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나(Pabna)

149㎞ 9시간의 여정

by 지구지고

김 시인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었어요. 저는 여행하는 내내 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거든요.

‘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Sunny, you smiled at me and really eased the pain. The dark days are gone, and the bright days are here. My Sunny one shines so sincere.(써니, 어제 내 인생은 비로 가득 찼어요. 써니,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 고통을 진정시켰죠. 어두웠던 날은 가고 밝은 날이 왔어요. 나의 써니는 정말 빛나요.)’<Boney M – Sunny> 영화 <써니>의 주제곡입니다.


전라도에서 전학해 온 '나미'는 사투리 탓에 일진들의 놀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나미는 이 친구들의 새 멤버가 됩니다. 이들 일곱 단짝 친구는 칠 공주 ‘써니’를 결성하여 학교 축제에 선보일 공연 연습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축제 당일 예기치 못한 사고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가족에게만 매달려 있던 삶에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던 나미가 옛 멤버들을 찾아 나서는데요.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한 자신과 또 친했던 멤버들과 시간을 가지게 되죠. 중년의 여성들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다 다시 찾은 이름 진덕여고 의리 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장미, 욕 배틀이라면 자신 있다 진희,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 어리바리 나미. 이들 이야기가 우리 안에도 있는 듯해서 살짝 웃었습니다.


김 시인님!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방글라데시가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라는 것, 어떤 나라라는 것을 오롯이 느끼고 돌아온 정말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모두 우리 멤버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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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서 이드 기간에 움직이는 것은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했으니 정말 보고 싶은 사람 맞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출발은 순조롭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출발부터 삐딱선이었죠. 여행이 계획대로 된다면 재미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기라도 하듯 말이죠. 그래도 다카에서 출발한 차는 시원하게 시내를 통과했습니다. 다카 시내에 차나 릭샤가 없는 것은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었죠. 사거리를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지났어요.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앞이 안 보이는데도 기사는 그냥 달리는 거예요. 가끔 치킨 게임이라도 하듯 달려오는 CNG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차가 튕기는 물은 도로가 상점에까지 튀어 올랐으니 이렇게 달리면 얼마 안 걸리겠다 싶었죠.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2시간이 지나자, 앞뒤로 차가 늘었습니다. 우리가 탄 차는 앞서 달리던 버스를 피해 울퉁불퉁한 갓길을 주행하기 시작했어요. 한 발짝이라도 앞서가기 위해 경쟁 레이스가 시작된 거죠. 트럭이 끼어들었고 버스가 앞을 막았습니다. 버스 차장은 끼어드는 차를 향해 뭐라고 큰 소리로 지천구를 합니다. 우리 운전기사도 한마디 하더라고요. 우리 기사는 베테랑이 맞더라고요. 그런 지랄 같은 도로 사정에서도 급브레이크 한 번 안 잡았으니까요.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가던 차는 아주 멈춰 섰어요. 지도를 보니 브라마푸트라(Bramaputra)강에 거의 다다른 것 같았어요. 일시에 다리를 넘으려다 보니 병목이 생겨서 그렇겠구나 생각했죠. 그때 기차가 지나갔어요. 열댓 량을 달아맨 기차는 떨크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서 있는 나로선 무진장 부럽더라고요. 기차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사람, 거기서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영화 <설국>의 기차 지붕 같았죠. 왜, 거기 왜 싸우느라고 지붕에 다니잖아요. 기차 지붕 위에 앉은 사람이 부러운 건 처음이었어요. 그 위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뭔 배짱인지 몰라요. 기차는 앞으로 가고 사람은 뒤로 걸어가면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렇다면 저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버스 사이를 비집고 기찻길로 가봤습니다. 기차가 지나간 철로는 이미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점령했더라고요. 그 옆으로 집 몇 채가 전부인 마을이 있었어요. 차가 막히지 않았더라면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을 촌마을이랄까요. 기차가 지나는 마을에 가면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는 뭐가 있으면 노래 가사에 붙여 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김 시인님도 아는 노래일 텐데요.


기차가 지나는 마을

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소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시에 곡을 붙인 노랜데요. 오래된 노래죠. 기차가 지나가면 기차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 곳에서 정말 내 좋은 사람과 밤늦도록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탄 차의 운전기사도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어요. 다른 차에서도 사람들이 내리더라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리에서 교통량이 많아져서 교행 시키지 않고 일방으로 통행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차들은 길에 서 있는 시간이 가는 시간보다 더 길었던 거죠.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도로변에 죽 서 있습니다. 줄 선 차의 앞과 뒤는 보이지 않습니다. 평지의 직선도로인데도 말입니다. 시야에서 사라지면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그 정도로 많은 차들이 3중 4중으로 길을 메우고 있어 사람 하나 지나다니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여기에서 만납니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급한 일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다 한참을 걸어가 일을 보네요. 멀리 가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다 보이는데. 그래도 멀리 가는 성의가 예쁩니다. 더위를 피해 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차에서도 입술에 땀이 나도록 이야기했으련만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잘도 합니다. 살루아 까미즈(Salwar Kameez)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은 ‘만리차성(?)’을 배경 삼아 셀피를 찍는 데 열중하고요. 아마 교통 체증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배를 입에 문 젊은이는 버스에서 멀찍이 떨어져 엄지와 검지로 담배를 잡고 빨아댑니다. 빨리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차가 가지 않아 답답한 모양입니다. 오래전부터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화로 먼저 만나고 집에서 또 보고, 그러면 즐거움도 두 배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기만 한가 봅니다. 이드빔(한국으로 말하면 설빔)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며 노네요.


앞 트럭은 화물칸이 승객용 방이 됐어요. 꽉 막힌 덤프트럭의 짐칸 위에 포장으로 임시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비를 피하는 방법이지요. 잠시 비가 소강상태를 이루니 최신식 오픈형 지붕이 열립니다. 그 안에는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 한 주먹 뽑아낸 만큼의 빈자리가 있는데 거기에 누운 사람도 있어요. 차가 가면 자기 어려우니 쉬는 틈을 타서 자야겠다고 몸을 돌돌 말아 누웠나 봐요. 아마 잠이 들었으면 가족과 맛있는 먹을 질라피 만드는 꿈을 꿀 것 같아요. 단잠에 단꿈일 테니까요.


차가 정차한 곳은 김 시인님은 늘 봤을 한적한 농촌입니다. 이 풍경과 딱 맞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용혜원 시인의 <초원> 중간 부분입니다.

푸르른 풀이

지평선을 이루는 초원에는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풀과 나무, 동물과 새,

하늘과 구름과

다른 모든 것들이

자유롭게 모여들어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말 여기가 그 풍경이 맞습니다. 벼를 벤 자리엔 이제 그루터기가 다 삭았고 새싹이 두어 뼘은 자랐네요. 소와 염소, 오리가 들판에 널려있고요. 소 등에 새가 앉아 쉬는 곳, 하늘엔 비구름이 자유롭게 오락가락하고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불분명해 지평선을 굳이 나눌 필요 없는 그런 초원 말입니다. 부지런한 농군은 벌써 새로 모를 심었습니다, 이제 막 써레질을 마치고 모를 심느라 허리를 굽힌 농군 가족은 뭐가 급한지 차 막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만 부지런히 놀립니다. 온종일 심어야 손바닥만 한 논 하나 채우기도 힘들겠네요. 논둑에 자라는 바나나 나무가 그 커다란 잎을 양옆으로 기웃 둥 기웃 둥 흔들며 힘내라고 응원하니 어렵진 않겠어요. 논에서 푸르름을 즐기는 동물들은 ‘우중 여유’인가요. 정말 느긋하게 풀을 뜯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면서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도시에서 씽씽 달리는 오토의 먼지를 마시다가 여기 오니 진짜 방글라데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방글라데시 국기의 녹색이 자연의 녹색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모두 다 녹색이니까요. 처음에 상상했던 방글라데시가 바로 이런 녹색의 방글라데시였거든요. 거기에 집 몇 채, 조그만 마을 몇 개 있고 나무로 담을 튼 허름한 교실 하나 떨렁 있는 학교. 아이들과 같이,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오지 체험하듯 수업하고 웃고 하는 그런 교실 말입니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를 보고 힐링했던 내 상상이었을까요?


나라양간지 윤 선생님이 말했어요.

“아! 여기 오니 정말 좋네요. 나 있는 곳은 너무 안 좋아요.”

꾸밀라 임 선생님이 받았습니다.

“거긴 공장이 많은 거 같아요.”

“공장도 많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힘들어요. 수업이 힘든 게 아니라 환경이 힘들어요. 나라양간지에서는 이런 녹색 천지를 볼 수가 없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마이멘싱도 도로엔 먼지가 풀풀 나 눈을 뜰 수가 없지요, 쓰레기에, 빵빵 삑삑 소음에 정신없어요. 여기 정말 좋네요.”

눈 때문에 병원에 갔었던 윤 선생님이 말했어요.

“녹색으로 눈 안정을 찾고 가야겠어요.”

이 선생님이 롱뿔도 전부 들판이라 여기 같다며 말했어요.

“윤샘, 라즈샤히 좋죠. 여기 살면 힐링될 것 같아요. 라즈샤히 오셔서 1년 연장하는 걸로”

모두가 웃었어요.

임 샘이 말을 받았어요.

“꾸밀라도 여기처럼 공기는 좋아요.”

제가 말했어요.

“꾸밀라가 공기는 좋아도 뭐 꾸물꾸물하는 게 있어요?”

임 샘이 말했죠.

“저는 수업을 기초반 하고 심화반, 두 클래스를 운영해서 수업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요.”

“두 반을 한다고요?”

“두 반이 문제가 아니라 수업 준비도 전기 나갔을 때를 생각해서 준비해야 해요. 전기도 자주 나가거든요.”

“그런 두 클래스에 두 가지 수업 준비. 힘들겠네요?”

“그런데 현지 선생님은 EPS 교재를 가지고 수업하지 않고 전에 하던 대로 수업을 해서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선생님이 문제가 있는 듯하네요.”

“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를 잘 못해요. 이야기가 안 돼요.”

다카의 신 선생님이 말했어요.

“TTC는 EPS 교재로 한국어 수업을 하기로 결정됐는데 거기만 그러면 안 되죠. 문제가 있으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야 하나요? 하루아침에도 발령이 나던데…….”


아! 더 깊은 이야기를 여기서 다 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걱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한 팀이라는 건 여기서도 확인된 셈이네요. 같이 걱정하고 같이 좋아하고, 모든 걸 공유하는 진정한 한 팀. 영화 <써니>의 7 공주, 그 한 팀과 같지 않나요. 방글라데시 프로젝트팀 백만 쉰다섯, 에너자이저 엉뚱 발랄 장 샘, 일주일이면 된다 적응 짱 이 샘, 모든 건 내게 맡겨라 듬직 듬직 신 샘, 천천히 해도 제일 빠르다 아스따리(아스테아스테, 따라따리) 임 샘, 말보다 실천 파브나 으리! 김 샘. 같이라면 어디든 다 좋다 눈빛 진지 윤 샘, 그리고 저까지 일곱. 이런 생각,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아홉 시간을 달려 파브나에 도착했습니다. 아홉 시간 동안 달려서도 도시 한 곳 밖에 못 가니 방글라데시는 정말 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9시간이면 9개 도시는 지날 수 있잖아요. 그러니 한국보다 아홉 배는 큰 나라가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다 하게 됩니다.


영화 <써니>처럼 우리 일곱 명이 모인다는 것이 정말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차 안에선 옛날이라고 해야 아직 잉크도 안 마른 정도지만 그때 이야기하며 정말 많이 웃었던 날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를 아홉 시간 동안이나 봤고요. 그 웃음들, 차 안에서의 이야기를 김 시인님께 제대로 들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파브나에 좋은 숙소를 잡아줘서 정말 잘 지냈어요.


【숙소 정보】

Ratnodweep Resort

야외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정원, 정자, 연못(잉어, 연꽃)이 예쁘다.

공연장 시설이 있어 여러 가지 행사가 가능하다.

❈ 다카부터 파브나까지는 149㎞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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