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계획된 도시가 있네요
장 샘!
엉뚱하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습니다>(박준 시인)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네요. 소불고기를 학교 급식하듯 잔뜩 내놔서 실컷 먹었습니다. 불고기에 힘이 납니다. 이제 불고기를 한참 동안 안 먹어도 살 수 있을 거예요.
장 샘!
라즈샤히 특별 초대전에 갈 수 있어 기쁘고요. 정말 맛있는 거 줘서 고맙습니다. 저녁을 잘 먹은 덕분에 여행이 더 즐거웠어요. 피곤함도 잊었고요. 김 샘의 찬조 출연은 화룡점정이었고요. 그렇게 유명하다던 라즈샤히 망고도 장 샘 댁에서 처음 먹어봤어요. 그렇게 큰 망고를 먹어 본 것도 처음이고요. 마이멘싱 망고는 저를 닮아서 그런지 다 작아요. 라즈샤히 망고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어요. 맛있는 것을 ‘꿀맛’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맛있는 것을 ‘라즈샤히 망고 맛’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껍질 색깔은 시푸르둥둥한데 속은 선명한 석류꽃의 주홍이었던 가요. 꼭지 쪽은 좀 노란빛 쪽으로 기울고요. 칼로 깎을 것도 없이 제 스스로 껍질을 스르르 벗는 망고는 처음 봤어요. 입에 넣으니 그 향기는 상큼 달달이랄까. 잘 익은 노란 복숭아 향 같기도 하면서 살짝 장미향이 배인 향인가요? 망고 향수를 잔뜩 뿌린 여인의 향이 그런 걸까요? 뭐 유명한 샤넬의 향기는 저리 가라였고, 입안을 감도는 단맛은 상쾌하다고 느끼게 했죠. 빠르게 느껴지지만 강하지 않고, 오래 느낄 수 있지만 진득하지 않은 맛, 무거운 듯하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맛이었어요. 여운이 남는 단맛, 풍부함이 느껴지는 달콤함, 필연보다 우연에 가까운 맛, 라즈샤히 망고가 즐거움을 더했죠.
일정을 마치고 라즈샤히에 들어올 때도 그랬잖아요. 장 샘 댁에서의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면서도 시내에 들어서자 우리는 ‘아! 라즈샤히!’ 하고 말았어요. 기억나세요. 김훈 작가의 말 “수박은 천지개벽하듯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중략) 돈과 밥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 이것에 대입해 보면 이럴 겁니다.
「라즈샤히는 천지개벽하듯 찾아왔다. 도착하는 순간 ‘앗! 이건 뭐야!’ 소리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이 밝은 빛으로 치장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필시 지혜 있는 사람들의 솜씨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엉터리 같은 도시를 보다 라즈샤히를 보면서 ‘방글라데시에도 정리된 깔끔한 도시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한쪽을 보고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장 샘!
아침 산책도 굉장했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셔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습니다. 살짝 불어오는 색바람이 아주 좋았어요. 호텔 앞 넓고 깨끗한 도로는 중앙분리대에 화단을 만들었어요. 노랑, 빨강 꽃도 피었고요.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 도로는 쓰레기 하나 없었어요. 무엇보다 도로의 차선은 이 선을 넘으면 큰일이라고 날 것처럼 하양의 직선이었죠. 가로등이 촘촘히 박혔는데 하얀 몸뚱이에 금장 머리를 하고 13개의 백색 구형 전등을 달았더라고요. LED가 아닌 걸 보면 이건 분명 조명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도시의 멋에 방점을 둔 작품이 아닌가요. 가로수는 하늘을 다 가려서 하늘을 찾으려 한참을 걸어가야 했죠. 가로수가 아름드리인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온 도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라즈샤히를 소개하는 사이트는 “Rajshahi University에 가면 도로 양쪽에 거대한 나무로 둘러싸인 파리로드를 보는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방글라데시가 아니라 유럽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정말 좋은 가로수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 아침 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많이 보는 것도 처음 것 같네요. 저도 큰길과 이어지는 강둑을 따라 난 샛길을 걸으면서 땀을 흘렸어요. 한참을 걸었지요. 조그만 공원에선 사람들이 여럿 모여 얼굴을 마주 대고 새벽 환담을 하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인 양 ‘아쌀라무 알라이꿈/왈라이꿈 아쌀람’을 교환하면 걸었죠. 돌아오는 길엔 선생님을 만났어요. 67세라는데,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왔느냐, 여행 왔느냐, 뭐 하느냐, 방글라데시가 어떠냐, 언제 가느냐, 한국이 좋다’로 30분은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행 잘하라고 말하고 헤어졌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절했어요. 참 친절한 사람들 맞아요. 방글라데시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사랑 나무를 만났어요. 땅에 뿌리를 박은 검은 몸통의 나무는 제 몸뚱이가 갈라지고 말라 가는데도 두어 길 위 가슴에 살이 뽀얀 젊은 나무를 안고 있었죠. 젊은 나무는 하늘로 곧게 팔을 뻗었고요. 살랑이는 바람에 초록초록한 삼각형 잎의 팔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무 둘이 붙어서 사랑 나무라고 하는 그런 사랑과는 달랐어요. 좀 별난 사랑이었어죠. 검은 고목이 젊음을 받아들였으니 에로스적인 육체적, 관능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요. 고목의 몸이 갈라지고 죽어가면서 온 힘을 다해 젊은 나무를 키워내고 있으니 부모나 자식 간의 사랑이나 오래된 부부가 신뢰하는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요. 고목의 아래위로 길게 갈라진 몸통 사이로 새나무가 뿌리를 박아 움켜쥐고 있으니 서로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맞나 봅니다. 바람둥이 사랑이나 집착하는 사랑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라즈샤히에서 처음 보는 것도 많네요.
장 샘!
걷다가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슬쩍 끼어서 기웃거렸어요. 새벽 반짝 시장이 열렸네요.
금방 물에서 나왔나 봐요. 허리를 튕기며 막춤 추는 새우는 투명한 제 속을 다 보여주고 있었어요. 새끼손가락보다 더 가는 장어는 다시 물을 찾아가야 한다는 듯 머리를 흔드는데, 나이론 포대 위여서 그런지 가지는 못하고 제자리에서 에스라인만 그려 보이고요. 망둥이처럼 생긴 물고기도 있는데 옆으로 길게 누워 입은 헤 벌리고 아침잠에 취해 있는 듯합니다. 숨소리가 없네요. 심폐소생술이 필요합니다. 쏘가리같이 생긴 놈은 배 깔고 책을 읽듯 엎드려서 날개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헐떡거리고 있고요. 마치 오래 엎드려 있어 힘들다는 듯이요. 한 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온 물고기는 한 물속에 살았지만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것인지 서로를 모른척하는데 아이의 손은 같은 녀석을 분주히 골라 한쪽으로 치워놓습니다. 뒤에 서서 그걸 쳐다보는 여인은 몸은 금방 어디로 갈 것 같지만 시선은 팔딱 뛰는 물고기에 고정이 됐어요. 살 것 같은 폼은 아니고요. 다른 한쪽에선 흥정도 벌어졌어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주먹만 한 꺼먹 봉지 하나니 흥정도 싱겁게 끝나네요. 이 금방 잡은 물고기가 어디선 튀겨지고, 저 집에선 끓여지고, 누구네 선 구워져 아침상에 오르면 상을 받는 가족들은 힘이 날 겁니다. 라즈샤히 사람들은 그래서 활발하고 친절한지도 모르겠네요.
장 샘!
공항은 정말 편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검색대가 있어 무거운 것 가지고 오래 걷지 않아도 되는 배려심 많은 공항이었어요. 가까우니 카트도 필요 없고요. 검색을 마치고 들어가면 뭐 다른 절차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만 하면 표를 주더라고요. 예매는 했지만, 비행기표 받는데 이렇게 빠른 공항은 처음이에요. 강남터미널에서 버스표 사 듯이요. 공항 대합실에는 망고 속살 같은 색의 의자가 있었죠. 여기가 망고의 고장이라서 그런 거였을까요? 의자도 엄청 컸어요. 라즈샤히 망고처럼요. 제 몸이 모두 파묻힐 정도였으니까요. 흔들흔들 흔들의자였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흔들려야 해서 미안하긴 했지만요. 의자 수는 비행기 좌석 수와 같겠지,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행기 좌석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 시간이 되자 게이트가 열리고 앞자리 승객부터 탑승하게 하는 건 인천공항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국제기준과 같은 거죠. 밖으로 나가니 비행기 한 대가 있었어요. 하얀색이었는데 비 맞은 아스팔트 활주로의 검은색과 선명히 대비됐어요. 프로펠러를 달았고요. 비행기가 날씬했던 것 같아요. 비행기까지 3~40미터를 걸어가서 탔어요. 걸으면 빠른데 이 거리를 보안이랍시고 버스로 이동하게 하는 공항도 있거든요. 전에 러시아 야쿠츠크 공항에서 그랬어요. 엄청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라즈샤히 공항에서는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걸어서 탑승 정책’을 쓰니 정말 대단해요. 그래도 비행기 엉덩이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어요. 뒷문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래도 이 비행기는 꼬리 날개가 달린 엉덩이가 번쩍 들리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높이가 3미터쯤 됐던 것 같아요. 탑승 트랩 계단은 10개 정도고요. 탑승을 도와주는 분들도 친절해서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 승객을 위해 큰 짐은 직접 올려 주기도 하고 우산을 들고 대기하기도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선 비행기 엉덩이 볼 기회가 없는데 여기선 비행기 얼굴을 못 봤네요. 장 샘, 한 번 알아봐 주세요. 어떻게 생겼는지,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공항에 맞는 비행기가 온 건지 비행기에 맞춰 공항을 지은 건지’ 그것도 알아봐 주세요.
장 샘이 사는 동네 잘 살펴봤습니다. ‘라즈샤히 이름을 가져다가 며칠을 적었습니다.’ 장 샘 불고기 덕분에 앞으로 6개월은 고기 안 먹어도 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감사는 나중에 원수로 갚을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라즈샤히 정보】
기차∙AC(Non AC) 버스로 갈 수 있다.(5~6시간 소요된다.)
기차: 다카 카말라푸르역
버스: 사이다바드(Sayedabad) ∙ 갑톨리(Gabtoli) ∙ 모하칼리 (Mohakhali)
버스는 운행 회사별로 카운터가 있어 표를 구입해 승차하면 된다.
비행기(40분 소요) 다카 샤잘랄 국제공항-라즈샤히 마흐둠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