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하루의 끝에서

묵직한 하루

by 윤태린

방 안은 숨 막히도록 고요했다. 바닥에는 지난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미뤄둔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옷가지, 머리카락, 먼지… 내 무기력한 삶이 고스란히 쌓인 증거들이었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았다.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네… 그냥 누워서 시간 보내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작은 손짓으로 옷들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오래된 상자 하나. 호기심이란 게 참… 손이 먼저 반응했다. 상자를 열자, 먼지 냄새와 함께 옛날 사진들이 나타났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사이에, 2년 반을 함께한 전 남자 친구 사진이 있었다.

손이 떨렸다. 사진을 집어 드는 순간, 그때의 웃음, 그때의 냄새, 그때의 공기까지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 그때 나는 몰랐어… 행복했었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 깊은 곳이 쓰라렸다. 태우고 싶기도 했지만, 손끝이 멈춰버렸다.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음악을 틀었다. 감성 힙합,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가사는 오히려 내 무기력함과 우울을 증폭시켰다.

“그래… 모든 게 내 얘기 같아…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거지.”

바보처럼 유튜브에서 ‘행복 주파수’, ‘마음 안정 주파수’를 틀고 눈을 감았다. 잠깐 안심이 되었지만, 금세 다시 공허가 밀려왔다.

결국 나는 절로 향했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싶었다.

절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와 고요함이 몸을 감쌌다. 낮게 울리는 종소리, 은은한 향, 나무 바닥의 차가운 감촉…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잠시 진정시켰다. 염주를 손에 쥐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염주를 돌리며, 마음속 잡념들을 하나씩 세어 내려갔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왜 마음이 시끄러운 걸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예상치 못한 순간 스님 한 분이 내 앞에 나타났다.

“첫 번째 절 방문인가?”

나는 놀라 얼어붙었다.

“네… 그냥… 마음을 좀 추스르러…”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네. 마음이 무거울 땐, 말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하지만… 혹시 마음속 짐을 말하고 싶진 않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 공허와 무기력, 모든 잡생각이 순간 폭발할 것 같았다.

“그냥… 다… 귀찮고, 우울하고, 공허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게 다 인간이지. 나도 한때는 너처럼 하루 종일 바닥만 쳐다봤다네.”

스님의 말에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웃음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스치는 바람과 낮게 울리는 종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흔들며 잠깐의 평온을 주었다.

폰을 켜고 멍하니 뉴스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글 속에서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없이, 단지 글자와 문장으로 존재하는 그 사람이었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마음이 움찔하며 쓰라렸고, 눈물이 살짝 고였다. 화면 속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장면이 아니었음에도, 글자만으로도 내 가슴을 때렸다. 누군가는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고, 그 끝에 자신만의 선택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마음속이 무겁고 지쳤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놓아버렸을까. 공허와 무력감,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어쩐지 이해하게 되는 감정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상상하면서,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무력함을 직면했다. 살아 있음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견디고 있구나.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