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세계 3대 박물관에 속할 정도로 엄청난 역사와 예술을 보유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의 모든 것은 아는 건 무리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마치 어려운 시험 문제에서 아는 문제가 나오면 무척 반갑듯, 바티칸 내의 작품들에 대해 조금 알고 간다면 정말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못해 나는 뮤즈의 방에 있는 여러 석상 중, 대학교 2학년 때, 교수님께서 퀴즈로 내셨던 석상이 있는 것을 본 것만으로도 매우 반가웠으니깐. 그리고 교수님껜 죄송하지만, 너무 반가워서 그 석상의 인물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덜 반가웠으면 어쩌면 기억이 났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펠리클레스였다.
뮤즈의 방은 아홉 명의 여신들이 모여있는 방이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명칭은 뮤즈 여신의 방이다. 이 뮤즈 방의 하이라이트는 이곳의 천장화와 벨베데레의 토르소이다.
엄청난 천장화, 뮤즈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존재한다.
바티칸에서 앞으로 볼 천장화들은 모두 경이롭다. 이 천장화인 경우, 뮤즈와 아폴로와 관련된 신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추하게 된다.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이곳이 벨베데레 궁전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석상엔 '네스토르의 아들 아폴로니오스'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다리와 팔, 머리가 없는 이 석상을 신상을 유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가이드 말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그리스 장군인 아이아스 텔라모니오스이란 이야기가 더 유력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담으로 팔, 다리, 머리가 없는 석상이기에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이 석상의 보수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너무 완벽한 석상이기에 만질 곳이 없다.'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말 안엔 후대 조각가들을 위한 배려 또한 존재했다고 하는데, 이 석상의 부족한 부위를 만들어버리면 조각가들의 상상력을 막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부위를 상상하며, 상상력을 확장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까지 이 석상이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음에 우리를 바로 맞이해준 건 원형의 방이었다. 이곳은 로마 판테온과 같이 천장의 원형의 구멍이 존재한다. 비록 이곳은 창문으로 막혀있지만, 돔 형태의 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이 천장 아래엔 네로 황제의 욕조가 있다. 당시 엄청나게 귀한 보라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거대한 욕조를 통해서 네로의 사치성을 느낄 수 있다. 저런 곳에서 목욕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보라색 최고급 대리석이 당시엔 황제만 쓸 수 있는 수준의 재료였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고무 대야 같은 느낌이 있었다. 특히 보라색은 황제를 의미하는 색이라고 한다.
네로 황제의 욕조-<로마 황제들이 사용한 보라색 대리석 욕조> 노시경 오마이뉴스 2008. 8.19 참고
십자가 방에 들어섰을 때의 모습.
다음으론 그 십자가 방이었다. 이곳의 이름이 십자가 방인 것에 대해선 이 방이 십자가 모양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보단 조금 짜리 몽땅한 적십자 모형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이곳은 다른 방들에 비하면 '방'같은 느낌은 곳은 아니다. 원형의 방과 촛대의 회랑으로 가는 계단 사이의 마치 로비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위치한 전시품 역시 매우 중요하기에 무시할 수 없다.
딸의 관
어머니의 관
이곳엔 두 거대한 석관이 존재한다. 아까 네로 황제의 보라색 욕조의 값어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니 이 석관을 보면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딱 느낄 수 있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뭔진 모르겠다만, 중요한 사람의 관이겠구나..!" 이 관은 기독교 박해를 끝낸 인물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와 딸의 관이다. 비록 십자가의 방의 크기는 작은 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바티칸의 입장에선 위대한 성인의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촛대의 회랑으로 내려가는 입구
거대한 석관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촛대의 회랑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촛대의 회랑은 촛대 석상이 중간중간에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압도적인 천장화였다.
촛대의 회랑에서의 모습
수많은 석상들과 엄청난 천장화들이 우리의 눈을 바쁘게 만든다. 심지어 내가 발로 밞고 있는 바닥에도 중요한 작품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수많은 천장화와 작품들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상황도 안된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압도적인 천장화, 여담으로 저 천장화 속 신부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많은 시간이 존재한다고 할 지라도 내가 이 모든 작품을 곱씹으면서 다닐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수업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감탄은 20분을 넘어가지 않는다.
빅토리아 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왔던 이야기였다. 엄청난 폭포를 보면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또 이런 풍경에 대한 존경 등으로 탄식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감탄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전경이라 할 지라도 20분 동안 감탄할 순 없다고 하셨다. 사람은 상황에 적응하기 때문에 그 풍경에도 적응한다. 폭포를 처음 볼 땐 경이롭지만, 10-15분이 지나면 얼굴을 자꾸 치는 물방울이 더 거슬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박물관은 폭포와는 차이가 있다. 수 백, 수 천, 수 만의 전시품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한 풍경만 지속되는 폭포보단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새로울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이곳에 있는 석상들 중엔 똑같은 석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모든 석상들은 전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박물관 관람에 지친 우리는 "온통 석상뿐이야...!"라고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박물관에 흥미가 많은 사람에겐 박물관 구경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설명을 읽고, 끄덕끄덕하고, 다시 한번 작품을 바라보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관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3대 박물관이어도 그 시간이 여행자에겐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 오면 이건 해야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 방문했을 때,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또 나중에 가치관이 달라졌을 때, 그 경험을 했던 것에 대해 안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다 하는 루트로만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제 아무리 바티칸을 방문했을 지라도 내가 박물관을 싫어한다면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고 다른 곳에 그 시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석상보다 그림을 좋아한다면 박물관 중에서도 그림을 위주로만 관람하면 된다. 하다못해 내가 박물관보다 커피가 훨씬 좋다고 하면, 성 베드로 광장 근처의 커피숍에서 커피와 함께 풍경을 관람하면 되는 것이다.
여행이란 같을 수 없다. 단 1%도. 내가 좋았던 여행이라도 남에겐 어려웠을 수도 있고, 내가 싫었던 여행도 남에겐 최고의 여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행은 뭘 하더라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박물관을 구경할 때, 성 베드로 광장을 걸으며 사람들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 그것도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