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박포트(Labagh Fort)

내 마음은 알까?

by 지구지고

데이트 코스로는 랄박 만한 곳이 없다. 여자와 남자가 거리를 두어야 하는 방글라데시에 연인을 위한 공간이 있다면 바로 랄박포트다. 성벽 아래 사랑의 꽃을 피울 공간이 여럿 있어 많은 연인들이 찾는다. 원래 랄박포트는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요새다. 두 개의 모스크와 무덤, 연못, 성벽으로 구성됐다. 많이 허물어진 한쪽의 성벽은 빌라와 집들과 바짝 붙어 어깨를 같이 하고 있다. 건물들은 성벽의 높이를 조롱이라도 하듯 위에서 성안을 들여다본다.

두 개의 모스크는 둘러볼 수 있지만 안쪽은 들어가지 못한다. 한 개의 모스크는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현재도 사용하는 모스크이다. 랄박에는 큰 연못이 있다. 지금은 물은 없는 상태이지만 전에는 수영하고 놀기도 했던 장소라 한다. 요새에서 수영을 하고 놀았다면 얼마나 평화로운 요새였을까. 요새 안은 깨끗하다. 정원은 초록 초록하다. 세계 어디에서 피어도 달리아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민 갖가지 색깔의 달리아 큰 꽃은 여기서 더 특별해 보인다. 바가지만 한 보랏빛 꽃이 반기고 빨간색 꽃이 들어오라고 손을 흔든다. 정원에 박힌 바람개비가 ‘오늘 바람 불어요’라며 천천히 돌아간다. 회양목으로 담을 삼은 정원은 조그만 개구멍이 생겼다. 삼삼오오 정원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엷은 오렌지 빛 건물은 부서진 곳 하나 없이 온전하다. 성벽은 벽돌로 쌓았다. 바람에, 빗물에 닳아 그 각을 잃은 벽돌들이 만든 성벽은 주위의 건물들의 담이 된 듯 건물과 붙어 있다. 저녁 해가 넘어가는 랄박 포트의 성벽 아래에 그늘이 생겼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피해 성벽 아래도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하는 웃음이 보인다. 한적한 장소에는 늘 연인이 있게 마련이다. 랄박의 그 성벽도 예외는 아니다.


약간 덥다 할 날씨(2023년 3월 25일)였다. 성벽의 그늘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눈빛은 은은하다. 서로 눈을 똑바로 못 맞추는 것을 보니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햇 연인인가 보다. 남자는 먼 허공에서 빛을 찾으려는지 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하늘의 선녀를 찾아달라는 이야기로 보인다. 수줍어하는 여성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는다. 눈은 손과는 반대쪽 바닥을 응시하면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여성의 땅을 긁어서 쓴 글자는 아마 사랑 아니면 하트 정도 되지 않을까?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남자가 답답한 건 내 옛날 일이 생각 나서다. 바라보는 내가 다 답답해 그냥 공허한 하늘로 얼굴을 돌렸다. 달이 뜨는 저녁까지 데이트를 해야 눈치챌지 모를 일이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 담 모퉁이에 숨어 한 쌍의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쓰개치마를 쓴 젊은 여인, 초롱을 들고 허리춤을 뒤적이는 총각. 그들의 얼굴엔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무언가 갈망하는 애틋한 정이 넘쳐흐른다. 뽀얀 얼굴에 붉은색 입술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옥색 치마와 흰색 속바지, 자주색 신발과 소매 끝 옥색, 흰색, 자주색이 화면을 더욱 관능적으로 몰아간다. 여인의 속바지와 신발 코의 곡선이 가세하면서 화면은 더욱 농염해진다. 총각은 수염도 나지 않은 앳된 양반이다. 갓끈을 맨 것을 보니 끈이 볼에 꽉 차 좀 답답해 보인다. 갓 끝이 바짝 긴장했다. 아마 갓을 자주 써 보지 못한 것 같다. 밀회를 즐기기 위해 의관을 정제했는데 왠지 서툴러 보인다. 얼마나 여인이 그리웠으면 저랬을까.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표정에서 그의 연정이 더 애틋하기만 하다. 여인은 총각보다 다소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연상이 아닐까. 여인이 입은 저고리는 삼회장이다. 소매 끝동, 깃, 고름을 자주색으로 꾸민 삼회장저고리, 고급스러운 데다 그 멋스러움이 여간 아니다. 혜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편의 시를 적어 넣었다.


‘달은 기울어 삼경(밤 11시∼오전 1시)인데/두 사람 속마음이야 두 사람만 알뿐(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그야말로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을 이광표가 <한국미를 만나는 법>에서 풀이한 것이다.


‘두 사람의 속마음이야 두 사람만 알뿐(兩人心事兩人知)’ 내가 왜 그 마음을 알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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