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 안부를 묻지 않는 계절
가을은 원래 이렇게 조용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단풍, 공기, 낭만 같은 건 나에겐 없었다.
나는 그저, 하루를 넘기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몇 년 전부터 꿈이었던 피부관리사를 포기했다.
사람의 피부를 다듬고,
작은 공간에서 향기 나는 일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돈이 드는 꿈이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꿈도 비용이 든다.
그래서 대신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땄다.
돈도 거의 안 들고,
온라인으로 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막상 따고 나니까,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출근복을 입은 나를 상상하면,
가짜 미소를 짓는 내 얼굴이 떠올랐다.
“환자분, 접수 도와드릴게요.”
그 말을 해야 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싫었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무섭다.
실수할까 봐, 눈빛을 피할까 봐,
그 모든 게 내 불안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단단했다.
나는 그 단단함이 너무 무서웠다.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렸는데,
그 안에는 모든 책임이 담겨 있었다.
나는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은행에 10만 원도 없었다.
엄마는 날 강하게 키우려는 거겠지.
근데 강하게 자란다는 게
이렇게 외로운 일이었을 줄 몰랐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한 달 정도 할머니 집에서 지내. 마음 좀 추스를 겸해서.”
그날 저녁, 버스에 올랐다.
해가 짧아진 가을이었고,
창밖엔 낙엽이 천천히 흩날렸다.
버스 안은 따뜻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싸늘했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노란 간판 위에 ‘노래방’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손등에는 주름이 깊게 파였다.
“왔냐?”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노래방 안에는 방 두 칸이 있었다.
한쪽은 손님이 노래를 부르고,
다른 한쪽은 할머니가 사는 방이었다.
낡은 전기장판 위에 접힌 이불,
세탁한 티셔츠 몇 벌,
작은 냄비 하나.
그게 다였다.
나는 그걸 보며 숨이 막혔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토록 서러울 줄 몰랐다.
“요즘 일은 하냐?”
“아니, 아직…”
“그래도 뭐라도 해라. 안 하면 마음이 무너져.”
그 말이 내 안에 박혔다.
나는 이미 마음이 무너진 사람인데,
그걸 아무도 몰랐다.
밤이 되면, 노래방 불빛이 꺼지고
밖에서는 비가 흩뿌렸다.
그 좁은 방 안에서
나는 멍하니 천장을 봤다.
할머니는 옆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말했다.
“나는 평생 가난했어.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잖아.
넌 아직 젊잖아. 젊으면 뭐든 다시 할 수 있어.”
그 말이 따뜻해야 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젊지만,
내 안엔 아무 힘이 없었다.
젊음은 축복이 아니라 책임 같았다.
며칠 뒤,
할머니와 목욕탕에 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데
할머니 등이 너무 작았다.
예전엔 커 보였던 손이
지금은 내 손보다 작았다.
그걸 보는 순간,
참을 수 없이 슬펐다.
“할머니, 나 진짜 잘하고 있는 걸까.”
“글쎄다.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해라.
하다 보면, 그게 잘하는 거야.”
그 말에 또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밤에 노래방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자고 있었고,
밖에서는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
“왜 나는 나를 미워해야만 버틸 수 있을까.”
그 말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먼지 낀 스피커에서
트로트 한 곡이 흘러나왔다.
가수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그 노래가 내 얘기 같아서
그날 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노래방 문 앞에 은행잎이 수북히 쌓였다.
나는 그것들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이 가난도, 이 외로움도 결국 내가 이겨내야 하는 거겠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엄마도, 세상도, 아무도.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가 아직도 내 손끝에 남아 있다.
가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돈도, 확신도, 사랑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버티는 일 자체가
이겨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