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박물관(Ethnological Museum)

그들의 삶을 기억하라고

by 지구지고

소수 민족의 삶은 어땠을까? 점심을 먹고 소수 민족 박물관(Ethnological Museum)을 찾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유일한 민족박물관이라고 한다. 1974년에 개관한 박물관은 방글라데시의 소수 민족, 부족, 부족 공동체의 역사와 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으로 29개 소수 민족의 의례, 관습, 삶의 흐름에 관한 11개의 전시실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자료를 수집해 전시했다고 했다.

베이지색 페인트가 벗겨져 검게 변해가는 허름한 건물이다. 작업장에서나 쓸 것 같은 커다란 선풍기가 더위를 날리겠다고 씽씽 돌아가지만 더위를 날리기는커녕 더운 바람을 내는 박물관이다. 노인 같은 박물관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물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다로 나가려는 커다란 배였다. 마치 갈치처럼 긴 것이 날렵하게 생겼다. 물길을 가르고 파도를 이기기엔 더없이 좋은 구조였다. 소수 민족 삶의 현장을 재현한 미니어처 박스가 부족마다 전시돼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정말 오래전에 부족을 이끌었을 부족장이 위엄을 드러냈고, 집집마다의 일상이 마치 그 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흰옷을 입은 가장은 긴 담뱃대를 재떨이에 대고 담배를 피운다. 선비의 서안 같은 앉을 책상에선 딸이 책을 읽고, 그 뒤에선 누나 앉은키만 한 사내아이가 칼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막대기를 들고 섰다. 엄마는 가족의 새 옷을 만들 요량인지 길쌈 삼매경이다. 집에서도 여성들은 샤리를 둘러 머리를 감쌌고 남자들은 빤자비를 입고 뚜삐를 썼다. 벽에 걸어 놓은 카펫과 바닥의 카펫은 모두 양털로 짠 듯 촘촘하고 정교하다. 배경 그림이 모스크인 것으로 보아 무슬림 가정을 표현한 듯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한 손으로 들면 꼭 맞을 곰방대를 물고 있는 사람들도 이채롭다. 남녀 모두 아래 복장은 치마다. 앞이 불뚝하게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룽기는 아니다. 윗도리는 요즘 사람들이 입는 남방과 같았다. 마르마(Marma) 족이다. 이들은 대나무로 엮은 바닥에서 지냈다.


실렛 지역의 마니푸르 족의 루시 댄스(Rush Dance) 무대엔 4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두 줄로 섰다. 머리엔 고깔을 쓰고 그 위에 그물코 같은 투명한 샤리를 둘렀다. 치마는 흰색 띠 안에 작은 무늬를 자수로 새겨 넣었는데 허리에 둥글게 고정대를 넣어 넓게 펼쳐서 화려함을 뽐냈다. 저고리 단은 치마 속으로 넣어 속살이 보이지 않게 했다. 반팔을 입고 팔꿈치를 90도 굽혀 살짝 들어 올린 오른손엔 다섯 개의 장신구를 걸었다. 마치 클래식 공연을 마친 성악가가 손을 들어 인사하는 폼이다. 고개는 오른쪽으로 45도 돌리고 뒤로도 45도 젖혀 천정을 바라보며 이제 막 박수 세례를 받으려는 모습이다. “와우! 이 모습 오르골로 만들어 돌리면 좋겠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무룽 마을(Murung village) 사람들은 2층에서 살았다. 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억새로 지붕을 얹었다. 위층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1층은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남성의 옷은 타잔이나 입었을 천 조각 팬티가 전부다. 여성들도 아래만 가리는, 요즘으로 보면 엉덩이만 가릴 만한 아주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 아래만 가렸으니 위는 안 입은 거다. 다리가 ‘나’ 만큼 긴 검은 돼지와 숏 다리 회색 돼지가 그림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뚱뚱해서 걷지 못하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아 있는 닭. 절구에 곡식을 빻는 여인들이 사는 겹겹이 산속 마을의 풍경이다. 산속이니 쬬또그람 쪽이나 다른 나라 부족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흰옷을 입고 마당 의자에 앉은 노인은 무슨 근심이 있는지 초점 없는 눈으로 앞만 응시하고 있다. 그 옆에 앉은 젊은이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라도 된 양 고개를 숙인 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 앞쪽 바닥에 두 다리를 벌리고 빗자루를 매는 사람은 벌써 두 자루를 만들어 놓고 더 만들까 고민하는 눈치다. 어떤 마을의 풍경이다.


이 박물관에는 각각의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들이 전시돼 있다. 동물을 잡기 위해 어깨 위에 올리고 뛰었을 창, 밭을 얼마나 갈았는지 무뎌진 쟁기며 호미 같은 농기구, 옷감을 만들며 돌렸을 검은 손때 묻은 물레, 얼굴에, 팔에, 발목에, 걸었을 장신구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을 토기들, 집을 지을 때 사용했을 연장들, 무엇보다 즐거운 생활에 필수였을 북이며 악기들이 흥미를 자아내게 했다. 그중에 길쭉한 나무통에 가죽 울림통을 씌운 타악기 앞에는 ‘Drum’이라고만 종이에 써서 붙여 놓았다. 분명 제 이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찾지 않고 흔하디 흔한 이름을 붙여 놓은 의도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높은 벽 위에 그림으로 그려진 소수 민족의 삶을 보면서 생각했다, 민족은 있는데 제 나라는 없다. 그때는 같은 동족끼리 잘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수 민족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 어떻게 조상들이 소수 민족이 되었는지 모른다. 누구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소수 민족이라는 것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이 느낀다. 방글라데시엔 민족 차별, 종교 차별이 없다고는 하지만 주류 사회에서 한 발짝 빗겨 선 소수 민족이 느끼는 것도 주류사회가 느끼는 것과 같을지는 의문이다.


그때는 과거다. 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그때다. 그러니 그때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고 여기서 그때를 돌아보라고 박물관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강제로 합치게 했으니 미안하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그것조차 모를 걸’, 뭐 이런 표현일 수도 있다. 드럼도 그때를 잊으라고 제 이름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괜히 연결 지어 본다. 여기 소수 민족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은 그 세월만큼이나 낡았지만 낡은 만큼 의미를 더해 주는 소중한 소장품일지 모른다. 좀 더 있으면 소수 민족이라는 말은 있으되 소수 민족은 없어질 것이니까.

【방문 정보】

휴관: 일요일과 공휴일

입장료: 외국인 100TK

가는 방법: C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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