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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Sep 12. 2022

사진 찍을 수 없다면  우린 그저 입맞춤할 뿐이야

여행일기 10번째 장,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해

 바티칸이 가지고 있는 보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바티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보물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수많은 작품들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그 가치가 상당하다. 작은 동상이든, 큰 천장화든 말이다. 어디 이러한 작품들뿐인가? 바티칸은 그 역사가 상당한 만큼 수많은 자료들도 가지고 있다. 바티칸 도서관뿐만 아니라, 바티칸에서 공개하지 않은 수많은 자료들, 그것들도 엄청난 보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록 작품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인기도는 가릴 수 있다. 내가 지금 보기 일보 직전인 이 보물, 이 보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보물임은 분명하다.


시스티나 소성당, 그리고 그 성당의 천장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작품들보다 훨씬 큰 규모와 웅장함을 보여준다.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다. 이 두 작품을 소화한 후, 미켈란젤로는 그 후유증으로 신체가 변형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건강도 안 좋아졌다. 그런 천재의 희생은 결국 인류의 수많은 위대한 유산 중 두 작품의 완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종교에 관심이 많기에 개인적으로 천지 장조보단 나에겐 최후의 심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 시간에 최후의 심판에 대해 강의를 들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여행은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재밌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보니, "그것을 나의 여행일기에 담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추후에 내가 앞에서 설명하지 못한 다양한 여행 역사들을 <여행 일기> 카테고리가 아닌 <여행 역사>와 같은 이름으로 따로 분리해서 서술하는 것이 좋겠다 싶다. 여행일기엔 정말 여행을 다니면서의 생생함을 이 글을 보시는 분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강하기에 역사는 최소한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여행 다니면서 역사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신없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분위기 속에서의, 더군다나 발만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패키지 여행을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 정신없을 것이고 설명을 들을 여유도 많이 없을 테니깐.


방에 들어서자 넓은 어두운 공간이 눈앞에 보였다. 입구를 기준으로 천장에 천지창조와 그 벽면이, 즉 내가 입구를 들어섰을 때, 내가 등을 지는 그 벽면에 최후의 심판이 존재하기에 방에 들어서자 마자는 이 작품들이 바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입구에서 인파에 밀리며, 사람들이 천장을 쳐다보는 타이밍에 나도 함께 한다면 천지창조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방 이곳저곳엔 바티칸 시국 헌병대가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다. 정신없이 관람을 하다 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계시를 내리는 듯한, 무겁고, 낮은 음의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혀온다.

NO PHOTO....


SILENCE....

 이 두 문장일 뿐이다. 다른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 찍지 마세요."와 "침묵하세요."정도 될 듯하다. 엄숙하고 성스러운 장소인만큼 이 두 부분은 필수적으로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이 인파에 몰래 찍어도 모르겠는데?

 사실 이 생각은 만국 공통이다. 눈치 보고 있는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이미 당신 옆에 어느 외국인은 천지창조와 함께 셀카도 찍고 있을 테니, '나만 안 찍나..' 하며 눈치가 보일 것이다. 경찰은 많다고 할지라도 5명을 넘지 않으며, 어두운 방과 수많은 인파, 휴대폰으로 좀 찍는다고 해서 알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운이 안 좋게 사진을 찍다고 경찰에게 걸린다면 경찰의 성향에 따라, 따뜻한 눈빛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당신을 제재할 수준으로 끝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찰은 카메라를 확인하며 지우게 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카메라가 단순히 휴대폰 수준이 아니라, 무슨 대포를 가늠케 하는 수준의 카메라여서 삭제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과 카메라 셔터음, 그리고 위대한 작품들, 이것이 이 시스티나 소성당을 이루고 있다.

 모두가 사진을 찍고 있는 와중에도 이 시스티나 소성당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두 손을 꼭 포개며 조용하게 천장을 감상하고 있는 할머니, 아이에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가족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시스티나 소성당을 저장해 나아가고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우린 그저 입맞춤할 뿐이야


 나는 몹시 당황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저장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황한 것은 공공장소에서 외국의 개방적인 스킨십과 같은 허무맹랑한 맥락이 아니다. 나는 그저.. 너무 아름다워서 당황했던 것이다. 천지창조 아래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의 허리를 감싸며, 따뜻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것. 수많은 인파들의 소음은 작아지며, 그저 배경음악으로 변하고, 관람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두웠던 방은 그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 순간만을 위해 분위기 좋은 조명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천지창조와 수많은 작품들은 우리 둘의 사랑을 축복하듯, 반짝이고,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사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천지창조가 눈에 들어올까 싶기도 하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일지라도 중요한 건 당장의 내 사람이지 않겠는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 앞에서 상영되고 있는 로맨스 영화 속 두 남녀의 사랑을 보며, 나는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조금은 한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 순간을 나누는 것이 결국 사진의 본질인 저장과 기록을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닌가? 뇌리에 깊게 박힌 기억은 평생 동안 함께 하듯,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아담과 하느님이 보는 아래에서,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서로의 눈을 쳐다봐주는 것, 그것이 사진이지 않겠는가!

그 연인의 마음속 사진첩엔 어떤 모습으로 천지창조가 남았을까. 사랑하는 이가 포커싱 되어 찍혀있겠지. 주변은 흐림 처리가 되어있을 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노출도가 높아지면서 더 빛이 날 테고, 채도와 생동감 수치는 올라서 더 화려화고, 아름답게 기억될 테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그저 입맞춤할 뿐이야.." 작게 중얼거렸기에 아무도 나의 말을 듣지 못했을 테지만 나의 마음속 사진첩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영원히 저장되어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록 그 둘의 외모는 변하고, 왜곡될 테지만 그 순간의 그들이 보여준 사랑은 나에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보물, 이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작품들을 지나온 것... 미켈란젤로의 작품 등등.. 수많은 수식어를 붙이며 나는 시스티나 소성당을 기대하며 들어섰지만,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사람들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이곳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단 아쉬움에 이곳의 전경을 웃기는 스케치 실력으로 담아두었다. 그림으로 이곳을 담는다고 하니, 같이 온 일행들이 어깨 너머 나의 실력을 확인하려고 섰지만, 금방 일행들은 내가 정말 '기록'에만 의미를 두고 있음을 느끼며 사라졌다.  2022년와 비교해서 생각하면 확실히 그림보단 사랑으로 기억되는 편이 좋은 듯하다. 제일 보수적인 장소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들을 두고 소성당을 나왔다. 다음 장소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엄청난 인파 때문에 내가 그들을 두고 온 것인지, 그들이 나를 두고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우린 다시 이동한다. 그것이 여행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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