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인 조르바(Zorba) 이야기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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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삶이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조르바는 해변에서 춤 추기, 맛있는 식사, 마음 맞는 친구와의 대화를 즐겼다. 삶의 단순함에서 기쁨을 얻었다. 돈이 필요하면 일하고, 돈이 있으면 즐겼다. 음식, 와인, 음악과 같은 소소한 즐거움에 심취했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소유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는 데서 찾을 수 있음을 일깨운다. "단순함은 궁극의 세련미이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라고 하듯이.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126쪽)


"두목, 세상 일은 간단한 거예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해요?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 헷갈리게 하지 말래도!" (180쪽)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肉化)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달은 얼마 있지 않아 질 것 같았다. 둥근달은 창백한 초록빛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요가 바다 위로 펼쳐져 있었다. (207쪽)





② "삶은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열정을 다해 살아라."


삶은 예측 불가능하다. 실패와 좌절은 삶의 일부다. 청년이 자살하고, 오르텐스 부인이 죽고, 과부가 살해되고, 사업마저 풍비박산 나지만, 삶은 계속된다.

조르바는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삶을 열렬히 사랑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현재에 온전히 몰두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다. 세상과 소통하고, 자유를 얻고, 기쁨을 노래한다. 위험을 회피하지 말라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르바는 계산이 싫다. 관념은 따분하다. 삶은 더하기 빼기가 아니니까.

따지고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자. 백 번의 생각보다 한 번의 행동이 훨씬 더 값지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영혼이 아닌 육체를 보살펴야 한다.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내가 짜증으로 응수했다. 내가 짜증을 낸 것은 내 내부의 욕망 역시 암내를 풍기며 지나간 그 탄탄한 몸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썽이 질색이라고!"

조르바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 … 어디 좀 들어봅시다. 두목이 원하는 건 도대체 뭔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 …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159쪽)




③ 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본 조르바, 하지만 "진리는 그에게 있었다."


삶은 지식이 아니다. 몸으로 부딪쳐서 얻은 경험이다. 조르바는 모든 경험을 교사로 여긴다. 그것이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간에.

긍정적인 사고는 삶의 도전과 좌절에 대한 회복력과 희망적인 전망을 키워준다. 그래야 적응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가지고 삶의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힘을 키울 수 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99쪽)


아프리카 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하늘의 별은 수를 불려 나갔다. 별들은 인간에게 냉혹하고, 잔혹하고, 냉소적이며 무자비했다. (100쪽)


조르바는 책벌레로 살면서도 책에서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하는 '나'를 비웃는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부딪치라고 가르친다. 책이 주는 지식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에서 더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두목,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는데, 부디 화는 내지 마시오. 당신 책을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할지.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우리가 당신을 제대로 만들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속으로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조르바 말이 옳아! 옳고말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어.) (148쪽)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며 대체 뭐가 씌어 있는 거요?" (415쪽)


“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415쪽)




④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운명을 사랑하라. 지금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지금 이 순간의 삶과 경험과 기쁨에 온전히 몰두하라.

조르바는 '지금 여기'에 충실했다.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매달려 후회하는 건 어리석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물리적 자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유스럽게 느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조르바는 삶에 대한 열정, 자발성, 춤, 음악,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이 철학을 구현한다.

그는 말한다. 하루를 꽉 붙잡아라. 시간은 덧없고, 젊음은 일시적이다. 젊고 아름다울 때 삶과 사랑을 즐겨라.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420-421쪽)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고대 로마의 시인 퀸수트 호라티우스 플라쿠스(Quintus Horatius Flaccus)가 기원전 23년에 출판한 자신의 시집 〈송가(Odes I.11)〉에 나온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해방된 로마 노예의 아들로서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을 즐겨라, 내일을 믿지 말아라. 미래가 어떻게 될지 묻지 말고, 하루가 가져다주는 것을 선물로 받아들여라.

Seize the day, put very little trust in tomorrow. Cease to inquire what the future has in store, and take as a gift whatever the day brings forth.


*송가(頌歌)는 장려(壯麗)하고 공이 많이 든 서정시(운율)로 음악과 함께 불린다. 'Just Do It.'이라는 구호는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행동하라고 격려하는 카르페 디엠의 뜻과 맞닿아 있다. 다만, 앞뒤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즐기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이다.


명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1989)에서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은 학생들에게 규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더 중시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주체적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얘들아. 네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누가 네게 뭐라고 하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너의 말과 생각이다.

No matter what anybody tells you, words and ideas can change the world.



⑤ "죽음은 끝이 아니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과 죽음, 자유와 운명에 대한 철학적 탐구다. 소설에는 마을 청년 파블리의 자살, 오르텐스 부인의 외로운 죽음, 마을 사람들에 의한 과부 살해, 조르바의 죽음까지 여러 죽음들이 등장한다.

과부를 짝사랑하다 자살한 파블리의 죽음은 사랑에 불타는 젊은이의 열정이 낳은 비극이다. 그의 죽음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비통해하고 있지만, '나'는 과부의 선물(오렌지 한 바구니)을 받고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을 느낀다. 오렌지는 꿀처럼 달콤했다. 죽음과 삶은 이렇게 무심하게 교차한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오렌지나무 뒤의 여자처럼 한숨을 쉬는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57쪽)


과부의 죽음은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의 결과였다. 남성 중심적인 낡고 위선적인 도덕관념과 경직된 전통이 그녀를 죽게 했다. 죄 없는 자를 불태우는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었다.

100년 전의 크레타에는 인간의 야만이 펄펄 뛰고 있었다. 벌건 대낮에 집단적 광기에 빠진 무리들에 의해 힘없는 과부는 무참히 살해됐다. 몇 시간도 안 돼 이를 기억 속에 묻어 버리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행태가 벌어졌다. 집단의 잔혹성과 개인의 무력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조르바는 몸을 던져 막으려 했지만, '나'는 무력하게 손 놓고 지켜봤다. 과부가 죽고 나자 그건 '마땅히 일어나야 했던 사건'이라는 구역질 나는 결론을 내렸다.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나'는 과부의 죽음을 지나간 역사와 문화로 편입시키는 궤변 뒤에 숨었다. 조르바는 '살아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했다.


조르바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끽하고 죽고 촛불이 꺼지고, 뭐 그런 것 아닙니까.(226쪽) 죽음은 삶의 일부니까.

그는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거부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고 담담하게 마주한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구더기밥이 될 뿐이니.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현명한 방식은 오직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의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와 닮아있다. 장자(莊子)의 죽음과 삶은 밤과 낮과 같다(死生爲晝夜)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 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349쪽)


조르바는 오연(傲然)하다. 자유롭게 살다 자연스럽게 갔다. 비극적이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후회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방식대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집을 버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집착을 던져버리면 피안(彼岸)에 이른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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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애국심의 역설 :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르바는 젊어서 크레타 독립군에 가담했다. 전쟁터에서 생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목을 따고, 코를 베고, 귀를 잘랐다.

조국은 집단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편, 국가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활용된다.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국가의 부름을 받으면 짐승처럼 싸우고 죽여야 한다.

조르바는 국가(조국), 종교(신부), 돈에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추구했다. 이념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의 본능과 감각에 따라 살고 싶어 했다.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사는 것, 그것이 조르바가 지향했던 삶이다.


“두목,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시오? 터키 놈들의 목을 얼마나 자르고, 터키인들의 귀를 얼마나 술에다 절였는지(이건 크레타의 풍습이오만) 뭐 그런 이야긴 줄 아시겠지만. 천만에요, 그 이야기는 아니요. 하고 싶지 않아. 창피하니까. 무슨 놈의 미친 지랄을 한 것일까요? 오늘 같은 날 약간 제정신이 든 김에 나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무슨 지랄이 도져 우리에게 별로 나쁜 짓도 안 한 놈들을 덮쳐 깨물고 코를 도려내고 귀를 잘라 내고 창자를 후벼 내면서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를 도우소서, 그랬을까? 글쎄 전능하신 하느님이 남의 귀와 코를 도려내어 작살내 버리기를 바란 것일까요!” (35쪽)


“ …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349쪽)


" …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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