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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

새로운 직장이 생겼다, 난 방글라데시로 간다

by 지구지고

띠리릭, 띠리릭 핸드폰 울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 상공 5미터 높이의 사다리 위에서 전화벨 소리를 들었습니다. 폐허가 돼 가는 창고 문을 고쳐 보려 힘을 쓸 때였습니다. 한 손은 벽을 짚고, 한 손은 망치를 들고 있었으니까요. 속으로 분명 그 메시지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3층 높이의 건물 출입문이 떨어져서 그걸 고치고 있었습니다. 상공에서의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한 손으로 문의 레일을 잡고 한 손으로는 망치질해야 했으니까요. 큰 문에 비해 망치가 너무 작아 코끼리에게 콩을 던지는 꼴이었습니다. 큰 해머를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메시지를 보려 했으나 작업 장갑을 벗고 호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는 것이 위험해 보여 그만뒀습니다. 두 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해머가 5m 상공으로 배달되었습니다. 해머를 휘두르는 것이 힘에 겨웠습니다. 아래에서 직원들이 사람을 불러서 고치겠다고 내려오라고 성화였습니다. 두 번만 더 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망치로 힘지게 올려 쳤습니다. 2022년 11월 2일 한기를 느낄 날씨였지만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고, 온몸이 축축해짐을 느꼈습니다. 한 번만 더 쳐보자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강하게 때렸습니다. ‘덜커덩’하며 레일 안으로 바퀴가 들어갔습니다. ‘비켜!’라고 소리치고 망치를 아래로 내려뜨렸습니다. 그리고 전화 메시지는 잊었습니다. 문을 잠그고 관리 잘하시라고 말한 뒤 봉고차에 올랐습니다. 뒷자리에 편하게 앉았습니다. 잠시 후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습니다, 인사과에서 온 메시지였습니다, “과장님, 오늘인데 몇 시쯤 가능할까요?” 아 맞다. 바로 전에 온 수신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

바로 인사과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출장 중입니다. 들어가서 낼 테니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사무실로 복귀해서 써두었던 ‘명예퇴직 신청서’에 서명한 뒤 제출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팀장님들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말했습니다. 팀장님들과 직원들 모두가 ‘이건 뭐지!’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표정이었지만 설명을 듣고는 곧 수긍했습니다. 그래도 일부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극구 말렸습니다. 나는 그제야 웃었습니다, 난 망치질하다 새로운 직장이 생겼습니다. 난 방글라데시로 갑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조르바의 말처럼 방글라데시에서의 1년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 생각한 한 해였습니다. 처음 방글라데시를 볼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같이 어수선한 곳이었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한쪽으로 몰리지 않고 흩날리는 낙엽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더니 새 방글라데시가 보였습니다. ‘글자만 다르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아’하던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한 자 한 자 발굴하듯 펜 끝으로 집으며 ‘코타∼이’ 하며 읽던 빨랫줄 같았던 글자도 이제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글자를 구별할 수 있고 찾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다카, 마이멘싱,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입니다. 오히려 소란함이 매력적이고 아직 할 것이 더 많은 땅입니다. 사람 사는 정이 있고 사람이 부딪힐 수 있어 좋은 도시입니다, 누구나 붙잡고 말해도 되고, 누구와 같이 흥정해도 되는 땅.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 우리 직장, 우리나라’라는 ‘우리’에 가뒀던 나를 풀어 세상에 있게 한 것도 방글라데시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1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침부터 학생들을 만나고 프로젝트 불빛에 먼지가 뽀얗게 길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도 목청이 터져라 책을 읽어댔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켜 보겠다고 학생들에게 특별 수업까지 제안하며 늦게까지 공부하게 했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낯선 땅을 탐험하듯 나섰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방글라데시를 훑어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친구를 새기려 했고 그들과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몇 푼 받는 한 달 치 생활비를 돌아다니는데 다 들여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방글라데시가 좋아졌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좋아졌습니다. 나라가 좋고 사람이 좋다면 더 이상 이야기는 할 게 아닙니다. 젊은이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방글라데시 곳곳을 돌아보면서 방글라데시의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릭샤왈라의 땀을 알 수 있었고, CNG가 가지는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왜 낡았는지, 기차는 왜 늦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겠다고 간 방글라데시가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어떤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잖아요. 그 어떤 생각이 나의 세상을 바꿨습니다.


여기 낯설고 물선 방글라데시, 딱 봐도 외국인이라고 생각할 한 사람이 그 안에서 뛰어들어 비비고 좌충우돌하던 일상을 그려보았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대해 모든 것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옮겨 적었습니다. 방글라데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보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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