를 알아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약한 나로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이 선망하는 무엇인가가 된다면 이런 나라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당시에는 그러한 선망대상이 마르고 예쁜 여자아이들이었다. 이들만이 소위 인기 그룹에 소속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신체검사 전날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독감인 상태에서도 운동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였다. 폭염이 지속하던 여름에는 3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울면서 뛰는 날이 잦았다. 그때의 나는 하루라도 이러한 강박적인 행동을 안 하면 내가 일구어놓은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고, 껍데기가 벗겨진 초라한 나의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다른 집착으로 발전해 선생님들께 이쁨 받는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였고,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였으며 공부도 누구보다 열심히, 방과 후 활동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그런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들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나를 ’완벽한 아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었다.


‘너는 공기업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공기업 준비를,
‘너는 은행원 하면 잘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은행 준비를,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부사관이 좋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부사관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선생님들이 말하는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결국 나는 그런 뜬구름의 목표들만 보고 달리다가 졸업하게 되었고,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허무했다. 남들이 빚어놓은 나라는 사람에 맞추어 살아가다가 다시 일그러진 찰흙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때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나의 모습을 빚어가자. 타인이 정의하는 삶에 맞추어 가는 게 아닌 내가 나의 미래를 조각하고 다듬어 단단한 나를 만들어 나가자.

많은 사람이 사회가 말하는 ’정답‘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특히나 나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보편화된 ‘정답’이 되기 위해서 더욱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삶을 설계하는 게 아닌 부모가 정해주는 미래, ’이 방법으로만 잘 따라오면 ~가 될 수 있어‘하는 획일화된 사고에서만 성장하며 많은 도전의 기회들을 박탈당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는 여러 상황 속에 나를 던져보고 관찰해야지만 나라는 정체성 즉, ’자아‘가 분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불안정성이 아이들의 도전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인생은 길고, 한 인간의 가능성은 너무나 무한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아를 하나의 정답에, 틀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나의 수많은 가능성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볼 것이다. 타인을 위해 사는 멋진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좋은 사람이 되자.
타인 눈치를 보고, 시기 질투를 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내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하는지 살펴보자.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다양한 곳에서 제공하는 교육, 활동들을 해보며 하루하루 내 세계가 넓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도망가지 말기를,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