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스바자르(Cox's Bazar)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by 지구지고


신 샘!

하늘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 그 색깔 모두를 본 저녁이었어요. 뭔가 손에서 놓쳐 아쉬움이 남는 듯합니다만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매일 지는 해를 보면서 아쉬움을 남길 필요가 있겠나 싶지만 오늘은 특별하더라고요. 태평양에서 해돋이를 보고 인도양의 해넘이를 처음 보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어스름한 바닷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다녔어요. 저도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걸었지요. 하염없이 걸었다기보다는 해 지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해변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걸어보자면서 간 거였어요. 30, 40분 정도 걸으니, 인도양의 바닷물이 검붉게 변했어요. 해가 물속으로 사라질까 가슴이 콩당콩당 당했어요. 뭐 콩당콩당이라기보다는 좀 약간 설레기도 하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거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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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 있는 해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바다로 빠질 것 같아 ‘좀 나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색을 자꾸 변해갔어요. 잔잔한 수면 위에 붉은 꽃물이 들었고요. 한 송이 붉은 꽃에서 시작된 물빛은 화장지에 물이 스며들듯 해수면 전체에 번져갔습니다. 해가 뜨겁다고 하더니 뜨거운 해가 물속에 들어가 식으면서 내는 수증기가 구름이 됐나요. 해 주변으로 몰려든 구름은 진한 회색 띠를 이루며 해를 가렸습니다. 그러더니 짙은 자줏빛으로 변해 마치 바닷물 색깔과 같아졌습니다. 이글거리는 불꽃은 아니어도 붉은 석류꽃 오렌지색에서 봉숭아의 붉은 색깔, 주홍으로 바뀌는 저녁놀은 그 안에 커다란 홍시 같은 해를 숨긴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숨김 뒤에는 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녁 해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해가 지나간 자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시절을 잠깐 떠 올리며, 청나라 시인 원매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복사꽃 휘날려 찾기 어려우니

뒤늦게 온 사람들 애석해하네

나는 늦게 오는 게 낫다고 말하지

꽃 그리운 마음, 꽃 보는 마음보다 깊으니」


밀려온 파도가 미처 스며들지 못한 모래사장은 거울이 되어 저녁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다를 중심으로 데칼코마니를 만들었죠. 조그만 바위 덩어리가 만든 물웅덩이는 커다란 거울이 되었어요. 한 개의 꽃물이 두 개의 꽃물이 되었고 거울 뒤로 뛰어가는 아이의 달음박질처럼 해가 빠르게 지는 느낌이었어요. 여기 콕스바자르에서는 이 모습이 매일일 텐데 나에게는 꽃단장한 여인처럼 예쁘게 보이네요. 해는 못 뵀어요. 그 안에 있었을 거예요. ‘구름에 가렸다고 달이 없냐’는 말처럼 ‘구름에 가렸다고 해가 없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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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언제 수면 아래로 사라진 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주홍빛 하늘이 빨강으로 바뀌는 그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늘색이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죠. 영산홍의 붉은색이었다, 제라늄의 밝은 빨강이었다가, 박태기나무 꽃의 진한 핑크빛이었다가 붉음의 깊이를 모를 모란의 그 붉은색이었다가 상사화의 불타는 붉은색으로 변했죠. 온통 색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어요. 해넘이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색깔을 보여줄 심산인지 천천히 그 얼굴을 바꿔갔지요. 그만큼 침묵의 시간도 길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통통 소리를 내며 내려갔습니다. 섬섬옥수의 손가락이 튕기는 가야금의 소리에 맞춰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누구는 해지는 모습이 그림같이 떨어져 장관이라 했는데 오늘 콕스바자르의 해는 언제 진지도 모르게 졌는데, 아쉬움을 달래라고 붉은 잔영을 오랫동안 바다, 하늘 한가득 펼쳐 놓았네요.


인도양 해넘이 갈라 쇼 잘 봤습니다.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해변에 앉아서 차 한잔하고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개구리에게도 잘 봤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콕스바자르 가는 방법은 많더라고요. 웬만한 도시에선 모두 콕스바자르 가는 버스가 있어요. 마이멘싱에서도 저녁에 버스를 타면 아침에 도착할 수 있어요. 비행기도 있고요. 저는 비행기를 탔어요. 다카에서 한 시간쯤 걸려요. 제가 호텔에 도착 시간은 4시쯤이었어요. 조그만 도시의 버스터미널 같은 항공 앞마당에서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45분을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죠. 5분 정도는 시내를 달렸고 40분은 해변을 달렸어요. 그래도 모래사장은 끝나지 않고 계속 뻗었죠. 얼마나 더 가야 해변 끝이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미얀마 국경에 닿으면 끝이겠죠.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이네요. 길긴 긴 해변이에요.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이라고 하죠.


다음날 12시에 호텔을 나왔어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다 중간에서 무작정 내렸죠.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풍경을 보고 싶었어요. 시내에서 가까운 모래사장이었는데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있었어요. 파란색 파라솔이 한 줄로 꽂혀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쉬고 있어요. 파라솔에서 쉬는 건 내가 쉬는 것하고 똑같아요. 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파도타기를 하네요. 옷을 벗은 사람들은 없어요. 개중에 남자들 몇몇이 웃통을 벗었을 뿐이었어요. 여자들은 평소 입은 옷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고요. 그러니 수영한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죠.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해수욕장 풍경이네요. 가끔 수상 오토바이를 타기도 하고요.


멀리 해안에 올라온 배가 보여서 사륜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녀왔어요. 대여섯 척의 배가 모래사장 위에 올라왔더라고요. 배는 한국에서 보지 못한 형태예요. 이슬람 이드의 초승달 모양이에요. 앞뒤가 모두 뾰족하게 위를 향했어요. 마치 놀이터의 바이킹처럼요. 어느 쪽이 앞인지는 배 안을 봐야 알 수 있어요. 배는 검은색으로 해적들이 타고 다니는 것처럼 파랗고 붉은 깃발, 노랗고 파란 깃발을 달아 자기만의 표시를 한 것 같아요. 특이한 것은 배의 이물과 고물에 방글라데시 빨강색과 방글라데시 초록색을 칠했다는 거예요. 방글라데시 배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시했어요.

배 아래에선 두 노인(실제 노인인지는 몰라요. 아주 늙어 보이는 사람인데 나이는 저보다 적은 사람도 많이 봤으니까요.)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데 일이라기보다는 놀이로 하는 것 같이 담소를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엉킨 그물을 풀고 있더라고요. 아마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온 배인 듯했어요. 엉킨 그물을 손질해서 새것처럼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두 노인의 얼굴에 진 주름은 새로 생겨나 더 깊어지고 연륜 또한 깊어지겠죠. 기욤뮈소는 <아가씨와 밤>에서 ‘노화는 때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에서는 빛을 덜어내고, 무난한 외모에서는 연륜과 윤기를 더해 주는 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노화는 외모와 관계없이 연륜과 윤기를 더하고 빛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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