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보다 무거운 내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동네 작은 술집, 좁고 시끄럽지만 어쩐지 편안한 곳.
오늘따라 유난히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기분 좋게, 몽롱하게 취하고 싶었다.
한 잔, 또 한 잔. 머리가 알딸딸해지고,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술이 오르면 기분이 달라진다. 자신감도 조금 생기고, 얼굴 근육까지 풀어지는 느낌.
‘이게 내 유일한 마약이구나.’
달고, 달콤한 알코올 맛이 혀끝을 감싸며, 평소라면 쉽게 토했을 술도 이상하게 부드럽게 넘어갔다.
친구들과 웃으며 옛날 얘기를 했다.
“기억나? 우리 고등학교 때 정말 미친 거 있었잖아.”
“하하, 정말 웃겼지. 너 아직도 그 장면 생각나?”
그런 식으로 떠들면서도, 슬쩍 미래 걱정이 튀어나왔다.
“근데 우리 벌써 20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응… 뭐가 먼저일까, 모르겠네.”
잔을 부딪치고, 술병이 하나, 두 개 늘어났다.
알딸딸해진 머리가 몽롱하게 흔들렸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지…’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음악 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 모든 게 뒤섞여 뇌 속에서 흩어졌다.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거울 앞에 섰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탁한 눈동자, 풀려버린 표정.
그게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듯했다.
"저게 정말 나일까?"
술이 만든 환영인지, 아니면 내가 외면해 온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같이 웃어주면서도, 내 안에서는 끊임없는 질문이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시계는 무심하게 돌아가고, 스무 살이라는 시간은 이미 내 앞에 와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뚜렷한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흘러가다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알코올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목구멍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그게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듯했다.
웃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늘 누군가의 곁에서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순간, 웃음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데 내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혼자인 기분.
오늘처럼 시끄러운 밤일수록, 그 고독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술자리가 끝나고, 친구들과 대충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밤공기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골목길엔 술집에서 쏟아져 나온 노랫소리가 아직도 흘러 다니고 있었다.
가벼워진 몸과는 다르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억눌러온 생각이 불쑥 올라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아파트 옥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문득, 이상하게도 선명한 생각이 스쳤다.
저 위에서 떨어지면 어떨까.
오늘 여기서 끝나도 괜찮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차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삶 속에서, 죽음은 오히려 자유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선택.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잠시나마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옥상으로 향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집으로 들어섰다.
아마 내일 아침이 오면, 또다시 살아야 할 테지.
그 사실이 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