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Zorba the Greek》(1946)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원래 제목은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Vios kai politia tou Alexi Zormpa)'이다. 8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의 자유, 열정,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이다. 인간 내면의 갈등과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했다.
주인공 조르바는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삶의 태도를 대표한다. 그는 하루하루를 즐기고 사랑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카잔차키스는 평생 인간의 본질과 종교의 의미를 탐구했다. 소설을 통해 세파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들이 생의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인간 내면의 속물근성과 지성의 가면 뒤에 숨은 소심함과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카잔차키스의 구도자적인 삶이 담겨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작품을 비롯하여, 스승인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자유 의지, 평생 궁구했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위버멘시 사상, 불교 또는 부처(Buddha)의 무소유 사상 등이 내포된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카잔차키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예순세 살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완성했다. 1943년 초고를 쓴 뒤 3년여의 퇴고를 거쳤다.
정부 고위직을 지내기도 하고, 세계 각지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미 여러 권의 희곡과 소설, 여행기를 쓴 다음이다. 카잔차키스의 폭넓은 경험과 깊은 사유가 온전히 녹아들어 있다.
조르바는 실존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1917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펠로폰테소스에서 탄광 사업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함께 일했던 '요르고스 조르바스(1867-1941)'가 소설의 모델이다.
여기에 발칸전쟁에 참전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투영해 재창조한 인물이 바로 조르바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의 한 사람으로 조르바스를 꼽기도 했다.
카잔차키스가 탄광사업에 뛰어들어 실존 인물 조르바스를 만났을 때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소설 속의 조르바(65)와 '나(35)'와 거의 일치한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닮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조르바는 그의 분신, 그의 페르소나(persona)였던 것일까?
내 삶을 풍부하게 해 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스 …
-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 출신의 마이클 카코야니스(Michael Cacoyiannis) 감독에 의해 1964년에 영화화됐다.
앤서니 퀸(Anthony Quinn; 조르바 역), 앨런 베이츠(Alan Bates; '나', 영화 속 이름은 '바질' 역), 이리네 파파스( Irene Papas; 블레오나 역), 릴라 케드로바(Lila Kedrova; 마담 오르탕스 역) 등이 출연했다. 1965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앤서니 퀸) 등 3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음악은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인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맡았다. 그가 작곡한 음악에 맞춰 두 사람(조르바와 '나')이 함께 추는 시르타키 춤이 인상적이다. 데오도라키스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l stis okto)〉라는 노래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곡가다.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 및 성찰과는 별도로 번역자(이윤기)의 맛깔스러운 문장, 시적 언어로 다시 태어난 크레타는 읽는 이로 하여금 경탄과 깊은 감명을 자아낸다.
따뜻하고 쾌적한 에게 해의 빛과, 공기, 색깔과 냄새에 미학적 감각이 더해져 어우러진 최고급 성찬(盛饌)이 펼쳐진다. 크레타의 바다와 파도, 갈매기, 레몬과 오렌지 나무, 그리고 단테의 시구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항구 도시 피레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의 숨결은 김이 되어 유리창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밤을 거기에서 보낸 뱃사람 대여섯이 갈색 양피 리퍼 재킷 차림으로 앉아 커피나 샐비어 술을 들며
희끄무레한 창 저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물결에 놀란 물고기들은 아예 바다 깊숙이 몸을 숨기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 즈음이었다.
카페에 북적거리고 있는 어부들은 폭풍이 자고 물고기들이 미끼를 쫓아 수면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
혀 가자미, 달강어,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5쪽)
- 소설의 첫 부분이다. 그림 같은 묘사가 항구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에서 1년여를 함께 산 두 남자(조르바와 '나')의 모험과 인간의 삶에 대한 폭넓은 탐구,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다. 30년이 넘는 나이 차의 두 사람이 펼치는 '브로멘스(bromance)'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묘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소설에는 크레타 섬의 풍경(태양, 바다, 모래, 새, 꽃과 나무 …), 소리, 냄새로 가득하다. 삶이 엮어내는 유머, 비애, 사랑, 눈물, 기쁨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나'와 조르바는 극과 극의 인물이다. 카잔차키스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과 정신세계를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묻노니, 당신은 어느 쪽인가? 거침없는 자유인 조르바인가, 소심한 지식인 '나'인가?
책벌레인 '나(35)'는 그리스 난민을 구하러 코카서스로 함께 가자는 친구(스타브리다키)의 권유를 뿌리치고 크레타로 향했다. 갈탄광 사업을 하며 노동자, 농민들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단테의 작품을 길동무로 삼고, 부처에 관해 쓰던 미완성 원고를 간직한 채.
새벽녘 피레우스 항구의 한 카페에서 '나'에게 다가온 조르바(65) 현장 감독으로 고용해 동행한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며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살던 노동자였다. '나'는 조르바의 호방한 성격과 게걸스러운 입담, 거침없이 내뱉는 인생철학에 빠져든다.
'나'는 고민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샌님, 책에서 답을 찾으려는 꽁생원이다. 함께 하룻밤을 보낸 과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보며 자신을 변명하는 소심하고 비겁한 먹물이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188쪽)
조르바의 '자유인'이다. 국가, 종교, 돈으로부터 벗어났다. 관습에 묶이지 않는다. 한 곳에, 한 여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니체적 용어로 말하자면, 조르바는 디오니소스적인 인물이다.
조르바는 술꾼, 일꾼, 난봉꾼, 사기꾼이다. 원기 왕성하고 활력이 넘친다. 그의 동물적인 감수성은 삶에 대한 긍정, 생(生)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이 아닌 경험에서 지혜를 얻는다. 머리로 계산하기보다는 몸으로 부딪친다. 책상물림들의 먹물 행태를 비판하고,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을 미덕으로 삼는다.
흥이 나면 (또는 우울하면) 산투르를 연주하고 시르타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여자는 그에게 성적 대상일 뿐이다. 여인에 대한 성적 욕망을 감추지 않고 마음껏 발산한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졌다.
"내 조국으로부터 구제받고, 신부들로부터 구제받고, 그리고 돈으로부터 구제받았습니다. … 나는 해탈의 길을 찾은 겁니다. 나는 인간이 되는 겁니다." (348쪽)
크레타 섬에서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프랑스 출신의 오르탕스 부인은 한때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퇴물 가수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젊어서는 유럽 각지를 여행했으며, 유명한 장군이나 권력자들과 어울렸다. 화려한 과거를 못내 그리워했다.
외로움에 시달리며 사랑을 갈망하던 마담 오르탕스는 사내다운 조르바에게 매료되어 결혼하자고 매달렸고, 조르바는 마지못해 약혼을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병에 걸려 초라한 죽음을 맞는다. 주인을 잃은 여관의 물품과 가재도구들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몽땅 털리고 만다.
마담 오르탕스의 초라한 노년은 젊음과 사랑이 떠난 후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보여준다. 그녀의 죽음은 삶의 덧없음, 무상함을 상징한다.
마을에는 젊고 아름다운 (이름 없는) 과부가 있다. 누구의 구애도 받아들이지 않는 그녀의 고고한 태도는 마을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마을 청년(파블리)이 그녀를 짝사랑하다 상심해 자살하자 그녀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는 극에 달했다.
'나'는 과부의 매력에 끌렸지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내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을 마시고 그녀를 찾아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것은 깊은 감정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일회적(一回的)인 만남에 가까웠다.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교회에 온 과부를 본 마을 사람들은 집단적인 광기에 빠져 그녀를 죽였다. 조르바가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청년의 아버지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죽음을 방관하며 지켜본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구역질 나는 결론을 내리며 스스로를 변명했다.
과부의 죽음은 억압적인 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성 중심의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살던 그녀는 마을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혀 잔혹하게 제거됐다.
'나'는 조르바에게 광산 사업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는 열정적으로 일했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터졌지만 재빠르게 대처한 조르바 덕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사업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겠다고 시내로 갔다가 술과 여자에 빠져 가져간 돈을 탕진하고 뒤늦게 돌아왔지만, '나'는 화를 내기는커녕 반갑게 다시 어울려 지냈다. 조르바가 목재를 운송하겠다고 설치한 고가 케이블 시스템이 시운전 도중 무너지면서 모든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것이 삶의 끝은 아니었다. 조르바는 낙담하지 않았다. 양고기를 굽고 포도주를 마시며 시르타키 춤을 추었다. '나'는 그와 함께 춤을 추며 날려버린 돈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고 해방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크레타를 떠나 제 갈 길로 갔다.
크레타 섬을 떠난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단지, 루마니아, 러시아 등에서 그가 보내온 엽서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독일 마을의 교장으로부터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과 함께 "이제 철 좀 들라"라는 충고를 전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산투르를 '나'에게 남겼다.
조르바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유언을 마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죽음을 맞았다.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는, 그렇게 오연(傲然)하게 세상을 살다 떠났다. 그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우리는 매일같이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
- 카잔차키스의 집 대문 위에 새겨진 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