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텐가 해변(Patenga beach)

죽음을 기다리는 배

by 지구지고

‘오늘 색깔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마 주황. 60% 밝게. 햇살 색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CNG를 탔다. 파텐가 해변으로 가는 길은 먼지로 정말 60% 주황이다. 인도를 부수고 하수도를 만드는 도로는 흙더미가 한 길은 쌓였다. 포장 공사를 하다가 만 바닥은 움푹 파여 온몸을 흔들게 했다. 닭이 모이 찾느라 헤쳐 놓은 것 같은 도로는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구름을 만들어 하늘이 가릴까 걱정되었다. CNG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전진만 있을 뿐이었다. 작은 체구의 CNG 장점은 큰 트럭이 못 가는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줄줄이 과자를 걸어 놓은 상점을 지나고, 문 앞에 아이를 안고 선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주택가 골목을 돌았다. 풀이 뒤덮은 마을 공터를 지나고 둑에 비닐봉지를 널어놓은 듯한 저수지를 지났다. ‘이런 곳에 어떻게 해변이 있어.’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한참 골목을 돌고 돌아 빠져나온 곳은 다시 대로였다, 공사 중인 고속도로 같은 느낌. 아직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몇 안 되는 차가 신나게 달렸다. CNG도 ‘나도 한 번 달려 볼까?’하는 심산으로 액셀을 당기지만 달리는 건 영 시원치 않았다. 큰 도로를 5분 정도 달렸을까 배가 보였다. 배가 있으니 바다다. 해변이면 모래가 있어야 되는데 생각하는 찰나 모래 둔덕이 나타났고 거기에 드문드문 빨간 파라솔이 박혔다. 몇 사람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였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곳이었단 말인가.’, ‘좀 더 가면 되겠지’ CNG 왈라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아무 말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10분쯤 더 달리니 몇몇 파라솔이 보였다. CNG는 ‘여기’ 하며 멈췄다. 맞겠다 싶어 300따카를 지불하고 CNG에서 내렸다. 뭐가 있을까? 해변이니 모래사장?

몇 계단 내려서니 방파제가 보였다. 방파제 앞에는 수천 대의 배들이 바다를 가득 메웠다. 마치 계가를 마친 바둑판의 바둑돌만큼이나 빽빽해 셀 수 없을 정도다. 부르면 곧 가기라도 할 듯이 뱃머리는 모두 대양을 향했다. 바람에 파라솔 날개가 참새 날갯짓처럼 빠르게 팔랑이는 파라솔은 빨주노파보의 무지개색이다. 60% 주황의 햇살과 100% 파랑의 배경 하늘. 햇살에 맞은 바다는 멍이 들어 시퍼런 색. 멈춰 선 배를 비웃기라도 하듯 떠가는 흰 구름. 드문드문 지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 있다고 호객하는 상인. 아침 10시의 파텐가 해변은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방파제를 따라 반대쪽으로 걸었다. 바다 쪽은 방파제를 쌓았고, 그 앞으로 파도를 막아주는 트라이포트 구조물들이 놓여있다. 구조물들의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큰 파도는 없는 모양이었다. 육지 쪽은 포장된 광장이다. 광장은 이중 구조로 몇 개의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광장과 광장 사이에는 양쪽을 다 비칠 수 있도록 우아한 곡선으로 신경 써 만든 가로등이 일정 간격으로 박혔다. 가로등 사이에는 유치원생 장딴지만 한 대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천막으로 벽과 지붕을 만든 간이식당이 200여 미터 이어졌다. 대나무 천막 식당은 빨간 플라스틱 행사 의자와 파란색 의자를 놓고 손님 맞을 준비는 끝냈으나 사람이 아직 올 시간이 안 됐는지 텅 비었다, 해변 끝에는 초록의 나무가 우거진 정원이 있었다,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다. 4층 높이는 될 듯한 커다란 나무는 햇빛을 받아 그 선명성이 돋보였다. 나무 주위에는 모네가 풍경화를 그릴 때 보았을 법한 구름을 가진 하늘이 있었다. 그 풍경을 배경 삼아 동영상을 촬영하는 젊은이들 모습이 보였다, 세 명이 자기 멋대로 춤을 추는 것 같지만 뭔가 하나의 틀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보였다. 음악에 맞춰 손을 앞뒤로, 머리 위로 흔들기도 하고 꼬기도 했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둘이 교차하기도 했다. 팔놀림도 나름의 규칙이 있을 터였지만 나로선 규칙을 찾을 수 없는 그저 자유로움뿐이었다. 춤추는 청년도 청년이지만 그걸 촬영하는 친구의 모습도 만만치 않다. 카메라는 아스팔트 바닥에 바짝 붙여 놓았다. 왼쪽 발은 땅을 짚어 세웠고, 반대쪽 다리와 엉덩이는 아스팔트에 주저앉혔다. 바닥에 붙은 화면을 보느라고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고개를 길게 뻗어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은 개에게 쫓기다 급해서 머리만 수풀에 박고 숨은 장닭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연신 사인을 보냈다. 촬영 감독의 수완이 좋은 건지, 춤꾼들의 춤이 잘 된 건지 촬영은 한 번에 OK 사인으로 싱겁게 끝났다. 그걸 촬영하기 위해 나도 무릎을 꿇고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인 채 카메라 감독과 같은 포즈를 취했다. 힘들었다. 하지만 멋지게 촬영하고 싶은 욕심에 카메라를 위, 아래로, 줌인, 줌 아웃하면서 지미집 흉내도 내보았다. 마치 음악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전체 화면, 한 사람 화면, 클로즈업, 배경 바꾸기 등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면서……. 아마 저 촬영 감독도 이렇게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 했으나 그 화면은 지금 볼 수 없다. 나중에 TV를 통해 방송된다면 모를까.

걸으면서 윤 선생이 말했다.

“하늘과 어울리는 춤, 좋은 거 봤네요.”

내가 핸드폰 촬영한 것을 열면서 말했다.

“어, 없네. 아, 멋있게 촬영한다고 했는데.”

아! 폼만 취했을 뿐 녹화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 나의 손은 버튼 누르기에 실패했다.

“어, 엄청나게 촬영하는 것 같았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버튼을 누르지 않은 빈 촬영이네요.”

“아쉽네요.”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됐지요. 여기 와서 이런 거 볼 줄 알았어요.”

“맞아요.”

아쉬웠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말했다.

“이제 저 아래로 해서 갈까요?"

“네”


내려가는 데 두어 군데에서 상인들이 여기 왔으니 뭐 좀 먹고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 파랑 하늘을 그냥 보내기 싫어 파라솔 날개가 파르르 떠는 색동 파라솔로 들어갔다. 탁자도 없이 빨간 플라스틱 의자만 딸랑 놓인 파라솔은 바람에 쓰러질세라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채 날개만 팔랑거리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직 사람들이 앉은 파라솔은 없었다. 시원한 물병을 들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생 보지 못할 많은 배를 한꺼번에 봤다.’, ‘배들의 피안지’, ‘보트를 탈 수 있음’, ‘나룻배를 탈 수 있음’, ‘파도가 치는 흙탕물’, ‘물놀이하는 사람 있음’, ‘넓은 시멘트 광장’, ‘자전거’, ‘말’, ‘회색 시멘트 옹벽의 해변’, ‘멋대가리 없이 만든 편의 위주의 시설’, ‘방파제를 따라 세워놓은 가지가지 색깔의 파라솔’, ‘비행기가 지나는 풍경’.


파라솔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여기 굉장히 많은 사람이 올 것 같아요.”

“그러게요.”

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이야기를 했다.

“여기 음식점에서 해산물 요리가 좋다고 했는데.”

“어디서요.”

“아마, 포장마차겠죠. 다른 건 없는데…….”

“아직은 사람이 없어서요.”

“아쉽지만 할 수 없죠. 규모로 보면 여기 사람들이 많이 올만 하네요.”

“그러게요. 쬬또그람은 살기 좋은 것 같아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이 하늘, 바다, 그리고 내가 사는 데 비하면 시내도 정말 깨끗해요.”

윤 선생이 말했다.

“맞아요. 정말 살기 좋은 것 같아요. 있을 건 다 있고, 맛있고, 여기로 보내준다면 1년 연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사실 우리가 만난 건 어제였다. 원래 정 선생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으나 도착이 늦어져 점심을 겸해서 쬬또그람의 담파라(Dampara)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페닌슐라 호텔(Peninsula) 식당을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오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란 정 선생의 배려였다. 윤 선생이 버스로 먼저 도착했고, 기차를 탄 나는 오후 3시쯤 도착했다. 릭샤왈라의 두 다리 힘으로 쉽게 호텔을 찾았다. 호텔에 들어서서 짐을 검색대에 올려놓고 둘러보니 창 안으로 두 선생님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성찬이 막 시작된 상태였다. 음식을 앞에 놓고 만난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주둥이를 어항같이 벌리고 보름달 레몬 조각을 문 주스 잔은 얼음으로 간을 한 시원한 주황색 주스를 담았다. 목구멍이 얼어붙게 만든 주스는 11시간의 기차에서의 피로를 녹여 버렸다. 내 입도 주스 잔 주둥이 벌어진 듯 헤 벌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쭉 늘어나는 치즈 위에 빨강 토마토와 초록빛 피망이 토핑으로 올라앉은 피자는 댓 달 만에 먹어보는 유혹의 맛이었다. 먹으면서 ‘쬬또그람 좋다’, ‘좋다’를 연발했다.


모처럼 맛본 음식에 위장이 놀랐을까 싶어 잠시 걸었다.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쿨시마트에 들렀다. 한국의 이마트나 롯데마트보다는 못하지만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으나 사야 할 것은 다 갖춘 셈이니 조영남의 <화개 장터>와 다를 바 없었다. 예닐곱 대의 고기를 넣은 냉장고 안에는 빨간 살을 드러낸 고기 뭉치들을 ‘주인을 찾습니다’ 광고를 하고, 밥 하면 윤기가 좔좔 흐른다는 자포니카종 쌀이 매대 중간에 살포시 얹혀있었다, 마이멘싱에는 없는 딱딱하게 속이 배겨 무끈한 양배추, 무보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 무청 길이가 더 긴 매끈한 무, 씹으면 바삭 소리 날 것 같은 고소함이 밴 뺀질뺀질한 견과류, 게다가 멋진 한국 사람까지 마트에서 만났다. 쬬또그람에서 목회 활동을 하시는 목사님 부부와 반가운 인사를 했다. 모든 게 다 갖춰진 완벽한 삶 그대로였다.


그때 윤 선생이 말했다.

“여긴 정말 없는 게 없네요.”

세 달째 쬬또그람에 살고 있는 정 선생이 말했다.

“맞아요. 없는 건 없어요.”

식당에서 한 얘기가 생각났는지 “식당도 많고, 맛있고요.”라고 덧붙였다.

“나, 여기로 오라면 1년 연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다 같이 웃으며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깨끗한 집, 파란 하늘, 멋진 바다, 맛있는 음식, 뭐든 살 수 있는 마트, 한국 사람, 외국 생활을 하면서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답했다.

“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고요. 기회를 만들어서 중남미 쪽에 가보고 싶어요. 거기도 열악하기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저도 마찬가지예요. 기회가 되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같이 가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 좋죠.”라고 말하려다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속으로만 했다.


파라솔 아래서 물을 홀짝거리며 앞뒤를 번갈아 보았다. 움직임이 없는 배, 움직이는 구름, 흔들리는 나무, 푸드덕푸드덕 소리만 내는 파라솔, 칙칙한 바다와 밝은 하늘, 살짝 부는 바람이 살랑이는 오늘 같은 날은 ‘그림 그리기 대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문 정보】

가는 방법: CNG & 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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